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현역 시절 방졸-방장에서 단장-감독으로 만나게 된 정민철 전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왼쪽)과 한용덕 한화 감독. 동아일보DB


프로야구 한화 레전드 정민철(47)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 친정팀 살림살이를 책임지게 됩니다. 한화는 8일 "정 위원을 제10대 단장으로 선임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대전고를 졸업하고 1992년 한화 전신인 빙그레에 입단한 정 단장은 2009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161승 128패 10세이브 평균자책점 3.51을 기록했습니다. 


161승은 역시 팀 선배인 송진우(53) 현 한화 퓨처스리그(2군) 투수코치에 이어 프로야구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 송 코치는 왼손 투수였기 때문에 정 단장이 오른손 투수 최다승 기록 보유자입니다. 


정 단장은 2001, 2001년에는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讀賣)에서 뛰기도 했지만 3승 2패 평균자책점 4.70에 그쳤습니다.


2009년을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벗은 정 단장은 이듬해 1군 불펜코치를 시작으로 2014년까지 1, 2군을 오가며 투수코치 생활을 하다가 2015년부터 MBC스포츠플러스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정 단장은 구단을 통해 "다시 한화를 위해 일할 기회가 생겨 영광"이라면서 "우수 선수를 육성하고 체계적인 구단 운영 시스템을 수립해 나가겠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이를 통해 한화가 다시 명문 구단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책임감과 사명을 갖고 노력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보도자료에서 이 소감을 보고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2년 전 이 블로그에 썼던 '대전의 에이스, 정민철' 포스트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사실 빙그레의 에이스라면 정민철이 아닌 송진우, 한용덕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1992년 데뷔한 정민철이 빙그레 유니폼을 입고 뛴 건 딱 두 시즌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민철은 강호 '빙그레'가 약체 '한화'로 거듭나던 시기를 묵묵히 지켜준 '빙그레의 에이스'였다.



빙그레는 1985년 창단 후 이듬해인 1986 시즌부터 1군 리그에 참가했다.


1994 시즌 한화로 이름이 바뀔 때까지 이 팀 통산 성적은 493승 22무 427패. 같은 기간 동안 빙그레보다 많은 승수를 올린 팀은 전통의 강호 해태(554승)와 삼성(523승)뿐이었다.


특히 세 번째 시즌이던 1988년 2위(62승 1무 45패)를 차지한 데 이어 이듬해엔 곧바로 정규시즌 1위(71승 3무 46패)를 차지한 빙그레 이글스. 포스트시즌 때는 늘 해태 타이거즈에 밀리긴 했지만 정규 시즌에서 빙그레를 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마침내 1992년 정민철이 빙그레에 입단한다.


1992년은 빙그레 장종훈이 홈런 41개를 쏘아 올린 시즌으로 많은 야구팬들이 기억하는 해다. 홈런왕과 타점왕을 동시에 차지한 장종훈의 맹활약 속에 빙그레 역시 역다 최다승 기록인 81승(2무 43패)을 거두며 정규시즌 1위에 올랐다.


정민철도 14승 4패, 방어율 2.48을 기록하며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떠오른다.



하지만 빙그레는 한국시리즈에서 롯데에 1승 4패로 무릎 꿇고 말았다. 천적 해태가 플레이오프에서 탈락(2승 3패)한 이후라 아쉬움은 더욱 컸다.


정민철은 한국 시리즈 2차전에서 호투를 선보였지만 승리를 챙기지 못했고, 4차전에서는 패전 투수가 되고 말았다. 4차전 승리 투수는 신인왕 라이벌 염종석이었다.


결국 팀 우승과 함께 신인왕 역시 염종석이 차지하며 1992 시즌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때 그 누가 알았을까? 이글스가 다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할 줄 말이다. 1994 시즌을 앞두고 빙그레 이글스는 한화 이글스로 CI를 변경했고, 1998 시즌 7위로 떨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팀 성적은 나빠져만 갔다.


41홈런을 때린 이후 장종훈의 위압감은 해가 갈수록 줄고 있었다. 송진우 역시 당시엔 한 물 간 투수라는 평을 들었다. 투타의 핵이 늙어간다는 건 팀으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글스 팬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정민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정민철은 빙그레의 영광을 되새기게 만드는 존재였다.


이 글에 등장한 선수 세 명이 영구결번이라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 명 - 송진우(21번·2군 투수코치) 장종훈(35번·수석코치) 정민철(23번·단장) - 모두 다음 시즌 한화에 몸담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언젠가부터 한화도 그 옛날 빙그레의 영광을 좇는 팀이 됐는지도 모르겠다는 뜻입니다. 이럴 때는 보통 물이 고이게 마련입니다.


이 물이 썩지 않도록 정 단장이 찾은 해법은 듣는 것. 정 단장은 "야구만 하다가 뒤늦게 사회생활을 경험했다. 신선했고 많이 배웠다"면서 "말을 하는 일을 했지만 새로운 곳에서 많이 들어야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큰 용기는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 듣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야구를 오래했지만 구단 내에 여전히 모르는 부분이 많다. 이곳저곳 얘기를 다 듣겠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2017년 한화에 합류한 박종훈(60) 전 단장은 계약 기간이 끝나면서 팀을 떠나게 됐습니다.



댓글, 0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