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세일. 유튜브 화면 캡처
메이저리그 팀 절반이 승리에 대한 그 어떤 열망도 없는 이 시대에 우리는 매년 월드시리즈 정상을 노리는 팀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게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고 생각합니다. 야구 선수로서 그건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지난해 3월 24일(이하 현지시간) 왼손 투수 크리스 세일(31)은 5년간 1억4500만 달러(약 1231억 원)를 받는 조건으로 보스턴과 연장 계약에 합의한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이제 보스턴도 '파이어 세일'에 나서면서 메이저리그 팀 절반과 같은 자리에 섰습니다.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무키 베츠 합성 사진. ESPN 홈페이지
4일 ESPN에 따르면 보스턴은, 기어이, 테드 윌리엄스(1918~2002) 이후 팀 내 최고 유망주였던, 클럽 하우스 리더이자, 보스턴 팬들이 가장 아끼는 선수였던, 무키 베츠(28)를,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로, 보내버렸습니다.
이와 함께 데이비드 프라이스(35)도 다저스 유니폼을 입게 됐습니다. 보스턴은 앞으로 3년 동안 프라이스에게 지급했어야 할 연봉 9600만 달러 가운데 5000만 달러(약 592억 원)도 다저스에 보내기로 했습니다.
보스턴은 대신 다저스에서 외야수 알렉스 버두고(24), 미네소타에서 투수 브루스다르 그라테롤(21)을 받아 오기로 했습니다.
4년 동안 다저스에서 뛰었던 오른손 투수 마에다 겐타(前田健太·32)도 미네소타로 향합니다.
2019 시즌 마지막 경기를 마친 뒤 그라운드를 떠나는 무키 베츠. 보스턴 홈페이지
베츠가 연봉 조정 자격 선수 최고 연봉 기록을 새로 썼을 때 말씀드린 것처럼 베츠는 언젠가 팀을 떠날 운명이었습니다.
팀에서 별로 그를 잡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니까요.
뉴잉글랜드 지역 라디오 채널 WEEI에 따르면 보스턴은 2018년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 타이틀을 따낸 베츠에게 그해 오프시즌 10년간 3억 달러(약 3552억 원) 연장 계약안을 제시했습니다.
그 전 오프시즌, 베츠보다 한 수 아래인, 브라이스 하퍼(28)가 FA 자격을 얻어 10년간 3억3000만 달러(약 3907억 원)에 필라델피아와 계약을 맺었다는 걸 감안하면 확실히 아쉬운 금액.
베츠는 이에 12년간 4억2000만 달러(약 4973억 원)를 받고 싶다고 답을 보냈습니다.
지구에서 '나 베츠보다 야구 잘해'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야수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크 트라우트(29)가 12년 4억3000만 달러(약 5091억 원)에 계약을 맺었으니까 베츠가 요구하지 못할 금액도 아니었습니다.
선수 | 팀 | 나이 | 포지션 | fWAR |
마이크 트라우트 | LA 에인절스 | 29 | 외야수 | 25.2 |
무키 베츠 | LA 다저스 | 28 | 외야수 | 22.4 |
크리스티안 옐리치 | 밀워키 | 29 | 외야수 | 20.0 |
앤서니 렌던 | 워싱턴 | 30 | 3루수 | 19.9 |
알렉스 브레그먼 | 휴스턴 | 26 | 3루수 | 19.5 |
물론 구단 대답은 '노(No)'였습니다.
보스턴은 지난해 선수단 연봉으로 총 2억4200만 달러(약 2865억 원)가 넘는 돈을 썼습니다. 리그에서 선수단 연봉이 제일 많은 팀이 보스턴이었습니다.
그 결과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부터 사치세 1305만 달러(약 155억 원) 처분을 받았습니다. 물론 리그에서 사치세를 제일 많이 낸 팀이 보스턴이었습니다.
존 헨리 보스턴 구단주. 보스턴글로브 홈페이지
그럼 보스턴이 저 돈을 감당할 능력이 없느냐?
그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지난해 보스턴 구단을 소유하고 있는 '펜웨이 스포츠 그룹'이 약 66억 달러(약 7조8000억 원) 시장가치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66억 달러는 뉴욕 양키스를 소유한 '양키 글로벌 엔터프라이즈'보다 5억 달러(약 5920억 원) 많은 전 세계 3위 수준입니다.
베츠를 영입하는 데 성공한 다저스는 10위 안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21세기 들어 이미 네차례(2004, 2007, 2013, 2018년) 월드시리즈 정상에 오른 보스턴은 그냥 그냥 돈을 쓰기 싫었던 겁니다.
보스턴 시절 베이브 루스. 위키피디아 공용
100년 전에도 그랬습니다.
1918년 월드시리즈 정상을 차지한 보스턴은 1919년 66승 71패(승률 .482)로 아메리칸리그 8개 팀 중 6위에 그쳤습니다.
그러자 그해 시즌이 끝난 뒤 베이브 루스(1895~1948)를 양키스로 트레이드했습니다. 그러면서 보스턴이 받은 건 10만 달러(현재 가치 약 18억 원)가 전부였습니다.
이후 보스턴에서 생긴 일은 메이저리그 팬이라면 모두들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보스턴 시절 존 레스터. 보스턴글로브 홈페이지
사실 프라이스가 이렇게 많은 돈을 받고 있는 것부터 존 레스터(36)에게 지갑을 열기 싫어서 생긴 일입니다.
2002년 신인 지명회의(드래프트) 2라운드 때 뽑은 레스터가 FA 자격을 앞두고 있던 2014년 보스턴은 그를 오클랜드로 트레이드했습니다.
레스터는 결국 시카고 컵스와 6년간 1억5500만 달러(약 1835억 원)를 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다 2년 뒤 선발 투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자 보스턴은 7년간 2억1700만 달러(약 2569억 원)를 주는 조건으로 프라이스와 계약했습니다.
데이비드 프라이스 보스턴 입단식. 동아일보DB
그래서 보스턴 팬으로 산다는 건 항상 징크스를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일을 뜻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알렉스 코라(45) 전 감독이 사인 훔치기 때문에 자리를 내놓으면서 2020 보스턴은 스프링캠프 개막을 코앞에 두고도 감독도 없는 팀입니다.
여기에 클럽하우스 리더까지 빠져 나갔습니다.
새로 오는 선수 두 명에게는 미안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둘이 팀 리빌딩 핵심으로 자리매김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어쩌면 루스를 양키스로 보낸 해리 프레이지(1880~1929) 구단주조차 지하에서 이렇게 되물을지 모릅니다.
"베츠를 보내고 누구랑 누구를 받아 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