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20년 전 오늘(현지시간 23일)은 메이저리그에서 그 유명한 '한만두'가 터진 날입니다. 


야구팬이라면 잘 아실 것처럼 한만두는 '한 이닝 만루홈런 두 개'를 줄인 말.


이날 로스앤젤레스(LA) 방문 경기에서 한 이닝에 만루홈런을 두 개 기록한 건 당시 세인트루이스 소속이던 페르난도 태티스(44·사진 가운데).


이 홈런 두 개를 모두 LA 다저스 선발 박찬호(46)가 내줬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나?

박찬호는 이날 안방 경기에 선발 등판해 첫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습니다. 그 사이 다저스 타선이 1, 2회 각각 한 점씩 뽑으면서 2-0으로 앞서갔습니다.


만두가 터진 건 3회초.


1번 선두타자 대런 브래그(50)에게 좌전 안타를 내준 박찬호는 2번 타자 엔드가 렌테리아(43)에게도 몸에 맞는 공을 내줬습니다. 3번 타자 마크 맥과이어(56)에게도 우전 안타를 맞으면서 무사만루.


이때 타석에 들어선 4번 타자 태티스는 볼카운트 2볼 0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박찬호가 던진 빠른 공을 받아쳐 왼쪽 담장을 넘겼습니다(2-4).



박찬호는 5번 타자 JD 드류(44)를 1루수 앞 땅볼로 처리하면서 안정을 되찾는가 싶었지만 6번 타자 엘리 마레로(46)에게 또 한 번 홈런을 내주면서 다시 흔들렸습니다(2-5). 박찬호는 7번 타자 자리에 들어선 대타 플라시도 폴랑코(44)와 8번 타자 조 맥유윙(47)에게 연속해 볼넷을 내줬고, 1사 1, 2루에 타석에 들어선 투수 호세 히메네스(46)가 희생번트를 시도했지만 야수선택이 나와 아웃 카운트를 늘리지 못하면서 1사 만루 상황이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심판 판정에 항의하던 데이비 존슨 다저스 감독이 퇴장 명령을 받았고, 어수선한 상황에서 이 이닝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선 세인트루이스 1번 타자 브래그는 1루수 실책으로 살아나갔습니다. 그 사이 3루 주자 폴랑코가 득점에 성공하면서 2-6.


여전히 1사 만루인 상태에서 2번 타자 렌테리아가 우전 안타를 쳤고 그 사이 3루 주자 맥유윙이 득점에 성공하면서 2-7에서 계속 1사 만루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3번 타자 맥과이어가 우익수 뜬공으로 물러나면서 2사 만루.


타석에는 다시 태티스가 들어섰고 결과는… 



박찬호가 태티스에게 이 만루홈런을 얻어 맞은 공은 그가 3회에 던진 48번째 공이었습니다. 그제야 박찬호는 2와 3분의 2이닝 투구, 8피안타(3피홈런), 11실점(6자책점)을 기록한 뒤 마운드에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한만두가 또 터질 확률은?

계산에 앞서 먼저 제가 지난달에 쓴 '베이스볼 비니키'부터 살짝 인용해 보겠습니다.


한 매체는 '기자의 눈' 꼭지를 통해 이렇게 비판했습니다. "2번 박병호는 기껏해야 (1회에) 2점 홈런을 칠 수밖에 없다. 4번이라면 만루 홈런을 칠 수 있다. 1회에 2점과 4점은 엄청난 차이다."


그러면 실제로 4번 타자는 얼마나 자주 1회에 만루 홈런을 칠까요? 최근 3년(2016~2018년) 동안 프로야구는 총 2160 경기를 치렀고, 1회 공격은 총 4320번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4번 타자가 1회에 경기 첫 타석에 들어선 건 총 2897번(67.1%)이었고, (1회에 타자일순을 하면 두 번째 타석도 가능합니다. 단, 이때는 2번 타자에게도 만루 홈런 기회가 올 수 있으니 제외) 그 가운데 만루 상황은 54번(kini註 - 1.9%)이었습니다. 이 54번 가운데 홈런이 나온 건 3번(kini註 - 5.6%)이었습니다.


그러니까 1회 만루 홈런을 노리고 어떤 타자를 4번 타순에 배치해 그게 성공할 확률은 0.069%(4320번 중 3번)라고 할 수 있습니다.


1회 상황을 다룬 이 기사를 인용한 건 20년 전 LA 경기 3회초도 1번 타자부터 공격을 시작했기 때문에 확률적으로는 같은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세이버메트릭스(야구 통계학)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더 북(The Book)'을 쓴 탱고 타이거 역시 같은 방식으로 한만두 확률에 접근합니다.


• 한 시즌(약 600타석) 30홈런을 때릴 수 있는 4번 타자가 있다고 치자. Take a typical power-hitting cleanup batter, who hits 30 home runs in a full season (600 plate appearances).


• 이 4번 타자가 1회에 타석에 들어설 확률은 62%이고, 이 62% 가운데 만루상황에 타석에 들어설 확률은 1.7%이며, 이 1.7% 가운데 홈런으로 끝나는 타석 비율은 약 5% 정도다. That cleanup batter gets to the plate in the first inning 62 percent of the time, and 1.7 percent of those plate appearances come with the bases loaded. Just 5 percent of those chances result in a homer.


• 이 타자가 만약 이 확률을 뚫고 만루홈런을 쳤다고 해도 이 이닝에 한 번 더 타석에 들어설 확률은 1.5%밖에 되지 않는다. 이 1.5% 가운데 21%는 주자만루 상황이지만 다시 홈런을 칠 확률은 여전히 5%밖에 되지 않는다. Now comes the hard part. Even once the first slam is done, our hitter stands just a 1.5 percent chance of getting up to the plate again that inning. In this scenario, 21 percent of plate appearances would have the bases loaded, but once again, the home run occurs 5 percent of the time.


마지막 단락까지 모두 계산하면 한만두가 터질 확률은 1200만분의 1 정도 됩니다.


30개 팀 체제를 구축한 1998년 이후 지난해까지 메이저리그는 한 해 평균 약 4만3367이닝을 소화했습니다. 이 이닝을 초와 말로 나누면 공격 기회는 17만3468번. 앞으로도 계속 팀이 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한만두는 약 69년에 한 번 정도 볼 수 있는 기록인 셈입니다.



한한한만두는?


그런데 사실 이 계산법에는 아주 크게 터진 곳이 있습니다. 한 타자가 한 이닝에서 만루홈런을 두 개 칠 확률만 따졌기 때문입니다.


20년 전 LA에서는 이 만루홈런 두 개를 맞은 투수도 박찬호로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진짜 알고 싶은 건 '한 타자가 한 이닝에 한 투수로부터 만루홈런 두 개를 뽑아낼 확률'인데 '한 투수로부터'가 빠진 것.


이런 일도 드물 수밖에 없습니다. 20년 전 박찬호는 감독이 퇴장 당한 상황이라 더그아웃에서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방치당한 상태였다는 게 사실에 가까울 겁니다. 전 타석에서 만루홈런을 친 태티스는 물론 바로 직전 시즌(1998년)에 70홈런으로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새로 쓴 맥과이어를 만루상황에서 상대하라고 놔둔 셈이니까요.


다행히(!) 메이저리그에서 한 투수가 한 이닝에 만루홈런을 두 개 맞은 게 박찬호가 유일한 건 아닙니다. 1890년 빌 필립스(1868~1941)도 서로 다른 두 타자에게 만루홈런 두 개를 허용한 적이 있습니다. 1891년부터 1998년까지 메이저리그는 총 280만6391이닝을 소화했고 이건 30개 팀 기준으로 약 65년에 해당하는 기록입니다. 


그러면 한 타자가 한 이닝에 한 투수로부터 만루홈런 두 개를 뽑아내는 건 약 69×65년에 한 번 정도 나올 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한한만두는 4485년에 한 번 정도 나올 수 있는 기록이 되는 셈. 이 정도면 메이저리그에서는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기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참 옛말이란 틀린 게 없더군~

이런 기록을 내주는 게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확률로 볼 때 희박해도 너무 희박한 일이 벌어지고 나면 선수나 팀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운명의 장난'에 휘말린 셈이니까요. 선수도 그냥 훌훌 털어버리는 수밖에요.


물론 이렇게 능욕 당한 선수에게 '투 머치 토커(too much talker)' 속성이 있다면 이를 털어버리기도 훨씬 쉽습니다. 박찬호는 한화에 몸담고 있던 2012년 8월 22일 문학구장에서 SK 이호준(43·현 NC 코치)에게 동점 홈런을 맞고 마운드에서 내려온 팀 후배 정대훈(34)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건넸습니다. 



정대훈은 나흘 뒤 스포츠서울 인터뷰에서 "박찬호 선배께서 본인은 한 이닝에 만루홈런 두 개나 허용했던 사람이라고 말을 꺼냈다. 30분간 조언을 해주시더라"며 "혼자 (라커룸에) 있었다면 창피하고 괴로워 힘들었을 텐데 박찬호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큰 힘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선배가 한 이닝 만루홈런 2개를 평생 잊을 수 없든 나도 SK전 동점 홈런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선배의 조언이 기억날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런 조언에도 불구하고(?) 정대훈은 이후 2017 시즌 종료 후 프로야구 무대를 떠날 때까지 끝내 한만두와 비슷한 경험을 남기지 못한 채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정대훈을 대신해 한만두 전통 재현에 나선 건 두산 최대성(34)이었습니다. 최대성은 지난해(2018년) 3월 31일 수원 경기에서 8회 구원 등판해 이 이닝에만 로하스(29)와 이해창(32)에게 각각 만루홈런을 내줬습니다. 아쉽게도 서로 다른 타자에게 만루홈런을 맞으면서 '한한한만두' 재현에는 실패한 것. 


과연 앞으로 그 어떤 리그에서든 한한한만두를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사회인 야구 하시는 분들은 혹시 이런 경험을 하시게 된다면 꼭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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