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캐나다 폭격기' 가빈(33·사진)이 8시즌 만에 프로배구 V리그 무대로 돌아옵니다. 대신 이번에는 삼성화재가 아니라 한국전력이 소속팀입니다. 


지난 시즌 최하위 한국전력은 9일(이하 현지시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한국배구연맹(KOVO) 2019~2020 남자부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때 1순위 지명권을 얻어 가빈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가빈은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고 V리그 무대에 첫 선을 보인 2009~2010 시즌 올스타전, 정규리그,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를 모두 독식하면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선수. 이후 2012~2013 시즌을 앞두고 러시아 리그로 떠날 때까지 세 시즌 연속으로 득점왕 자리를 지키면서 꼬박꼬박 팀에 우승 트로피도 선물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던 가빈이지만 이번 트라이아웃(공개 선수 평가) 때는 뒤에서 세 번째로 신청서를 냈습니다. 가빈이 머뭇거린 건 현 소속팀 올림피아코스(그리스) 일정 때문 만약 올림피아코스가 그리스 리그 챔프전에 진출하게 되면 트라이아웃과 일정이 겹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KOVO는 소속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경우에는 하루만 트라이아웃에 참가해도 드래프트 후보자로 이름을 올릴 수 있도록 규정을 손질했습니다. 6일 챔프전 2차전을 마친 가빈은 12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토론토에 도착했고, 7일 트라이아웃 연습 경기를 소화한 뒤 다시 그리스로 돌아가, 10일 열린 3차전에 참가했습니다. 가빈은 3차전에서 양 팀 최다인 20점을 올렸고 올림피아코스는 3전 전승으로 그리스 챔피언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리스에서 경기를 뛰는 아들을 대신해 어머니 조앤 씨(58)가 드래프트 현장을 지켰습니다. 어머니와 영상통화로 연결된 가빈은 "첫 번째로 뽑혀 영광이다. 아직도 내가 가치가 있다는 걸 증명한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맨 첫 번째 지명권을 따내 가빈을 뽑는 데 성공한 한국전력 관계자가 기뻐한 건 당연한 일. 그런데 맨 마지막으로 지명권을 행사한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사진 왼쪽)도 이에 못지 않게 만족스런 표정었습니다. 꿈에 그리던 요스바니(28·쿠바)를 영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즌 OK저축은행에서 역대급으로 혹사 당하며 뛰었던 요스바니가 V리그를 밟을 수 있던 건 현대캐피탈 추천 덕분이었습니다. KOVO는 사전 선호도 조사 때 각 구단에서 1위로 뽑은 선수는 합산 순위에 관계없이 트라이아웃 초청장을 보내는데 지난해 트라이아웃 때 현대캐피탈에서 1순위를 적어낸 게 바로 요스바니였습니다. 한 시즌을 돌아 요스바니와 만나게 된 것.


최 감독은 "이 선수가 (우리 지명 차례까지) 남아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1번이었다. '제발 남으라'고 기도했는데 기도가 먹힌 모양이다. 아주 만족한다"면서 "요스바니는 힘이 아주 좋은 좋격수다. 지난 시즌 뛰었던 파다르(23·헝가리)와 비교해도 부족함을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현대캐피탈에는 한국 배구를 대표하는 오른쪽 공격수 문성민(33)이 있기 때문에 외국인 선수를 뽑을 때 레프트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난 시즌에는 오른쪽 공격수 파다르가 합류하면서 문성민이 정규리그 때 '소방수' 자리로 물러났지만 요스바니는 레프트이기 때문에 문성민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요스바니는 "현대캐피탈은 한국에서 제일 뛰어난 팀이다. 좋은 시스템을 갖춘 팀이고 챔피언이 될 확률도 가장 높다. 100%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오른쪽 어깨 근육이 80% 망가졌다는) 메디컬 체크 결과 때문에 지명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상태는 정말 좋다"고 덧붙였습니다.




반면 역시 토종 라이트 박철우(34) 때문에 외국인 선수 자리에 레프트를 선호하던 삼성화재는 라이트 조셉 노먼(26·미국·사진 오른쪽)을 선택했습니다. 지난해 현대캐피탈이 그랬던 것처럼 삼성화재는 박철우와 노먼이 코트 위에서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노먼은 트라이아웃 첫 날부터 빼어난 신체조건으로 주목을 받은 선수. 키(206㎝)가 크고 탄력이 좋아 '큰 공격'을 맡기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단, 기본기가 약하다고 평가하는 시선도 존재했습니다.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때는 구슬 140개를 지난 시즌 성적 역순에 따라 확률을 달리해 배정합니다. 지난 시즌 4위였던 삼성화재는 구슬 20개로 원래 확률(14.3%)에 따르면 네 번째 지명권을 따내야 하지만 이날은 여섯 번째 지명권을 얻는데 그쳤습니다.


단, 요스바니는 물론 스티븐 헌트(29·캐나다) 같은 레프트 자원이 남아 있었는데 노먼을 선택했다는 것으로 볼 때 삼성화재는 처음부터 라이트를 염두에 두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지난 시즌까지 세 시즌 동안 삼성화재에서 뛰었던 지난해 득점왕 타이스(28·네덜란드·레프트)는 이번 트라이아웃에 신청서를 내고도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요스바니와 재계약을 포기하고 라이트를 뽑겠다고 선언한 OK저축은행은 2순위 지명권을 얻어 레오 안드리치(25·크로아티아)를 뽑았습니다. 가빈과 산체스(31·쿠바·전 대한항공) 등 '구관'이 드래프트 1, 2위를 나눠 가질 것이라는 예상을 깬 선택.


석진욱 OK저축은행 감독은 "연습하는 모습에서 산체스에 다소 실망했다"면서 "안드리치는 서브에서 강점이 두드러졌고 어려운 볼을 처리하는 센스도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지명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어 "대신 블로킹이 조금 떨어진다. 지금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뛰었으면 한다. 훈련을 통해 보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산체스가 선택을 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 건 아닙니다. 원래 확률보다 한 순번 늦은 3순위 지명권을 차지한 KB손해보험에서 곧바로 그를 지명했습니다. 권순찬 KB손해보험 감독은 대한항공 코치 시절 산체스와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권 감독은 "브라질 리그가 3월에 끝났다고 들었다. 한 달 정도 쉬었으니 충분히 그럴(폼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면서 "첫 날부터 산체스를 보고 있었다. 1순위를 뽑았어도 가빈과 산체스를 놓고 고민했을 거다. 2순위 때 OK저축은행이 나와 두 선수 다 놓치는가 했는데 석 감독에게 조금은 고맙다"며 웃었습니다.



2019 KOVO 남자부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은 선수들. 왼쪽부터 현대캐피탈 요스바니, KB손해보험 산체스, OK저축은행 레오 안드리치, 한국전력 가빈(어머니 조앤 씨), 삼성화재 조셉 노먼, 우리카드 아가메즈(재계약), 대한항공 안드레스 비예나   


지난 시즌 정규리그 우승팀이자 챔프전 준우승팀 대한항공은 이번에도 '구슬의 여신' 도움을 받아 4순위 지명권을 따냈습니다. 그리고 선택한 건 사전 선호도 13위였던 안드레스 비예나(26·스페인)였습니다. 비예나는 트라이아웃 기간 키(192㎝)는 크지 않지만 '배구 IQ'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던 선수입니다.


우리카드는 드래프트 전날 이미 지난해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1순위로 뽑았던 아가메즈(34·콜롬비아)와 재계약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 아가메즈는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 보니 재계약하지 못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팀에서 나를 믿어줘 정말 기쁘다"면서 "지금까지 뛴 리그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우승이 없다. 그게 내가 한국 무대에 다시 도전하는 이유다. 이번 시즌에는 무조건 우승을 노리겠다"고 말했습니다.


▌2019 KOVO 남자부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결과

 순번  구단  이름  나이  국적  포지션
 ①  한국전력  가빈  33  캐나다  라이트
 ②  OK저축은행  레오 안드리치  26  크로아티아  라이트
 ③  KB손해보험  산체스  31  쿠바  라이트
 ④  대한항공  안드레스 비예나  26  스페인  라이트
 ⑤  우리카드  아가메즈(재계약)  34  콜롬비아  라이트
 ⑥  삼성화재  조셉 노먼  26  미국  레프트
 ⑦  현대캐피탈  요스바니  28  쿠바  레프트


트라이아웃을 통해 뽑힌 선수는 기본 연봉으로 30만 달러를 받습니다. 가빈이나 산체스도 트라이아웃 참가는 처음이기 때문에 역시 마찬가지고, 요스바니도 한 시즌 만에 팀을 옮겼기 때문에 같은 기준을 적용합니다. 단, 원소속팀과 재계약한 아가메즈는 35만 달러가 기본 연봉입니다. 여기에 출전 승리 수당을 받고, 숙소도 구단에서 제공받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받는 돈은 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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