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34·키움)는 역시 박병호였습니다.
프로야구 LG 류중일 감독은 키움과 맞붙은 25일 잠실 더블헤더 2차전에서 '이거박' 사인을 냈습니다.
팀이 5-4로 앞서던 9회초 1사 2, 3루 상황에서 3번 타자 이정후(22)를 고의사구로 거르고 4번 타자 박병호와 승부하라고 지시한 것.
아주 이상한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이정후는 당시 마운드를 지키고 있던 정우영(21)를 상대로 통산 2타수 2안타(홈런 1개)를 기록 중이었습니다.
반면 박병호는 정우영과 다섯 번 맞붙어 4타수 1안타를 기록하는 동안 삼진을 세 차례 당했습니다.
게다가 2차전에서도 LG 선발 차우찬(33)을 상대로 삼진을 세 번 당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류 감독이 기대한 것과 정반대였습니다.
박병호는 정우영이 두 번째 공으로 선택한 시속 146km짜리 투심 패스트볼을 받아쳐 시속 173km짜리 타구로 만들었습니다.
이 공은 130m를 날아간 뒤 외야 우중간 관중석에 떨어졌습니다. 역전 만루홈런!
16일까지 박병호는 타율 .197로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가운데 유일하게 1할대 타율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꾸준히 믿음을 보내던 손혁 키움 감독은 박병호를 '부상자 명단'에 올리면서 1군 명단에서 제외했습니다.
박병호는 고질적인 무릎과 손목 부상을 안고 뛰던 상태였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부상자 명단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원래 1군 엔트리에서 빠진 선수는 최소 열흘이 지나야 다시 1군 복귀가 가능합니다.
단,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선수는 컨디션이 돌아왔다고 판단하면 그 전에도 1군에 돌아올 수 있습니다.
박병호도 사흘만 쉰 뒤 20일 다시 1군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복귀 후 5경기에서 타율 .500(16타수 8안타), 4홈런, 9타점을 기록했습니다.
박병호는 이날 경기 후 "이렇게 타격 부진이 오래 간 건 처음이라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이어 "그런데 '팬심'으로 우리 팀 야구를 보니까 기분 전환이 되더라. 더 빨리 쉬는 게 맞았던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박병호는 이날까지 1군 경기에서 총 4474타석에 들어섰습니다.
이 가운데 앞 타자가 고의사구로 나간 건 이날 9회 타석이 아홉 번째였습니다.
박병호가 넥센(현 키움)으로 옮긴 뒤 그러니까 박병호가 우리가 알고 있는 박병호가 된 뒤만 따져도 이번이 다섯 번째입니다.
▌역대 ○거박
날짜 | 상대팀 | 이닝 | 아웃 | 2루 | 3루 | 점수 | 앞 타자 | 결과 |
2005-06-19 | @롯데 | 4 | 1 | ○ | 4-3 | 이성열 | E5 | |
2009-07-08 | @KIA | 5 | 2 | ○ | 2-2 | 이진영 | HP | |
2009-07-22 | @KIA | 8 | 2 | ○ | 2-2 | 이진영 | 5-3 | |
2010-09-09 | 롯데 | 1 | 1 | ○ | ○ | 0-0 | 조인성 | 6-4-3 |
2012-05-03 | 롯데 | 7 | 2 | ○ | 2-1 | 이택근 | K | |
2012-05-11 | @SK | 6 | 2 | ○ | 3-2 | 이택근 | f2 | |
2018-04-05 | KT | 10 | 1 | ○ | 3-3 | 김하성 | / 7 | |
2018-07-05 | SK | 8 | 2 | ○ | 3-2 | 김하성 | L5 | |
2020-06-25 | @LG | 9 | 1 | ○ | ○ | 4-5 | 이정후 | ◇ 8·9 |
2020-07-26 | 롯데 | 2 | 2 | ○ | 5-0 | 이정후 | 6-3 |
이 가운데 박병호가 안타를 기록한 건 경기를 끝낸 2018년 4월 5일과 이날 두 번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거박'은 사실 그리 나쁜 작전은 아니었던 것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