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선수들이 합법적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려던 노력이 일단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쿠바야구협회가 맺은 협정이 법을 어겼다고 결론내렸다"고 9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습니다.
문제는 역시 '돈'.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쿠바야구협회는 지난해 12월 메이저리그 각 구단이 일정 자격을 갖춘 쿠바 선수를 영입할 수 있도록 포스팅(비공개 경쟁 입찰)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이 제도를 통해 쿠바 선수가 메이저리그 구단과 사인하게 되면 쿠바야구협회가 전체 계약 금액 가운데 최대 25%를 이적료(정확하게는 '방출료·release fee')로 받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쿠바야구협회에서 4일 올해 메이저리그 진출 자격이 있는 선수 명단을 공개하면서 점점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던 상황.
하지만 미국 재무부에서 쿠바야구협회가 쿠바 정부 산하 기관이라는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메이저리그 구단이 쿠바야구협회에 이적료를 지불하게 되면 결국 쿠바 정부에 재정적 지원을 하는 셈이기 때문에 대(對) 쿠바 경제제재 조치를 위반하게 된다는 겁니다.
WP에서 이 협정을 승인하지 않기로 결정한 주체를 '트럼프 행정부(The Trump administration)'라고 표현한 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2017년) 이후 미국 정부에서 쿠바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사인 왼쪽)이 '비둘기파'였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매파'라는 사실을 강조한 겁니다.
WP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뒤 (쿠바 수도) 아바나에 있는 대사관 규모를 눈에 띄게(sharply) 줄였고, 쿠바 국적자가 미국 비자를 얻으려면 반드시 제3국을 경유하도록 만들었고, 미국 시민이 쿠바로 여행하는 것도 다시 막았다"고 전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렇게 쿠바를 압박하는 이유가 꼭 '전임자 흔적 지우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베네수엘라 사태도 영향이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쿠바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돕고 있다고 의심하는 상황. 미국은 마두로 대통령 퇴진 운동을 벌이고 있는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 편입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트위터에 "쿠바는 야구를 경제 제재를 돌파하는 (장기판) 졸로 쓰려고 한다. 미국의 국민 스포츠가 쿠바에서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이 자기를 돕도록 만드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썼습니다.
Cuba wants to use baseball players as economic pawns – selling their rights to Major League Baseball. America’s national pastime should not enable the Cuban regime‘s support for Maduro in Venezuela.
— John Bolton (@AmbJohnBolton) April 7, 2019
만약 미국 행정부에서 끝까지 뜻을 꺾지 않는다면 쿠바 출신 야구 선수는 예전처럼 목숨을 걸고 탈출에 성공해야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을 수 있습니다.
정치의 것은 정치에게, 스포츠의 것은 스포츠에게는 역시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