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빨리(citius), 더 높이(altius), 더 힘차게(fortius).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 피에르 드 쿠베르탱(1863~1937) 남작이 제안한 이 올림픽 표어가 바뀝니다.
이 세 문구 뒤에 '다 함께(communis)'가 하나 더 붙는 겁니다.
23일 올림픽 전문 매체 '인사이드 더 게임즈'에 따르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집행위원회는 127년 만에 표어를 수정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토마스 바흐(68) IOC 위원장이 3월 11일 연임에 성공하면서 '다 함께'를 표어에 추가하자고 제안했고, 이날 집행위원회에서 이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겁니다.
바흐 위원장은 집행위원회에서 "국제쿠베르탱위원회 등에서 이미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자평했습니다.
IOC는 2020 도쿄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7월 20일 또는 21일에 총회를 열어 표어 수정안을 표결에 부치게 됩니다.
현재 분위기라면 이 수정안을 가결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상황입니다.
역대 올림픽 선수 가운데 '함께' 정신을 가장 잘 보여준 인물로는 일본 대표 니시다 슈헤이(西田修平·1910~1997)와 오에 수에오(大江季雄·1914~1941)를 꼽을 수 있습니다.
두 선수는 1936년 베를린 대회 때 나란히 장대높이뛰기 종목에 출전해 결선까지 올랐습니다.
금메달을 차지한 건 미국 대표 얼 메도스(1913~1992)였습니다. 그는 당시 올림픽 기록이었던 4.35m를 뛰었습니다.
그다음으로 니시다, 오에와 함께 역시 미국 선수인 빌 세프턴(1915~1982)이 4.25m를 뛰어 동률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은·동 메달 주인을 찾아 주려면 세 선수 사이에 서열을 정해줘야 하는 상황.
당시에는 '승부뛰기'로 서열을 정했습니다. 조금씩 높이를 높여가면서 끝까지 살아 남는 선수에게 높은 순위를 주는 방식입니다.
첫 번째 승부뛰기 높이는 4.15m였습니다. 니시다와 오에는 이 기준을 넘어섰지만 세프턴은 탈락.
이제 은메달을 놓고본 니시다와 오에가 다시 승부뛰기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됐지만 둘은 이 승부를 거절했습니다.
서로 상대에게 은메달을 주는 게 맞다고 주장했던 것.
이에 대회 조직위원회는 일본 대표팀에 메달 색깔을 골라달라고 주문합니다.
일본 대표팀은 니시다에게 은메달을 주기로 합니다. 니시다는 결선에서 4.25m를 첫 시도 때 뛰어 넘은 반면 오에는 두 번째에 넘었다는 이유였습니다.
이렇게 결론이 나온 뒤에도 양보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니시다가 오에에게 시상대 위 은메달리스트 자리를 내주려고 했던 것.
실제로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받은 건 니시다가 아니라 오에였습니다.
오에는 실수로 이 은메달을 일본까지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메달을 일대일로 바꾸는 대신 '반은반동(半銀半銅)' 메달을 만들어 나눠 갖기로 의기투합합니다.
그러나 이 '우정 메달' 한 개는 5년 뒤 주인을 잃게 됩니다.
오에가 일본 육군 대위로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다가 1941년 12월 24일 필리핀 루손섬에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냉정하게 말해 1936 베를린 올림픽은 아돌프 히틀러(1889~1945)가 나치 선전용으로 기획한 대회였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악의 기운'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지만 끝내 '아시아가 다 함께 우리 발 밑에' 를 주장하던 일본 제국주의를 넘어서지는 못했습니다.
2011년 발생한 도호쿠(東北) 대지진을 이겨내고 훗코(復興·부흥)한 모습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이번 대회 때 과연 일본 정부는 어떤 '다 함께'를 준비하고 있을까요.
기왕이면 니시다-오에 같은 '다 함께'이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