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에 웬 판사석?

"판사님께서 들어오십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All rise,  Judge enters)."


실제로 재판정에 한번도 가보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익숙한 표현. 요즘에는 양키스타디움에서도 저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양키스타디움에 판사석(The Judge's Chambers·사진)이 생겼거든요. 물론 진짜 판사가 앉는 자리는 아니고 우익수 바로 뒤쪽에 자리잡은 18석짜리 관중석 이름이 이렇습니다. 


저 자리에 이런 이름이 붙은 건 뉴욕 양키스 주전 우익수 애런 저지(25)를 응원하는 자리이기 때문. 아직 신인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 이 선수 성(姓)이 판사(judge)하고 똑같아 저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 양키스에서 전용 응원석까지 마련해 줄 정도면 펄펄 날고 있겠죠? 저지는 12일 현재 타율 .344, 21홈런, 47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타율과 홈런, 타점 모두 리그 선두 기록입니다. OPS(출루율+장타력)는 1.168.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남다른 법. 저지는 지난해 8월 14일 안방 경기 때 메이저리그 데뷔 첫 타석에서 홈런을 날리면서 양키스 팬들에게 확실히 자기 이름을 알렸습니다. 심지어 역시 데뷔 첫 타석에서 홈런을 친 타일러 오스틴(26) 다음에 나와 신인 선수 첫 타석 백투백 홈런을 때렸습니다. 스타는 괜히 스타가 아닌 거죠.



신인상, MVP 동시에?

그래도 지난해에는 메이저리그에서 27경기에 출전해 95번 타석에 들어서 .179/.263/.345, 4홈런, 10타점을 올리는 데 그치면서 기대에 못 미쳤던 게 사실. 그러다가 올 스프링캠프 때 .333/.391/.540, 3홈런을 치면서 개막전 엔트리에 주전 우익수 겸 8번 타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시작은 좋지 못했습니다. 저지는 133/.188/.200으로 올해 첫 5경기를 마쳣습니다. 그러나 4월 경기가 모두 끝났을 때 성적표에는 타율 .303, 10홈런, 20타점이 남아있었죠. 타순도 5번 자리까지 올라왔습니다. 아메리칸리그 4월의 신인도 당연히 저지의 차지였습니다.


저지는 5월에도 .347/.441/.642를 치면서 이달의 신인을 또 한번 차지했고, 지난주에는 생애 처음으로 (신인을 따로 뽑지 않는) 이 주의 선수로도 뽑혔기 때문에 6월에도 이달의 신인 수상이 유력한 상태입니다. 당연히 올해 신인상 0순위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저지가 만약 현재 페이스대로 흔히 타격 3관왕이라고 부르는 타율, 타점, 홈런 모두 계속 1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최우수선수(MVP)까지 노려볼 만 합니다. 가장 강력한 MVP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크 트라우트(26·LA 에인절스)가 부상으로 6~8주 정도 뛸 수 없다는 것도 저지에게는 기회입니다. 여태 메이저리그에서 신인상과 정규리그 MVP를 동시에 차지한 건 1975년 프레드 린(65·당시 보스턴)과 2001년 이치로 스즈키(44·당시 시애틀) 둘뿐입니다.


저지가 특히 뉴욕 팬들에게 사랑받는 건 안방 경기에서 강하기 때문. 저지는 올해 현재 양키스타디움에서 .400/.519/.866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전체 홈런 21개 중 15개(71.4%)를 양키스타디움에서 때렸습니다. '판사석'이 괜히 필요했던 게 아니죠. 


홈런도 그냥 홈런이 아닙니다. 저지는 11일 안방 경기서 시속 121.1마일(약 194.9㎞)짜리 타구를 쏘아올렸습니다. 이 타구는 메이저리그에서 2015년 군사용 레이저 기술을 활용해 타구 속도를 재기 시작한 스탯캐스트 시대'에 가장 빠른 속도로 날아간 홈런이 됐습니다.


이튿날 안방 경기서 날린 홈런은 496피트(약 151.2m)를 날아 갔습니다. 이는 ESPN에서 2009년 '홈런 트래커'를 활용해 비거리를 측정한 뒤 가장 멀리 날아간 홈런입니다.

         


단, 스탯캐스트 방식으로는 지난해 장칼로 스탠턴(28·마이애미)이 504피트(약 153.6m)짜리 홈런을 날린 적이 있어 최장 기록은 아닙니다. 제이크 아리에타(31·시카고 컵스)도 2015년 503피트(약 153.3m)짜리 홈런을 기록한 적이 있습니다.


(양키스에서) 킹카로 살아남는 법

   

저지가 홈런을 펑펑 쏘아올릴 수 있는 원동력은 역시 '사이즈'. 저지는 키 201㎝, 몸무게 125㎏으로 어디 내놓아도 꿀리지 않는 덩치입니다. 메이저리그 외야수 평균(186㎝·93㎏)이 초라해 보일 정도죠. 저지는 마이너리거 시절 한국 매체 일간스포츠와 인터뷰하면서 "더그아웃 천장에 닿을까 봐 안에서 헬멧을 쓰고 다닌다"고 농담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출신은 저지는 원래 2010년 신인지명회의(드래프트) 때 오클랜드에서 31라운드에 지명을 받았지만 대학(프레스노주립대) 진학을 선택했습니다. 저지는 "부모님께서 '대학 교육을 받은 후에 프로야구에 진출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해 주셔서 이를 따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뒤 2013년 드래프트 때 전체 32번으로 양키스에서 부름을 받아 결국 프로야구에 입문하게 됐습니다.


저지는 "대학 야구를 경험한 게 큰 도움이 됐다. 고등학교 선수들은 조금만 성적이 좋아도 근거 없는 자신감이 가득 차서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대학 야구를 경험하면서 나보다 훌륭한 선수가 많다는 걸 깨달았다"며 "특히 성적이 좋다고 기고만장 하지 말고 반대로 성적이 나빠도 의기소침할 필요 없이 평상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걸 배운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내게 핀스트라이프(양키스 줄무늬 유니폼)는 영광이다. 양키스는 월드시리즈 최다 우승(27회) 기록을 보유하고 있을 만큼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 구단으로 꼽힌다. 그래서 많은 선수가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싶어 한다. 그런 유니폼을 입고 매일 훈련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고 영광스럽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래도 캘리포니아 출신인데 양키스에서 뛰는 게 마냥 좋기만 할까요? 저지는 "어릴 때 샌프란시스코 경기를 보며 성장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가을야구'는 양키스 독무대였다. 특히 (양키스 주전 유격수였던) 데릭 지터(43·은퇴)의 활약은 실로 대단했다. 그때부터 지터를 나의 롤모델로 삼았고 그의 열렬한 팬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언론 인터뷰 때까지 이런 립서비스라니! 역시 양키스에서는 아무나 스타가 될 수 있는 게 아닌가 봅니다. 이상 속 좁은 보스턴 팬의 인터뷰 평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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