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1978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동부 지구 1위 결정전 모습. 메이저리그 홈페이지

뉴욕 양키스 팬이라면 1978년 그 경기를 다시 보게 해달라고 기대했을 겁니다.

 

양키스는 10월 1일(이하 현지시간) 열린 그해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마지막 안방 경기에서 클리블랜드에 2-9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반면 보스턴은 이날 안방 경기에서 토론토에 5-0 완승을 거뒀습니다.

 

그러면서 두 팀은 99승 63패(승률 .611)로 나란히 아메리칸리그(AL) 동부 지구 공동 선두에 자리했습니다.

 

▌1978년 아메리칸리그 동부 지구 순위
 팀  승  패  승률  승차
 보스턴  99  63  .611  -
 양키스  99  63  .611  -
 밀워키  93  69  .574  6.0
 볼티모어  90  71  .559  8.5
 디트로이트  86  76  .531  13.0
 클리블랜드  69  90  .434  28.5
 토론토  59  102  .366  39.5

 

AL 챔피언결정전(CS) 진출팀을 가리려면 시즌 163번째 경기가 필요한 상황.

 

안방 구장을 정하는 동전 던지기 결과 양키스가 패하면서 다음날 보스턴 안방 펜웨이 파크에서 단판 승부를 벌이게 됐습니다.

 

월드시리즈 2연패에 도전하던 양키스는 이 경기에서 6회말까지 0-2로 뒤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7회초 2사 1, 2루 상황에서 9번 타자 버키 덴트(70)가 그린 몬스터를 넘어가는 3점 홈런을 치면서 경기를 뒤집었습니다.

 

 

결국 이 경기서 5-4로 승리를 거두고 ALCS에 진출한 양키스는 캔자스시티를 3승 1패로 물리치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습니다.

 

그리고 월드시리즈에서도 2년 연속으로 만난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를 4승 2패로 꺾고 메이저리그 정상에 섰습니다.

 

이해까지 통산 타율이 .255밖에 되지 않았던 덴트는 타율 .417(24타수 10안타), 7타점, 3득점을 올리면서 월드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 뽑혔습니다.

 

1978 월드시리즈 당시 버키 덴트.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 홈페이지

이로부터 세월이 43년 흐른 올해도 두 팀은 나란히 92승 70패(승률 .568)를 기록하면서 정규시즌을 마감했습니다.

 

이번에도 AL 디비전시리즈(DS) 무대를 밟으려면 와일드카드 결정전(WC) 단판 승부를 벌어야 하는 상황.

 

이제는 동전을 던져 안방 팀을 가리는 전통은 사라졌지만 경기 장소는 여전히 펜웨이 파크였습니다.

 

보스턴이 상대 전적에서 10승 9패로 앞선 덕에 홈 어드밴티지를 누리게 된 것.

 

뉴욕 양키스 모자를 쓰고 2012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 결정전 경기장을 찾은 버키 덴트. 보스턴=AP 뉴시스

양키스는 물론 2021 ALWC가 열린 5일 덴트를 펜웨이 파크로 초청했습니다.

 

사실 '패하면 곧바로 탈락'인 경기에서 그저 기운을 받고 싶었다면 양키스는 굳이 덴트를 찾을 필요까지는 없었습니다.

 

애런 분(48) 양키스 감독이 바로 2003년 ALCS 7차전에서 보스턴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주인공이었으니 말입니다.

 

분 감독은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이 경기 연장 11회말 너클볼 투수 팀 웨이크필드(55)를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터뜨렸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덴트를 찾은 건 '펜웨이 파크에서' 보스턴을 물리친 기운을 받고 싶었기 때문일 겁니다.

 

양키스로서는 애석하게도 (그리고 보스턴 팬으로서는 아주 기쁘게도)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보스턴이 양키스를 6-2 물리치고 ALDS 진출 티켓을 따냈습니다.

 

이날 승리로 보스턴은 '가을 야구' 맞대결 시리즈 전적에서 양키스에 3승 2패로 앞서 가게 됐습니다. (경기 전적은 12승 12패입니다.)

 

2021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는 메이저리그 보스턴 선수단. 보스턴=로이터 뉴스1

만약 이날 경기 장소가 펜웨이 파크가 아니었다면 경기 결과가 달라졌을지 모릅니다.

 

양키스 3번 타자로 나선 장칼로 스탠턴(32·지안카를로 스탠튼)은 이날 1회초 2사 주자 없는 상황에 들어서 문자 그대로 '홈런성 타구'를 날렸습니다.

 

문제는 이 타구가 그린 몬스터(높이 11.33m)를 넘어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것.

 

그 탓에 선제 홈런이 되었어야 할 타구가 단타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장칼로 스탠턴이 때린 장타성 타구가 그린 몬스터에 맞고 단타가 되는 장면. ESPN 중계화면 캡처

그린 몬스터는 양키스가 3-1로 추격한 6회초에도 또 한 번 스탠턴을 1루에서 멈춰 세웠습니다.

 

2사 1루 상황에 타석에 들어선 스탠턴은 시속 115마일(약 185.1km)로 400피트(약 121.9m)를 날아가는 타구를 날렸습니다.

 

다른 구장이었다면 홈런이 되기 충분한 타구였지만 이번에도 그린 몬스터가 가로 막았습니다.

 

1루에 있던 애런 저지(29)가 열심히 홈을 향해 파고 들었지만 보스턴 야수진은 결국 그를 잡아내는 중계 플레이에 성공했습니다.

 

'그린 몬스터' 도움을 받아 애런 저지를 홈에서 잡아낸 보스턴 야수진. ESPN 중계화면 캡처

반면 보스턴 타선은 이날 안방에서 팀 OPS(출루율+장타력) 1위(.831)를 차지한 게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정규시즌 전체 홈런 23개 중 15개를 안방에서 터뜨린 산더르 보하르츠(29·잰더 보가츠)는 1회말 1사 1루에 타석에 들어서 그린 몬스터 오른쪽을 향해 향해 타구를 날렸습니다.

 

이 타구는 428피트(약 130m)를 날아 외야석 35번 구역에 떨어졌습니다.

 

이날 양키스 선발 투수로 나선 '3억 달러 사나이게릿 콜(31)을 철렁하게 만든 선제 2점 홈런이었습니다.

 

선제 2점 홈런을 터뜨린 산더르 보하르츠. ESPN 중계화면 캡처

3회말에는 올해 안방 경기서 OPS 1.067(방문 경기 .779)를 기록한 카일 슈워버(28)가 콜을 상대로 오른쪽 담장을 넘어가는 홈런을 때렸습니다.

 

콜은 다음 타자 엔리케 '키케' 에르난데스(30)에게 안타를 얻어 맞은 뒤 계속해 라파엘 디버스(25)에게 볼넷을 내줬습니다.

 

그러자 분 감독도 더는 참지 못하고 콜을 마운드에서 내렸습니다.

 

콜은 결국 2이닝 4피안타(2피홈런) 2볼넷 3실점을 기록한 뒤 마운드를 클레이 홈스(28)에게 넘겼습니다.

 

콜이 2이닝 만에 마운드에서 내려온 건 지난해 양키스에 합류한 뒤 이날이 처음이었습니다.

 

카일 슈워버에게 홈런을 내준 뒤 고개를 숙인 게릿 콜. 보스턴=AP 뉴시스

반면 전 양키스 투수이자 이날 보스턴 선발을 맡은 네이선 이볼디(31)는 5와 3분의 1이닝 동안 1점만 내주면서 팀 승리에 앞장섰습니다.

 

이볼디는 올해 안방 경기 때 상대 타자를 OPS .638(방문 경기 .785)로 묶었던 투수입니다.

 

당연히 평균자책점도 안방 경기(3.47) 때가 방문 경기(4.21)보다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날도 6회초에 앤서니 리조(32)에게 1점 홈런을 내준 걸 제외하면 흠 잡을 데 없는 투구 내용을 선보였습니다.

 

5⅓이닝 동안 뉴욕 양키스 타선을 1점으로 막아낸 보스턴 선발 네이선 이볼디. 보스턴=로이터 뉴스1

리조에게 홈런을 얻어 맞고 3-1로 쫓긴 상황에서 바로 그 중계 플레이가 나왔습니다.

 

이 중계 플레이 때 마지막 보살(補殺·assist)을 책임진 선수는 선제 홈런 주인공 보가츠였습니다.

 

보가츠는 경기 후 "1회말 홈런을 쳤을 때보다 6회초에 저지를 잡아냈을 때가 더 기뻤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지에게 점수를 줬다면 3-2에 2루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경기를 해야 했다. 그런 위기를 막아내 정말 다행스러웠다"고 덧붙였습니다.

 

6회말 적시 2루타를 친 뒤 기뻐하는 알렉스 버두고. 메이저리그 홈페이지

6회초를 추가 실점 없이 마친 보스턴은 6회말 알렉스 버두고(25)가 적시 2루타를 치면서 4-1로 다시 3점을 앞서 하게 됐습니다.

 

이어 8회말에도 역시 버두고가 2타점 적시타를 치면서 6-1로 점수를 벌렸습니다.

 

물어볼 것도 없이 버두고 역시 방문 경기(.734) 때보다 안방(.825)에서 OPS가 높은 선수입니다.

 

양키스에서는 스탠턴이 9회초에 기어이 그린 몬스터를 넘기는 1점 홈런을 쳤지만 승부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무난하게 승리를 따낸 보스턴

보스턴은 7일부터 AL 승률 1위(.617) 팀 탬파베이와 5전 3승제로 ALDS를 치릅니다.

 

알렉스 코라 보스턴 감독은 "이제 시즌 개막 전부터 리그 최고라고 평가 받은 팀을 상대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경기를 통해 우리가 어느 정도 준비가 됐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어려운 도전이 되겠지만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확실히 보스턴은 양키스를 가을 야구 무대서 상대하는 데는 도가 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탬파베이를 상대로 '진짜 힘'을 보여줄 차례입니다. 그럼 Let's go, Reds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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