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무키 메츠(26·보스턴·사진)가 2018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로 뽑혔습니다.
15일(현지시간)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에서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2018 아메리칸리그 MVP 투표 결과를 보면 베츠는 전체 1위 30표 가운데 28표를 받는 등 총점 410점으로 265점을 받은 마이크 트라우트(27·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를 제치고 1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2018 아메리칸리그 MVP 투표 결과
재미있는 건 BBWAA에서 이 소식을 알리는 기사에 '타격왕(Batting Champ)'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점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타격왕은 타율 1위를 차지한 선수에게 붙이는 타이틀. 베츠는 올해 타율 .346으로 아메리칸리그뿐 아니라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제일 높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베츠만 타격왕이 아닙니다. 올해 내셔널리그 MVP로 뽑힌 크리스티안 옐리치(27·밀워키·사진) 역시 타율 .326으로 리그 1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두 리그 타격왕이 나란히 MVP를 차지한 건 1937, 1938, 2012년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입니다. 두 리그를 나눠 살펴 보면 아메리칸리그에서는 베츠가 14번째, 내셔널리그에는 옐리치가 19번째 타격왕 MVP입니다.
이 정도면 많은 걸까요? 적은 걸까요? BBWAA에서 MVP를 선정하기 시작한 1931년 이후 88년 동안 올해까지 (1979년 내셔널리그 MVP가 두 명이라) MVP는 총 177명이었고, 이 가운데 야수는 155명(87.6%)이었습니다.
이 155명 가운데 타점왕이 58명(37.4%)이었고, 홈런왕은 47명(30.3%)이었습니다. 위에서 보신 것처럼 타격왕은 33명(21.3%)이었니까 소위 '타격 3관왕' 기록 가운데서는 타격왕이 제일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조금 다른 분위기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세이버메트릭스 사이트 '더 하드볼 타임스(The Hardball Times)'에 따르면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MVP를 뽑을 때 제일 중요한 기준이 되는 기록은 OPS(출루율+장타력)였고, 그 다음이 타율이었습니다. (정확하게는 OPS 순위, 타율 순위 등 각 기록 순위) 단, OPS가 중요한 정도를 100이라고 할 때 타율은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이 생긴 건 사실 타율을 '덜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2등인데 무슨 소리냐고요? 1등이 OPS니까요. OPS를 계산할 때는 타율을 두 번 씁니다. 출루율과 장타력에 모두 이미 타율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OPS가 높다고 무조건 타율이 높은 건 아니지만 타율이 높으면 결과적으로 OPS도 높습니다. 베츠(1.078)은 트라우트(1.088)에 이어 아메리칸리그에서 두 번째로 높은 OPS를 남겼고, 옐리치(1.000)는 아예 내셔널리그 1위입니다. 그런 이유로 OPS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타율도 중요한 지표처럼 보이게 됐습니다.
물론 위에서 보신 것처럼 꼭 타율 1위=OPS 1위는 아닙니다. 어떤 선수는 안타를 치지 못하는 타석에서 볼넷 등으로 출루에 더 자주 성공하고, 어떤 선수는 다른 선수보다 장타를 더 많이 때리니까요.
그런 점에서 한국 프로야구 원년(1982)부터 올해까지 타격왕의 OPS 순위를 살펴 보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타납니다.
▌프로야구 역대 타격왕 OPS 순위
연도 | 이름 | 팀 | 타율 | OPS | OPS 순위 |
1982 | 백인천 | MBC | .412 | 1.237 | 1위 |
1983 | 장효조 | 삼성 | .369 | 1.087 | 1위 |
1984 | 이만수 | 삼성 | .340 | 1.043 | 1위 |
1985 | 장효조 | 삼성 | .373 | 1.003 | 1위 |
1986 | 장효조 | 삼성 | .329 | .903 | 1위 |
1987 | 장효조 | 삼성 | .387 | .954 | 3위 |
1988 | 김상훈 | MBC | .354 | .931 | 5위 |
1989 | 고원부 | 빙그레 | .327 | .843 | 6위 |
1990 | 한대화 | 해태 | .335 | .937 | 2위 |
1991 | 이정훈 | 빙그레 | .348 | 1.019 | 2위 |
1992 | 이정훈 | 빙그레 | .360 | 1.056 | 3위 |
1993 | 양준혁 | 삼성 | .341 | 1.035 | 1위 |
1994 | 이종범 | 해태 | .393 | 1.033 | 1위 |
1995 | 김광림 | 쌍방울 | .337 | .838 | 7위 |
1996 | 양준혁 | 삼성 | .346 | 1.076 | 1위 |
1997 | 김기태 | 쌍방울 | .344 | 1.096 | 1위 |
1998 | 양준혁 | 삼성 | .342 | 1.040 | 2위 |
1999 | 마해영 | 롯데 | .372 | 1.114 | 2위 |
2000 | 박종호 | 현대 | .340 | .918 | 13위 |
2001 | 양준혁 | LG | .355 | .959 | 8위 |
2002 | 장성호 | KIA | .343 | .967 | 4위 |
2003 | 김동주 | 두산 | .342 | 1.031 | 3위 |
2004 | 브룸바 | 현대 | .343 | 1.076 | 1위 |
2005 | 이병규 | LG | .337 | .843 | 12위 |
2006 | 이대호 | 롯데 | .336 | .980 | 1위 |
2007 | 이현곤 | KIA | .337 | .812 | 14위 |
2008 | 김현수 | 두산 | .357 | .963 | 2위 |
2009 | 박용택 | LG | .372 | .999 | 6위 |
2010 | 이대호 | 롯데 | .364 | 1.111 | 1위 |
2011 | 이대호 | 롯데 | .357 | 1.011 | 2위 |
2012 | 김태균 | 한화 | .363 | 1.010 | 1위 |
2013 | 이병규 | LG | .348 | .839 | 13위 |
2014 | 서건창 | 넥센 | .370 | .985 | 9위 |
2015 | 테임즈 | NC | .381 | 1.288 | 1위 |
2016 | 최형우 | 삼성 | .376 | 1.116 | 1위 |
2017 | 김선빈 | KIA | .370 | .897 | 17위 |
2018 | 김현수 | LG | .362 | 1.004 | 5위 |
1982년부터 1986년까지 5년 동안은 타율 1위가 곧 OPS 1위였습니다. 그러다가 1987년에 처음으로 이만수(60·당시 삼성)가 1.010으로 타격왕 장효조(1956~2011)보다 높은 OPS를 기록하게 됩니다.
이후에도 타율과 OPS 1위를 동시에 기록한 선수가 없는 건 아니지만 10년 평균을 따져 보면 차이가 드러납니다. 1982년부터 1990년까지 1980년대에 타율 1위는 OPS에서 평균 2.3위를 기록했습니다. 이후 10년 동안에는 3.3위로 내려가고, 그 다음 10년에는 5.2위로 더 내려갑니다. 최근 8년 동안에는 6.1위입니다. 갈수록 타율 1위가 OPS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겁니다.
타율보다는 OPS가 득점 변화를 더욱 잘 설명하는 기록. 따라서 타율 1위와 OPS 1위 사이에 거리가 늘어난다는 건 점점 더 타율만 가지고 타격 생산력을 측정하기가 어려워진다는 뜻입니다. 세이버메트릭스(야구 통계학)가 발전하면서 새로운 평가 기준이 생기고, 그 기준에 따라 타격 어프로치도 달라지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10년 전 저는 이 블로그에서 '타율 1위 만세! 타격왕 만세!'라고 외쳤습니다. 여전히 이 외침이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바뀌지 않을래야 바뀌지 않을 수가 없던 것도 사실. 올해 최고 타자가 김현수(30·LG)였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거의 계시지 않을 테니까요. 저는 올해 리그 최고 타자는 OPS 1위(1.175) 박병호(32·넥센)였다고 믿습니다. 점수와 승리 모두 팀에 가장 많이 선물한 타자니까요.
타율 1위로부터 '타격왕'이라는 작위를 빼았을 수는 없겠지만 그 무게감은 갈수록 줄어들 겁니다. 이제 거의 아무도 승리 타점 같은 기록에 주목하지 않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