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위원회(KBO) 홈페이지가 새로 단장하면서 WPA라는 기록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KBO 홈페이지에서는 WPA를 "각 플레이마다 얼마나 승리확률을 높였는지 나타내는 수치로 높을수록 승리에 기여하였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어떤 개념인지 와닿으십니까? WPA가 무엇인지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WPA는 Win Probability Added에서 알파벳 머리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입니다. 여기서 먼저 WP는 승리 기댓값이라는 녀석입니다. 예전에 WP에 대해 썼던 기사를 살짝 인용해 보겠습니다.
그(야구 통계학자 크리스토퍼 세아)는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열린 메이저리그 3만2767 경기를 분석해 이닝, 아웃카운트, 점수 차에 따라 각 팀의 승리 확률을 계산했다. 그 뒤 여러 학자가 통계적인 보정을 거쳐 언제 어느 때나 팀의 승리 확률을 알아낼 수 있는 승리 기댓값(WP·Winning Probability)을 정리했다. WP는 플레이 하나 하나마다 변한다.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방문 팀이 1회초 공격을 시작할 때는 두 팀 모두 WP를 .500이라고 가정할 수 있습니다. 만약 방문 팀 1번 타자가 1루에 살아나가면 이 확률은 53.5%로 3.5%포인트 올라갑니다. 여기서 2번 타자가 2루타를 쳐서 방문 팀이 선취점을 뽑으면 이 확률은 65.3%로 12%포인트 가까이 올라갑니다. 이때 3번 타자가 유격수 직선타를 쳤는데(61.6%) 2루 주자가 미처 귀루하지 못해 같이 아웃당하고 말았습니다(57.9%). 4번 타자가 뜬공으로 물러나자 방문팀이 승리 기댓값은 55.5%가 됐습니다.
이러면 1번 타자는 위에서 본 것처럼 WP를 3.5%포인트 끌어올렸습니다. 2번 타자는 2루타로 11.8%포인트를 더했다가 주루 플레이 실수로 3.7%포인트를 까먹었으니까 최종적으로 8.1%포인트를 끌어올린 셈이 됩니다. 3번 타자는 직선타로 3.7%포인트를 까먹었고, 4번 타자도 2.4%포인트를 내렸습니다. 그러면 이 1회초 공격에 제일 잘한 선수로는 2번 타자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한 선수가 불러일으킨 승리 기댓값 변화를 모두 더한 게 바로 WPA입니다.
물론 이 기록은 타자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닙니다. 위 예에서 공격 팀이 최종적으로 5.5%포인트를 땄으니까 수비 팀은 5.5%포인트를 잃은 셈이 됩니다. 투수와 야수가 -5.5%포인트를 나눠가져야 하는 겁니다. 어떤 기록을 기준으로 삼아 WP를 계산하는지에 따라 값은 달라질 수 있지만 WPA를 계산하는 기본 원리는 이렇게 WP를 더하고 뺴는 게 전부입니다.
한 이닝 동안 WPA를 계산할 수 있으면 한 경기라고 못할 건 없겠죠? 당연히 한 시리즈나 아예 한 시즌 기록을 WPA로 확인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프로야구 통계 사이트 스탯티즈 기준으로 지난해 WPA가 가장 높았던 타자는 7.37을 기록한 김태균(35·한화)이었습니다. 투수는 두산 니퍼트(35)가 2.69로 최고였습니다. 물론 해마다 이런 기록이 나오니 통산 WPA도 알 수 있습니다.
WP는 .500에서 시작한다고 가정했습니다. 그러면 .500을 더하면 팀에 1승을 안기는 셈이 됩니다. 김태균은 7.37이나 올렸으니까 팀에 14.7승을 더 올려준 셈입니다. 니퍼트도 +5.4승입니다. 정말 김태균이 니퍼트보다 2.7배 팀 승리에 도움이 되는 선수라고 믿으시는지 아닌지가 여러분이 WPA를 믿으시는 기준이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시즌을 치르다 보면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경기가 있게 마련인데 WPA는 이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도 염두에 두시면 좋습니다.
WP 그 자체로 경기를 분석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아래는 제가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1차전이 끝났을 때 페이스북에 썼던 글입니다.
그런데 저부터 저렇게 쓰면 숫자가 너무 많다고 했습니다. WP는 사실 글보다 그래프에 더 잘 어울리는 녀석입니다. 경기 내내 WP가 어떻게 변했는지 정리하면 아래 그림처럼 경기 흐름을 그래프로 그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위 그림은 2013년 7월 5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LG-넥센 경기를 그래프로 그린 겁니다. 이 경기는 야구 팬들이 흔히 '705대첩'이라고 부르는 명승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