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모'를 논하기에는 아직도 때가 이른 모양입니다.
'구(舊) 흙신' 라파엘 나달(33·스페인·세계랭킹 2위·사진)이 '신(新) 흙신' 도미니크 팀(26·오스트리아·4위)을 물리치고 2019 프랑스 오픈 테니스 대회 남자 단식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나달은 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스타드 롤랑 가로스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3-1(6-3, 5-7, 6-1, 6-1)로 꺾었습니다.
두 선수는 이 대회 결승에서 2년 연속 맞붙었고 결과는 두 번 모두 나달의 승리였습니다.
올해는 나달의 텃밭이나 다름 없던 바르셀로나 오픈 4강에서 팀이 나달을 2-0(6-4, 6-4)으로 꺾고 결국 우승을 차지하면서 프랑스 오픈 결과도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지만 챔피언은 결국 나달이었습니다.
팀으로서는 0-3으로 패했던 지난해 결승전과 달리 올해는 그나마 한 세트는 따냈다는 게 위안거리.
거꾸로 나달은 이번 우승으로 3년 연속이자 개인 통산 12번째 머스킷티어컵(프랑스 오픈 우승 트로피)을 차지했습니다.
나달을 제외하면 남녀부를 통틀어 특정 메이저 대회에서도 12번 이상 우승한 선수는 테니스 역사상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달이 2017년 이 대회 정상을 차지한 뒤 메이저 대회 9번을 치르는 동안 남자 단식 챔피언 이름이 나달, 노바크 조코치비(32·세르비아·1위), 로저 페더러(38·스위스·3위)가 아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사실 페더러가 정상에 오른 2017년 호주 오픈 때부터 '빅3'가 서로 우승 트로피를 주고 받고 있습니다. 이 기간 나달이 네 번, 조코비치와 페더러가 각 세 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여자 단식에서는 오사카 나오미(大坂なおみ·22·일본·1위)가 지난해 US 오픈과 올해 호주 오픈에서 두 차례 우승을 차지했을 뿐 나머지는 전부 메이저 대회 우승자 이름이 달랐습니다.
올해 프랑스 오픈 정상에 오른 애슐리 바티(23·호주·8위·사진)는 같은 기간 메이저 단식 첫 우승을 기록한 여섯 번째 여자 선수입니다.
▌최근 10개 메이저 대회 단식 챔피언
남자 테니스가 위(魏), 촉(蜀), 오(吳) 세 나라가 싸우는 삼국시대라면 여자 테니스는 진나라 시황제(기원전 259년~기원전 210년)가 중국을 통일하기 전 춘추전국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국시대를 다룬 소설 중 제일 유명한 게 삼국지연의인 것처럼 춘추전국시대는 열국지가 대표작입니다.)
시즌 전체로 범위를 넓혀 보면 현재까지 올해 남자프로테니스(ATP)투어 대회는 총 31번 열렸고 24명이 단식 챔피언 자리에 올랐습니다.
여자프로테니스(WTA)투어는 27개 대회에서 21명. 그러니까 남자 테니스가 여자 테니스보다 우승 쏠림 현상이 벌어진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메이저 대회에서만 유독 빅3 독과점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왼쪽부터 로저 페더러, 노바크 조코비치, 라파엘 나달
29세 이하 남자 현역 선수 가운데 메이저 단식 우승 경험이 있는 선수는 한 명도 없고, 결승 진출 경험이 있는 것도 팀 한 명뿐입니다.
반면 여자 단식 쪽에서는 27세 이하 현역 선수 중 10명이 결승 진출 경험이 있고, 이 중 6명이 챔피언으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는 제일 큰 이유는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 경기만 5세트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대회에서는 남녀부 모두 두 세트를 먼저 따는 선수가 이기지만 메이저 대회에서는 남자부만 세 세트가 필요합니다.
전술적으로 우위에 있는 선수가 유리한 것. 또 경기 사이 휴식 시간도 길기 때문에 30대 선수가 체력을 회복하기에도 이쪽이 유리합니다.
여자부에서는 '네임드' 선수가 이런저런 까닭으로 공백기를 거쳤다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세리나 윌리엄스(38·미국·10위), 빅토리야 아자란카(30·벨라루스·43위)는 출산 휴직을 했고, 마리야 샤라포바(32·러시아·49위)는 도핑(약물을 써서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행위)으로 15개월간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고, 페트라 크비토바(29·체코·6위)는 2016년 자택에서 괴한에게 습격을 당해 코트로부터 떨어져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빈 틈을 어린 선수들이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만 나이로) 10대 선수들까지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상태.
이번 프랑스 오픈에서 마르케타 본드루소바(20·체코·38위)는 결승전을 경험했고, 아만다 아니시모바(18·미국·51위·사진)는 디펜딩 챔피언 시모나 할레프(28·루마니아·3위)를 물리치고 4강까지 올랐습니다.
'다섯 번째 메이저 대회'로 통하는 BNP 파리바 오픈 올해 챔피언도 비앙카 안드레스쿠(19·캐나다·23위)였습니다.
그렇다고 여자 테니스 춘추전국시대가 꼭 바람직한 것만은 아닙니다.
'흥행'을 생각하면 라이벌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 윌리엄스 독재 시대에는 그래도 '나머지 vs 윌리엄스' 구도라도 있었지만 이제는 누가 누구와 라이벌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빅3 맞대결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남자부와 다른 대목.
그러니 얼른 어깨 수술을 받은 샤라포바가 돌아와 여자부에도 30대 전성시대를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