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 류현진(32·사진)이 진짜 '더 몬스터' 모드에 돌입했습니다.


류현진은 19일(이하 현지시간) 신시내티 방문 경기에 선발로 나서 7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평균자책점을 1.52로 끌어내렸습니다. 이제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류현진보다 평균자책점이 낮은 선수는 아무도 없습니다.


다저스가 이 경기에서 8-3으로 승리하면서 류현진은 시즌 여섯 번째 승리도 챙겼습니다. 내셔널리그에서 류현진보다 승리가 많은 투수도 없습니다.


류현진은 또 1일 샌프란시스코 방문 경기 때 1회에 1실점한 걸 마지막으로 이날까지 31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도 이어갔습니다. 다저스 구단 역사상 공동 11위에 해당하는 기록.


▌LA 다저스 역대 연속이닝 무실점 톱10
 순위  선수  연도  이닝  비고
 ①  오렐 허샤이저  1988  59  메이저리그 역대 1위
 ②  돈 드라이스데일  1968  58

 〃 2위

 ③  잭 그링키  2015  45⅔

 〃 6위

 ④  클레이턴 커쇼  2014  41⅔

 〃 16위

 ⑤  클레이턴 커쇼  2015  37
 ⑥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1981  35


 돈 서튼  1972  35


 ⑧  샌디 쿠팩스  1963  33


 오렐 허샤이져  1984  33


 박찬호  2000~2001  33



만약 류현진이 다음 경기 때 첫 3이닝 동안 무실점을 기록한다면 박찬호(46)가 다저스에 몸담고 있던 2000~2001년 기록한 33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을 넘어 코리안 메이저리거 최장 기록도 새로 쓸 수 있습니다.


이 정도 분위기가 되면 자이언 상 사이영 상 이야기도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게 당연한 일.


스포츠 전문 채널 ESPN은 홈페이지를 통해 '세이버메트릭스(야구 통계학)의 아버지' 빌 제임스(70)가 고안한 '사이영 상 예측 포인트(predictor)'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류현진은 이날 현재 74.9점으로 내셔널리그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최근 10년(2009~2018)년 동안 이 포인트에서 1위를 기록한 선수 20명 중 14명(70%)이 실제로 사이영 상을 탔습니다.


이렇게 사이영 상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류현진이 올해 잘 던지는 이유는 뭘까요?


먼저 2015 시즌을 앞두고 썼던 '베이스볼 비키니'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공끝이 소위 말하는 지저분한 타입도 아닙니다. 체인지업 구위만으로 상대 타자를 요리할 수 있는 유형이 아닌 거죠. 그래서 류현진은 체인지업과 빠른 공 사이에 속도 차이가 중요합니다.


이 역시 2013년이 더 좋았습니다. 그해에는 빠른 공과 체인지업의 차이가 17.6㎞였지만 지난해(2014년)에는 14.1㎞로 줄었습니다. 그래도 3.5㎞ 차이밖에 안 나는데 정말 이게 영향을 줬을까요?


2014년 기록만 보면 확실히 그렇습니다. 류현진은 지난해 빠른 공과 체인지업 속도 차이가 가장 큰 다섯 경기에서는 타율 0.219로 상대 타자를 막았습니다. 이 속도 차가 가장 작은 다섯 경기에서는 타율이 0.315였습니다.


(중략)


류현진은 올 시즌을 앞두고 출국하면서 "체인지업 각도가 안 좋았다. 낙차가 제대로 안 나왔는데 그 부분을 보완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스피드에 변화를 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일단 현재까지 속구와 체인지업 평균 속도 차이는 17.7㎞로 2013년 수준을 회복했습니다. "스피드에 변화를 줘야 할 것 같다"던 4년 전 계획이 올해 현실에서 나타나도 있는 것.



'낙차를 보완하겠다'던 다짐도 올해는 확실히 현실이 됐습니다. 아래 그래프는 속구와 체인지업이 상하좌우로 어떻게 움직였는지 그린 그림입니다.



2017년 속구와 체인지업이 뒤섞여 있던 형태에서 둘이 점점 떨어지는 걸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빠른 공과 움직임에서 차이가 없는 체인지업은 그냥 '느린 속구(=타자들 먹잇감)'에 가깝습니다.


코스 사용도 영리합니다. 타자는 몸쪽으로 날아온 공은 실제 속도보다 더 빠르다고 느끼고 바깥쪽으로 날아온 공은 더 느리다고 느낍니다. 마찬가지로 공이 높으면 더 빠르다고 느끼고 낮으면 느리다고 느낍니다. 이를 이론적으로 정리한 게 효과 속도(Effective Velocity)라는 개념입니다.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363승을 거둔 웨런 스판(1921~2003)이 이야기한 것처럼 "타격은 타이밍이고 피칭은 그 타이밍을 빼앗는 것"이기 때문에 효과 속도를 제대로 이용하려면 빠른 공은 몸쪽 높은 쪽(인하이)에 느린 공은 바깥쪽 낮은 쪽(아웃로)에 던져야 합니다.


올해 류현진은 물론 그렇게 던지고 있습니다. 속구(=빠른 공)은 몸쪽 높은 쪽 코스를 타깃으로 쓰면서 체인지업(=느린 공)은 바깥쪽 낮은 코스 그것도 스트라이크 존 안을 공략하는 것. 덧붙여 싱커를 체인지업과 비슷한 곳에 던지면서 상대 타자 타이밍을 빼앗고 있습니다.



물론 운도 따랐습니다. 류현진은 현재까지 상대 타자를 BABIP(Batting Averages On Balls In Play) .233으로 막고 있습니다. 지난해까지 통산 BABIP가 .302라는 걸 고려하면 팀 수비진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는 대목. 다저스 수비진은 현재 상대팀 타자를 리그에서 두 번째로 낮은 BABIP(.261)로 묶고 있습니다.


류현진은 올 시즌을 앞두고 출국하면서 "올해 목표는 20승"이라고 밝혔습니다. 21세기 투수에게 승리투수가 된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상징성이라는 건 무시할 수 없습니다. 처음 저 이야기를 듣고는 괜한 허풍이라고 생각했는데 시즌이 갈수록 메이저리그에서 20승을 거둔 한국인 투수를 만날 확률이 점점 올라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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