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싱거운 승부였습니다. 머신러닝을 통해 예상했던 것처럼 한국야구기자회 소속 투표인단은 김재환(30·두산·사진)이 2018 프로야구에서 가장 가치 있는 선수(MVP)라고 판단했습니다.
먼저, 김재환 선수, 축하합니다.
축하는 진심입니다. 도핑(약물을 써서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행위) 전력 때문에 논란이 일어날 게 당연한 일이지만 (그리고 저도 동참할 예정이지만) MVP로 뽑힌 게 김재환이 선택한 일은 아니잖아요. 기자단이 그렇게 선택한 일이지.
사실 저는 프로야구 MVP 투표권이 있던 2016년에 "올해 그 어떤 투표 때도 김재환에게 표를 던지지 않을 작정입니다"로 시작하는 '베이스볼 비키니'를 쓴 적이 있습니다. 도핑으로 징계를 받은 적이 있는 선수가 (부·富는 몰라도) 명예까지 차지하는 건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투표인단까지 무조건 제 생각에 따라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투표 때 김재환을 MVP로 꼽은 76명도 충분히 그렇게 투표할 자유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2018 프로야구 MVP 투표 결과(1~5위)
이름 | 팀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총득표 | 총점 |
김재환 | 두산 | 51 | 12 | 8 | 2 | 3 | 76 | 487 |
린드블럼 | 두산 | 18 | 42 | 12 | 7 | 5 | 84 | 367 |
박병호 | 넥센 | 12 | 14 | 24 | 13 | 12 | 75 | 262 |
양의지 | 두산 | 13 | 14 | 20 | 13 | 8 | 68 | 254 |
후랭코프 | 두산 | 3 | 8 | 11 | 10 | 1 | 33 | 110 |
그래도 궁금합니다. 전체 투표인단(111명) 중 절반 가까운 51명(45.9%)이 김재환에게 1위표를 줬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한국야구위원회(KBO) 리그 규정은 "KBO MVP란 KBO 정규시즌에서 기능·정신 양면이 가장 우수하고 품행이 방정하여 타의 모범이 되는 선수에게 시상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제게 투표권이 있었다면 저는 박병호(32·넥센)에게 1위표를 던졌을 겁니다. 박병호가 팀 득점과 승리에서 모두 팀 공헌도가 제일 높은 타자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난달에 쓴 '[베이스볼 비키니] 어차피 승리는 김재환? 실속은 박병호'에서 인용하면:
2016~2018년 한국 프로야구 득점 기댓값을 토대로 올해 타자별 성적을 알아본 결과 박병호가 69.9점으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2위 다린 러프(32·삼성 라이온즈)가 54.1점, 3위 김현수(30·LG 트윈스)가 52.9점이니까 박병호가 독보적인 성적을 거뒀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재환은 51.4점으로 4위였습니다.
…
박병호가 (WPA) 6.4로 리그 전체 1위입니다. 승리 기댓값은 0.5에서 시작해 팀이 승리하면 1.0(100%)이 되기 때문에 0.5당 1승이라고 계산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2위에 이름을 올린 러프가 5.9니까 박병호는 러프보다도 1승을 더 팀에 안긴 셈이 됩니다. 김재환은 5.8로 3위(였습니다.)
요컨대 저는 세이버메트릭스(야구통계학)를 근거로 박병호가 김재환은 물론 그 누구하고 비교해도 '기능'이 가장 우수한 선수라고 주장했던 겁니다.
'정신' 가장 우수하다는 데는 주관적인 평가가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얼마든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 역시 MVP 투표권자에게 보내는 안내문에 "어떤 선수가 팀에 가장 가치 있는 선수인지는 순전히 투표자 개인에게 달린 문제"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김재환은 앞으로도 도핑 전력이 있는 선수를 MVP 뽑아도 괜찮은지 아닌지에 대해서까지 논의를 확장할 수 있는 훌륭한(?) 사례입니다. 야구에 이런 이야기를 공급하는 게 취재진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명이라도 좋으니까 어떤 이유로 김재환이 '정신이 가장 우수하고 품행이 방정하여 타의 모범이 되는 선수'라고 판단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기사를 쓰시는 분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