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열린 제24회 여름 올림픽은 '한국 올림픽'이 아니라 '서울 올림픽'이었습니다.
반면 이로부터 14년 뒤 열린 2002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은 '서울·도쿄(東京)' 대회가 아니라 '한국·일본' 대회였습니다.
요컨대 올림픽은 도시 단위로 열고, FIFA 월드컵은 국가 단위로 개최합니다.
지금까지는 이게 기본 패턴이었습니다.
앞으로는 바뀝니다. 올림픽이 FIFA 월드컵을 따라하는 방식입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스위스 로잔 본부에서 26일(이하 현지시간) 끝난 제134차 총회에서 올림픽 유치 방식 관련 규정을 손질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일단 한 도시(a city)에 올림픽 개최권을 위임하는 IOC 올림픽 헌장 제32조 2항이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IOC는 올림픽대회를 개최하는 영광과 책임을 올림픽대회의 개최도시로 선정된 도시에 위임한다(The honour and responsibility of hosting the Olympic Games are entrusted by the IOC to a city, which is elected as the host city of the Olympic Games).
또 모든 경기를 개최 도시에서 열어야 한다는 원칙을 밝힌 제34조도 조금 더 유연하게 수정하기로 했습니다.
모든 스포츠 경기 및 개/폐회식은 원칙상 올림픽대회 개최도시에서 열려야 한다(All sports competitions and the opening and closing ceremonies must, in principle, take place in the host city of the Olympic Games).
사실 이 조항은 2014년 12월 8, 9일 열린 제127차 IOC 총회에서 '올림픽 어젠다 2020'을 채택하면서 이미 효력을 잃은 상태입니다. 어젠다 2020에 따라 이미 한 나라 안에서 여러 도시는 물론이고 여러 나라에서 여러 도시가 협력해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올림픽 개최지 선정 방식 개선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로잔=AP 뉴시스
어젠다 2020 채택 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한국이 (2018 평창 겨울 올림픽) 개최 비용을 줄일 수 있도록 일본에서 일부 종목을 분산 개최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2018 겨울 올림픽 경기가 일본에서 열리는 일은 없었지만 이미 대세는 공동 개최로 바뀐 상태입니다.
이번 총회에서는 2026년 겨울 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하기도 했는데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이탈리아)와 스톨홀름·오레(스웨덴)가 맞붙어 이탈리아 쪽이 승리했습니다. 밀라노에서 코르티나담페초는 차로 5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 시외버스 소요 시간이 30분 정도인 평창(횡계)-강릉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스톡홀름-오레 사이도 차로 7시간 이상 걸립니다.
개최지 결정 시기도 바뀝니다. IOC 총회는 올림픽 개최 7년 전 개최 도시를 선정하도록 나와 있는 IOC 올림픽 헌장 제33조 2항도 삭제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IOC 집행위원회는 총회가 개최도시를 선정할 때까지 준수할 모든 절차를 결정한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개최도시 선정은 올림픽대회 개최 7년 전에 이루어진다(The IOC Executive Board determines the procedure to be followed until the election by the Session takes place. Save in exceptional circumstances, such election takes place seven years before the celebration of the Olympic Games).
IOC는 이미 2017년 9월 13일 페루 리마에서 열린 제131차 총회 때 '예외적인 경우'를 경험했습니다. 원래 이때는 2024년 여름 올림픽 개최 도시만 선정하는 게 원칙이었지만 2024년 대회는 프랑스 파리, 2028년 대회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기로 한꺼번에 결정했습니다. 이런 결정을 내린 건 이때가 IOC 역사상 처음이었습니다.
사진 왼쪽부터 안 이달고 파리 시장,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에릭 가르세티 LA 시장. 동아일보DB
원래 규정을 지켰으면 LA는 그저 2024년 올림픽 개최에 실패한 도시지만 IOC 총회에서 이런 결정을 내린 덕에 다음 번 개최권을 따낼 수 있었습니다. 사실 당시 총회가 열리기 전 바흐 위원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현행 올림픽 유치 절차를 너무 많은 패자를 양산한다"며 열심히 '군불 때기'에 나선 상태였습니다.
물론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이제 올림픽을 그저 '흰 코끼리'로 생각하는 여론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원래 파리와 LA 이외에도 로마(이탈리아) 보스턴(미국) 부다페스트(헝가리) 함부르크(독일) 등도 2024년 올림픽 유치에 도전했지만 주민 반대로 뜻을 접었습니다. IOC로서는 파리와 LA마저 놓칠 수 없었고 그래서 순서만 정하는 방식을 선택한 겁니다.
앞으로는 개최지 선정 투표 방식도 바뀝니다. 지금까지는 개최 희망 도시를 놓고 표결로 승부를 가리는 방식이었습니다. 앞으로는 '미래 유치 위원회(Future Host Commissions)'에서 유치 신청지를 먼저 검토한 뒤 단일 후보를 총회 투표에 상정하는 방식으로 개최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미래 유치 위원회는 집행위원회에 속하지 않은 IOC 이사 10명(여름) 또는 8명(겨울)으로 구성합니다.
이러면 투표를 앞두고 은밀하게 뇌물을 건네던 관행이 줄어들 가능성도 큽니다. 당장 2001년부터 일본올림픽위원회(JOC) 수장 자리를 지켰던 다케다 스네카즈(竹田恒和) 전 회장도 2020 도쿄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200만 유로(약 25억7000만 원)를 뇌물로 썼다는 의혹을 받고 올해 3월 17일 자리를 내놓은 상태입니다.
JOC는 이날 임시이사회를 열고 1984 LA 올림픽 유도 남자 무제한급 금메달리스트 출신 야마시타 야스히로(山下泰裕) 일본유도연맹 회장을 새 회장으로 선출했습니다. 야먀시타 신임 회장은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개최 1년여를 앞둔 시기에 취임하는 책임의 무게를 통감한다"면서 "내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끌겠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