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것보다 더 안 좋습니다. 프로배구 2016~2017 NH농협 V리그 남자부 1라운드 경기를 마친 현대캐피탈 이야기입니다. 승패만 보면 4승 2패(승점 10점·3위)로 만족할 만한 결과. 하지만 내용은 영 좋지 못합니다. 특히 블로킹이 문제입니다.
현대캐피탈은 지난 시즌 세트당 블로킹 2.74개로 리그에서 블로킹을 제일 잘하는 팀이었습니다. 올 시즌 1라운드 때는 1.87개로 7개 팀 가운데 5위에 그쳤습니다. 특히 4일 경기에서는 블로킹을 한 개도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8일 1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블로킹 10개를 성공하면서 기록이 올랐습니다.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도 오프시즌 때 블로킹 문제를 어떻게 풀까 많이 고민했다고 합니다. 센터 자원 신영석(30), 최민호(28)를 날개 공격수로 기용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최 감독은 "둘을 날개에 놓으면 로테이션 6번 중에서 4번은 2m급 선수 둘을 전위에 세울 수 있어 생각해 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시즌 블로킹 1위 팀 감독이 이런 고민을 했던 건 외국인 선수 오레올(30·사진)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기 때문입니다. 최 감독은 "지난해 문성민(30)에게 연타 공격을 주문했던 것도 공이 다시 넘어올 때 오레올이 잡아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개인 기록만 보면 좀 싱겁기도 합니다. 오레올이 지난 시즌 한 세트에 기록한 블로킹은 평균 0.459개. 지난해 남자부 7개 팀을 거쳐간 외국인 선수 9명 가운데 6위밖에 되지 않는 성적입니다. 그런데도 최 감독이 "오레올이 빠지면서 사이드 블로킹이 낮아졌다"고 강조했던 이유는 뭘까요?
오레올이 동료 선수들 블로킹을 끌어올리는 재주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센터는 확실히 그랬습니다. 신영석, 최민호에 덧붙여 김재휘(23), 윤봉우(34·현 한국전력), 진성태(23·현 대한항공) 등 현대캐피탈에서 센터진 성적을 분석한 결과입니다.
구분 | 블로킹 전체 | 블로킹 득점 |
오레올 옆일 때 | 2.290 |
0.742 |
아닐 때 | 1.294 | 0.363 |
여기서 '블로킹 전체'는 블로킹 득점에 유효 블로킹(블로커 손에 맞은 공을 동료가 수비로 살려냈을 때 받는 기록)과 블로킹 어시스트(동료 선수가 블로킹할 때 같이 점프 뛴 선수가 받는 기록)를 모두 더한 숫자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오레올이 옆에 있을 때 이 센터 선수들 블로킹 기록이 모두 올라갑니다.
오레올이 옆에 있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이를 이해하시면 배구에서 '로테이션'이 무엇인지 미리 알고 갈 필요가 있습니다. 배구에서 선수가 아래 그림처럼 나왔다면 우리 팀이 서브를 넣을 때마다 시간 방향으로 한칸씩 옮겨가며 경기에 참가하게 됩니다.
그러면 전위(앞줄)는 ①L1-C1-R → ②S-L1-C1 → ③C2-S-L1 → ④L2-C2-S → ⑤R-L2-C2 → ⑥C1-R-L2 순서로 바뀌게 됩니다. 이때 L1 옆에 있는 C1은 ①, ② 두 차례 전위에 서게 되지만, 옆에 있지 않은 C2는 ③에서 한번만 같이 전위에 서게 됩니다.
만약 이렇게 두 번 같이 서는 것과 한 번 같이 서는 것 사이에 기록 차이가 난다면 오레올이 블로킹에 도움을 줬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실제 결과 그렇게 나왔습니다. 좀 유식한 말로 'L1의 존재와 C1의 블로킹 능력은 아무 관계가 없다'는 문장은 유의확률이 0.034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연히 이런 결과가 나왔을 확률이 3.4%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레올 대신 올 시즌 현대캐피탈 외국인 선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톤(32·캐나다)하고 비교하면 차이가 더욱 두드러집니다. 톤은 1라운드에서 23세트를 뛰면서 블로킹을 잡아낸 게 3개(세트당 0.130개)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러니 지난 시즌보다 세트당 블로킹이 0.87개 줄어들어든 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배구에서 블로킹은 상대 득점을 막는 동시에 우리 팀 득점을 올리는 효과가 있습니다. 배구가 기본적으로 서로 한 점씩 주고 받는 경우가 제일 많다는 걸 감안하면 블로킹은 2점 효과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대캐피탈은 현재 이게 안 되고 있는 것. 게다가 톤이 2단 토스로 올라온 오픈 공격을 책임질 수 있는 스타일도 아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경기가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한 팀 지도자가 두 손, 두 발 다 놓고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는 법. 과연 최 감독은 어디서 어떤 해법을 찾아낼까요? 현대캐피탈이 강팀으로 가느냐 그리고 최 감독이 정말 명장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질문 역시 같은 데서 답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