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한국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KT 유니폼을 입고 10승 달성에 성공한 배제성(왼쪽)과 포수 장성우. KT 제공


사실 21세기 투수에게 승은 큰 의미가 없는 기록입니다. 그래도 '10승 투수'가 주는 무게감이 남다른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배제성(23·KT)도 그랬습니다. 그는 "항상 '승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못 던져도 승은 챙길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그래도 KT 토종 투수 최초 10승이라는 것은 좋다"면서 웃었습니다. 


배제성은 20일 사직 경기에서 안방 팀 롯데를 상대로 9이닝 동안 안타 다섯 개만 내주면서 실점 없이 경기를 마쳤습니다. 그 사이 팀 타선이 7점을 뽑으면서 배제성은 시즌 열 번째 승리를 수확했습니다.


윌슨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면서 완봉승을 기록하는 배제성. SPOTV2 중계 화면 캡처


2015년 1군 합류 이후 KT 소속 한국인 선수가 10승을 거둔 건 배제성이 처음입니다. 사실 배제성이 이달 6일 KIA를 상대로 9승을 기록하기 전에는 8승이 KT 한국인 투수 최다승 기록이었습니다. KT 외국인 투수 가운데는 원년(2015년) 멤버 옥스프링(42)이 12승(10패)을 기록한 적이 있습니다.


배제성은 "사실 평소보다 공이 좋지 않았다. 생각대로 들어가지 않은 게 많았다"면서 "운이 잘 따랐다. 수비 도움도 많이 받았고 타선에서 점수를 내주면서 마음 편히 공을 던질 수 있었다. 이닝을 많이 소화했다는 사실이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야구 선수 생활을 통틀어 완봉승은 물론 완투를 해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예전에는 7이닝이 최다였던 걸로 기억한다"면서 "완봉승이라는 의미도 컸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 경기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난달 20일 수원 안방 경기에서 키움 타선을 상대로 공을 뿌리고 있는 배제성. KT 제공


성남고를 졸업한 배제성은 2015년 신인지명회의(드래프트) 때 롯데에서 2차 8라운드(전체 88순위) 지명을 받아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팔꿈치 부상으로 고3 때 단 1이닝도 소화하지 못한 투수라면 프로 지명을 받은 것부터 감지덕지할 일.


실제로 배제성은 2015, 2016년 내내 퓨처스리그(2군)에만 머물다가 2017년 4월 18일 2대2 트레이트를 통해 KT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배제성은 "그날 오후 10시쯤 구단에서 전화가 왔다. '1군에 올라가라'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팀을 옮긴다는 소식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굉장히 당황했다"고 말했습니다.


배제성은 트레이드 이틀 뒤 맞이한 1군 데뷔전에서 2이닝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고 미운 오리 새끼가 곧바로 백조가 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이로부터 사흘 뒤에는 역시 2이닝을 던져 2점을 내줬고 다시 사흘 뒤에는 3분의 2이닝 동안 4실점을 기록했습니다.


이후에도 18경기에 더 나갔지만 2017년 최종 기록은 32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8.72가 전부였습니다. 지난해에도 1군 경기에서는 4이닝밖에 던지지 못했습니다. 


2017년 4월 23일 수원 안방 경기 당시 배제성. 동아일보DB


그랬던 배제성을 '배이스'(배제성+에이스)로 거듭나게 만든 원동력은 체인지업. 배제성은 "원래는 포크볼을 던졌는데 악력이 부족한 탓이었는지 던질수록 힘이 달리는 게 느껴졌다"면서 "지난해 마무리캠프 때부터 체인지업을 연습했는데 생각보다 결과가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올시즌 배제성의 체인지업을 때린 타자는 타율 .240(96타수 23안타)을 기록하는 데 그쳤습니다. OPS(출루율+장타력)은 .565. 참고로 47타석 연속 무안타 기록을 남긴 유지훤(64) 현 두산 코치 통산 OPS가 .567입니다.



롯데 시절 배제성

롯데 상대 기록은 이보다 더 낮습니다. 배제성은 롯데를 상대로 네 번 등판해 상대 타자를 OPS .456으로 막으면서 네 번 모두 승리를 챙겼습니다. 평균차잭점은 0.95. 생애 첫 승(6월 8일) 상대도 롯데였고 이번 10승 상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배제성은 "친정 팀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생각을 하는 건 없다"면서 "롯데에 머물고 있을 때 낮은 순번으로 뽑은 선수인데도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팀을 옮겨서라도 잘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거꾸로 배제성은 NC를 상대로 평균자책점 9.00으로 부진했습니다. 12일 경기에서 5이닝 동안 6점을 내준 게 컸습니다. 이날 패배로 KT는 가을야구 경쟁에서 한 걸음 미끄러지게 됐습니다.


배제성은 "로테이션까지 조정해서 중요한 경기에 내보내주셨는데 워낙 중요한 경기라서 그랬는지 '결과에 연연하는' 투구를 하고 말았다. 팀 1년 농사를 좌우하는 경기였는데 너무 아쉬우서 이틀 간 제대로 잠을 못 잤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올해 배제성에게 남은 미션은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 12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는 것. 60명 예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배제성은 "욕심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아직 태극마크를 한 번도 달아본 적이 없어서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뽑아만 주시면 공 하나하나 허투루 던지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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