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 홈런을 날린 휴스턴 2루수 호세 얄투베(28·왼쪽). 휴스턴=AP 뉴시스
과학자 10명도 못 푼 홈런 증가 미스터리
역시 스윙이 아니라 공이 문제였습니다. 그러니까 2015년부터 메이저리그에서 갑자기 홈런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유 말입니다. '역시'라는 부사를 쓴 건 '뜬공 혁명' 또는 '플라이볼 레볼루션(Fly Ball Revolution)'이라는 '시장의 우상'이 요란하기 이전에도 타자들이 홈런을 치면 좋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반가웠기 때문입니다.
2015년 경기당 1.01개였던 메이저리그 팀 평균 홈런은 지난해 1.26개로 2년 만에 24.8%가 늘었습니다. 그러자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지난해 8월 앨런 네이선 미국 일리노이대 명예교수(물리학)를 위원장으로 초빙해 각 분야 연구자 총 10명이 참여하는 독립조사위원회를 꾸렸습니다. 과학적으로 홈런이 늘어난 이유를 규명해 달라는 거였죠.
25일 연구 결과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84쪽짜리 보고서를 석 줄로 줄이면 "야구공(메이저리그 공인구)이 공기 저항을 덜 받게 됐다. 그래서 자연스레 멀리 날아가니까 홈런도 더 많이 나오게 됐다. 다만 어떤 특성이 변해서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겠다"로 쓸 수 있을 겁니다.
조사위는 공기 역할 실험을 통해 (저)항력과 부력을 계산하고 반발 계수를 비롯해 크기, 무게, 솔기 높이, 가죽 재질 같은 물리적 특성도 조사했지만 정확한 이유를 알아내지는 못했습니다. 네이선 위원장은 "항력 계수(drag coefficient)를 감소시킨 뚜렷한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다"며 "스모킹 건(결정적인 증거)은 없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이번 포스트 주제에 좀더 어울리게 설명드리자면 - 사실 이게 첫 번째 연구 결론이기도 합니다 - 야구공 발사 조건이 변해서 야구공이 더 멀리 날아가게 된 게 아니라 같은 조건일 때도 야구공이 더 멀리 날아가게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똑같은 타자가 똑같은 타격 자세로 때렸을 때도 비거리가 늘어나게 된 겁니다.
StatCast data show that the increases in home runs are primarily due to better “carry” for given launch conditions (exit velocity, launch angle, spray angle) as opposed to a change in launch conditions. The better carry results in longer fly ball distances for given launch conditions and therefore more home runs. Analysis shows that the better carry is not due to changes in temperature but rather to changes in the aerodynamic properties of the baseball itself, specifically to those properties affecting the drag.
갑자기 웬 종속?
그렇다고 타격 어프로치가 전혀 변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적어도 지난해에는 확실히 2015, 2016년하고 비교해도 변했습니다. 제가 근거로 삼은 건 z축 방향 종속을 뜻하는 Vzf입니다.
야구장도 3차원 공간이니가 축 세 개를 정할 수 있습니다. 투·타구 추적시스템 스탯캐스트나 이전 버전인 PFX(Pitch F/X) 역시 땅과 하늘 사이에 수직으로 그은 직선을 z축이라고 설정합니다.
값을 따질 때는 하늘 쪽이 플러스(+), 땅 쪽이 마이너스(-)입니다. 모든 공은 땅 쪽으로 떨어지게 마련이니까 기본적으로 Vzf는 마이너스로 나타납니다.
(x축은 1, 3루를 연결하는 방향. 제대로 못 그리면 z축과 헷갈릴 것 같아 생략한 y축은 홈플레이트에서 2루를 지나 외야로 뻗어가는 직선입니다.)
그렇다면 Vzf는 마지막 순간에 공이 떨어지는 속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직선에 가깝에 날아오는 속구는 이 값이 크고, 크게 휘는 커브는 이 값이 작을 겁니다. (값이 마이너스로 나타난다는 걸 감안하셔서 이해하셔야 합니다.)
물론 같은 구종 사이에서도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같은 속도로 날아오는 빠른 공이라고 해도 오른손잡이 투수가 (팔 방향에 있는) 3루쪽 높은 코스로 공을 던졌다면 Vzf가 크고, 그림에서처럼 1루쪽 낮은 코스를 향해 날아가면 Vzf가 작을 겁니다. 이해 가시죠?
2015~2017년 스탯캐스트 투구 기록 가운데 30만 개(연도별 10만 개)를 샘플링해 Vzf와 '헛스윙/스윙' 비율 사이 관계를 그래프로 그리면 아래 그림처럼 나옵니다. (위에서 설명드렸듯이 마이너스 값이기 때문에 Vzf가 '크면' 그래프 왼쪽에, '작으면' 오른쪽에 자리잡습니다.)
농담(濃淡)만 차이를 두고 회색으로 그린 2015, 2016년은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2017년은 이 두 해 그래프하고 비교하면 왼쪽으로 기울어있는 모양새입니다. 조금 풀어서 말씀드리면 2017년에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이전 두 해보다 Vzf가 큰 공을 때리려고 했을 때는 헛스윙을 덜 했고, 이 값이 작은 공을 때리려고 할 때는 헛스윙을 더 많이 했습니다. 이건 왜일까요?
타자들은 원래 살짝 올려쳤다.
스윙 각도에 관한 수많은 이론이 있지만 실제로 타자 대부분은 살짝 올려칩니다. 머리 뒤에 있던 방망이를 휘둘러 보통 허리 높이 정도로 들어오는 공을 때리는 과정을 상상해 보시면 이런 궤적이 자연스럽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GIF에서 애런 저지(26·뉴욕 양키스)도 그렇게 치고 있습니다.
위에서 보신 그래프도 이 사실을 스스로 입증합니다. 게다가 얼마나 올려치는지도 알려줍니다. 헛스윙/스윙 비율이 가장 낮은 건 -13, -14 피트/초 사이. 이를 각도로 바꾸면 약 7도가 나옵니다.
여기서 헛스윙/스윙 비율이 무슨 뜻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타자가 방방이를 휘둘렀을(스윙했을) 때는 분명 그 공을 때리겠다는 의사가 있었을 터. 적어도 파울은 만들고 싶었을 겁니다. 이를 실패했을 때가 바로 헛스윙/스윙 비율입니다.
야구에서 헛스윙은 주로 스윙 궤적과 투구 궤적이 맞지 않았을 때 나옵니다. 반대로 궤적은 맞았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았을 때는 파울입니다. 물론 궤적이 맞지 않아 파울이 나올 때도 있는데 백네트를 향해 곧바로 날아가거나 바닥으로 바로 꺼지는 타구가 그렇습니다. 야구를 보신 분이라면 이런 타구보다 1, 3루쪽 파울라인을 벗어나는 타구가 훨씬 많다는 걸 쉽게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메이저리그) 타자는 7도로 떨어지는 공을 상대하는 일에 가장 익숙하다고 가정할 수 있습니다. 아래 사진에 나오는 타격 연습기가 이런 각도로 나온다는 것 역시 우연이 아닐 겁니다.
이렇게 살짝 올려치는 게 좋다는 건 적어도 1970년 테드 윌리엄스(1918~2002)가 '타격의 과학(The Science of Hitting)'을 펴낼 때부터 정설에 가까웠습니다. 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 타자 윌리엄스가 이런 스윙 궤적을 강조한 건 지금껏 우리가 이야기한 것처럼 이 방향이 투구 궤적과 더 잘 맞아 떨어지고 그래서 공에 임팩트를 가할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나기 때문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메이저리거가 될 수 있는 기량을 갖춘 타자라면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살짝 '어퍼 스윙'을 구사했던 겁니다. 이 설명이 '타자들이 일정한 발사 각도와 발사 속도로 공을 띄우면 홈런이 된다는 걸 깨닫고 스윙 각도를 수정했다'는 뜬공 혁명 이론보다 제게는 좀더 자연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공을 멀리 던지려면 비스듬한 각도(약 42~43도)로 최대한 세게 던져야 한다는 건 물리학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거니까요.
낮게 들어온 공 맞히려면…
그러면 Vzf가 작은 공을 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더 퍼 올려야합니다. 아래 GIF에서 마이크 트라우트(27·LA 에인절스)가 그렇게 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트라우트는 정타를 쳤지만 우리는 스윙/헛스윙 비율을 따지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라는 것 아시겠죠? 왜냐하면 떨어지는 공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늘에서 공이 똑바로 떨어진다고 가정해 봅시다. 막대기를 수평 또는 수직으로만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어떤 쪽이 공을 더 맞히기가 쉬울까요? 당연히 수직일 겁니다. 좌우 또는 상하로 15도 정도만 이동할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해도 역시 수직 방향이 쉽습니다. 수직 방향일 때는 공과 막대기가 선으로 만나지만 수평 방향일 때는 점에서 만나니까요. 이게 착시와 함께 커브볼처럼 낮게 떨어지는 공을 '건드리기 어렵게' 만드는 기본 이유입니다.
그런데 Vzf가 작을 때 헛스윙이 늘었습니다. 거꾸로 클 때는 헛스윙이 줄었습니다. 그러면 방망이가 수평 방향으로 더 많이 움직였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다고 해도 영 허튼 소리는 아닐 겁니다. 공이 들어오는 궤적으로 방망이를 움직일 때 공을 건드리기는 할 텐데 실패한 거니까요. 상대 투수 역시 어퍼 스윙에는 높은 공(Vzf가 큰 공)을 주로 던졌을 텐데 이 쪽은 헛스윙/스윙 비율이 줄었으니까요.
따라서 뜬공 혁명이 실제로 존재했든 그렇지 않았든 타자들이 갑자기 스윙 각도를 올리치기 시작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제 아무리 메이저리거라고 해도 스윙 각도를 한 자리수 단위로 조전할 수 있을까요?) 그래프만 놓고 보면 오히려 원래 방향보다 방망이가 올라가는 각도가 줄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뭐가 달라졌느냐? 배트 스피드가 빨라진 겁니다. 그래서 공이 맞는 지점에서는 방망이가 더 높은 각도처럼 보이게 됐습니다. 팔로 스로우를 시작하기 전까지 방망이는 계속 상승 궤도를 그릴 수밖에 없으니까요. 방망이 끝이 올라가는 지점에서 공이 맞게 된 거죠.
뜬공 전성시대는 맞았나?
게다가 2015~2017년에 뜬공이 혁명적으로 늘어난 것도 아닙니다. 진짜 뜬공 전성시대는 오히려 2007년(37.9%)과 2010년(37.5%)이었습니다.
네, 뜬공 중에서 홈런이 차지하는 비중(HR/FB) △2015년 11% △2016년 12.8% △2017년 13.7%로 해마다 기록을 새로 쓴 건 사실입니다. (돌고 돌아 다시) 그 이유는 조사위원회가 밝힌 것처럼 공에 공기 저항이 적게 걸리기 때문입니다.
사실 뜬공은 담장을 넘어가지 못하면 별 재미를 보기 힘이 듭니다. 타구를 크게 △땅볼(.245) △뜬공(.134) △라인드라이브(.719)로 나누면 뜬공이 (홈런을 포함해) 페어 지역에서 안타가 될 확률(BABIP)이 제일 떨어지거든요.
그렇다면 왜 이렇게 우리는 뜬공에 열광했던 걸까요? 홈런은 거의 대부분 뜬공이니까요. 발사 각도, 타구 속도 같은 새로운(혹은 그렇게 보이는) 개념을 적용하기에 홈런만큼 재미있는 매개체는 잘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누구 하나 손해 보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렇게 스포츠를 즐기는 방법이 또 하나 늘어났으니까요. 그게 스탯캐스트가 우리에게 준 제일 큰 선물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