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2020 도쿄 올림픽 육상 남자 높이뛰기 메달을 따낸 무타즈 바르심(왼쪽)과 잔마르코 탐베리. 도쿄=로이터 뉴스1

금메달 두 개도 가능한가요? (Can we have two golds?)

 

카타르 대표 무타즈 바르심(30)은 1일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東京) 올림픽 육상 남자 높이뛰기 결선 도중 심판진에게 다가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심판진은 "상대 선수도 동의한다면 가능하다"고 답했습니다.

 

'상대 선수'였던 잔마르코 탐베리(29·이탈리아)의 대답도 물론 'OK'였습니다.

 

그렇게 올림픽 높이뛰기 역사상 처음으로 공동 금메달리스트가 탄생했습니다.

 

한국 높이뛰기 최고 기록을 새로 쓴 '일병' 우상혁. 도쿄=로이터 뉴스1

이날 결선에서 2m37을 뛰어 넘은 선수는 바심, 탐베리 그리고 막심 네다세카우(23·벨라루스)까지 세 명이었습니다.

 

단, 네다세카우는 1차 시기 때 2m35를 넘지 못한 다음 2m37을 넘었기에 순위 경쟁에서 두 선수에 밀리고 있던 상황.

 

2m35를 뛰어 넘으면서 한국 최고 기록을 새로 쓴 우상혁(25·상무)과 호주 대표 브랜든 스타크(28·호주)도 세 선수와 함께 2m39에 도전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2m39를 넘은 선수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2020 도쿄 올림픽 육상 남자 높이뛰기 결선 1~5위 결과
 높이  바심  탐베리  네다세카우  우상혁  스타크
 2m19  -  o  xo  o  o
 2m24  o  o  o  o  o
 2m27  o  o  o  o  o
 2m30  o  o  o  o  o
 2m33  o  o  o  xo  xxo
 2m35  o  o  x-  o  o
 2m37  o  o  o  x-  x-
 2m39  xxx  xxx  xxx  xx  xx
 최종 기록  2.37  2.37  2.37  2.35  2.35

 

일단 최종 기록과 실패 횟수에 따라 스타크가 5위, 우상혁이 4위, 네다세카우가 3위를 확정했습니다.

 

그러나 바르심과 탐베리는 모든 기록이 똑같아서 이 기준만으로는 순위를 가릴 수 없는 상황.

 

무타즈 바르심(위)과 잔마르코 탐베리 경기 장면. 도쿄=로이터 뉴스1·AP 뉴시스

세계육상경기연맹(WA) 규칙은 이럴 때 '승부뛰기'를 통해 순위를 가리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점점 높이를 높여가면서 끝까지 살아 남는 선수에게 높은 순위를 부여하는 방식입니다.

 

단, WA 규칙은 승부뛰기 대상 선수가 모두 참가를 거부할 때는 공동 순위를 인정하는 예외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There are a number of ways in which a jump-off may be terminated:

a. by provision in advance of the competition set out in the regulations;

b. by decision during the competition by the Technical delegate (or Referee if there is no Technical delegate);

c. by decision of the athletes not to jump further prior to or at any stage of the jump-off.

 

요컨대 선수에게 메달 색깔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준 셈입니다.

 

이 조항에 따라 두 선수는 2020 도쿄 올림픽 남자 높이뛰기 공동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올림픽 높이뛰기 공동 금메달리스트는 이들이 처음입니다.

 

육상 종목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1912년 스톨홀름 대회짐 소프(1887~1953·미국)와 후고 비슬란데르(1889~1976·스웨덴)가 10종 경기 금메달을 나눠 가진 게 이전까지 마지막 기록이었습니다.

 

소프는 이 대회 때 페르디난드 비에(1888~1961·노르웨이)와 나란히 (근대 5종과 다른 종목인) 5종 경기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2020 도쿄 올림픽 육상 남자 높이뛰기 공동 금메달 리스트 잔마르코 탐베리(왼쪽)와 무타즈 바르심. 도쿄=로이터 뉴스1 

여름 올림픽 전체로 범위를 더 넓히면 이들이 30번째 공동 금메달리스트입니다.

 

공동 은메달은 35번 나왔고 (더블 일리미네이션 제도 때문에 동메달리스트가 원래 2명인 종목을 빼면) 공동 동메달은 54번 나왔습니다.

 

겨울 올림픽 공동 메달리스트는 금 9번, 은 13번, 동 8번입니다.

 

2018 평창 대회 남자 4인승 봅슬레이에서 한국 대표팀이 독일과 함께 공동 은메달을 땄습니다.

 

1936년 베를린 대회 때는 선수에게 승부뛰기를 거부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2, 3위로 갈라서야 했던 일본 장대 높이뛰기 대표 두 선수는 대회가 끝난 뒤 반은반동(半銀半銅) 메달을 나눠 갖기도 했습니다.

 



댓글, 2

  •  댓글  수정/삭제 행인
    2021.10.10 13:57

    위에 짐 소프의 1912년 10종 경기 금메달을 공동 금메달이라 하셨는데 사실은 도쿄 올림픽 공동 금메달이랑은 성격이 좀 다릅니다. 1912년 10종 경기는 원래 짐 소프가 압도적인 격차로 금메달을 획득했었습니다. 하지만 올림픽 전에 세미 프로 야구팀에서 몇 년 돈을 받고 뛰었던 사실이 발각되어 금메달이 박탈당했었죠. 하지만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오랜 논쟁과 아메리카 원주민 혈통이었던 소프에 대한 암묵적 차별 등에 대한 논의를 거쳐서 공동 금메달로 표기하게 된 거라 이번 공동 금메달과는 성격이 좀 다릅니다.
    사족으로, 짐 소프는 20세기 전반 미국 최대의 스포츠 영웅이라 할 만한 사람입니다. 1912년 10종 경기 금메달로 '세계 최고의 운동선수'가 된 것은 물론, 야구, 농구, 풋볼 등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스포츠 전반에 두루 뛰어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야구를 그나마 상대적으로 가장 못 했는데, 그 실력도 메이저리그 뉴욕 자이언츠 벤치 플레이어 정도는 됐습니다. 풋볼로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스포츠 선수로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재정 관리의 실패, 아메리카 원주민 혈통에 대한 차별 등으로 빠르게 몰락하고 잊혀진 사람입니다. 그래도 20세기 후반부터 재평가에 들어갔고 현재는 알려질 만큼 알려졌으니 다행이라고 할만하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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