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C로 쏘았습니다."
프로배구 중계를 보다 보면 아나운서나 해설위원이 이렇게 공격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흔히 들을 수 있습니다. 배구에 익숙한 분들이야 한번에 알아 들으시겠지만 초보 팬에게는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 C는 C속공을 뜻합니다. 한국배구연맹(KOVO) 공식 용어로 C속공은 '퀵오픈'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2015~2016 NH협 V리그에서 대세가 된 공격 기술입니다.
KOVO는 공격 기술을 △오픈 △속공 △퀵오픈 △시간차 △이동 △후위 등 6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이 6가지는 스파이크로 득점할 수 있는 기술을 뜻합니다.
여기에 서브(에이스)하고 블로킹을 더하면 배구 선수가 자력으로 득점할 수 있는 8가지 경우가 나옵니다.
한번 이 여섯 가지가 어떤 플레이를 뜻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변종(?)도 함께 설명했습니다.
오픈
배구에서 가장 기본적인 공격 기술인 오픈(open)은 '연다'는 뜻 그대로 세터가 날개 공격수(레프트, 라이트)를 향해 공을 높게 띄워 보내는 걸 뜻합니다.
그러면 공격수는 높이와 힘을 무기로 강하게 공을 상대 코트에 내리 꽂으면 됩니다.
대신 상대가 눈치 채기 쉬운 공격 기술이라 상대 블로킹에 가장 많이 걸린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프로 원년부터 올 시즌까지 전체 오픈 시도 중 10.9%가 상대 블로킹에 가로 막혔습니다.
속공
속공(퀵·quick)은 반대로 상대가 알아채기 전에 빠르게 공격하는 방법입니다. 보통 미들 블로커(센터)가 많이 참여합니다.
속공 앞에 알파벳을 붙여 A속공(A퀵), B속공(B퀵)처럼 쓰기도 하는데 나라마다 의미가 다릅니다.
한국에서는 세터와 공격수 사이 거리가 1m 이내일 때는 A속공, 1~2m 정도면 B속공이라고 부릅니다.
세터는 보통 왼쪽을 보고 서는데 오른쪽에 있는 공격수에게 속공을 보낼 때도 있습니다.
이 때는 백(back)을 써서 백A속공, 백B속공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더블 퀵
현대 배구에서는 공격수 두 명이 동시에 속공을 하는 것처럼 점프를 해서 상대 블로커들에게 혼선을 주는 전술도 쓰고 있습니다.
이를 흔히 '더블 속공(더블 퀵)'이라고 합니다.
날개 공격수인 현대캐피탈 문성민(30)이 올 시즌 처음 속공 득점을 성공할 때 선보인 기술이 바로 이 더블 속공이었습니다.
센터 최민호(28)가 문성민하고 같이 점프를 했습니다.
퀵오픈(C속공)
퀵오픈 공격은 오픈과 속공을 합친 형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세터가 직선에 가깝게 공을 쏘면 날개 공격수가 이를 마무리하는 형태입니다.
보통 세터하고 날개 공격수가 3m 이상 떨어져 있을 때가 많기 때문에 C속공이라고 부릅니다.
세터가 빠르게 세트를 할 줄 알아야 하는 건 물론 날개 공격수도 발이 빨라야 가능한 공격 기술입니다.
시간차
시간차는 선수 한 명이 먼저 트릭 점프를 뛰고 뒤따라 점프한 선수가 실제로 스파이크를 책임지는 공격 기술입니다.
1964년 도쿄(東京) 올림픽 때 여자 대표팀이 이 기술을 처음 선보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이 신기술을 앞세워 금메달을 목에 걸였습니다. 이때부터 배구가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됐으니 일본은 초대 여자 챔피언이 된 겁니다.
위 그림에서 문성민은 강하게 공을 때리지 않고 살짝 방향을 비틀어 상대 코트에 꽂았습니다. 이런 공격법은 연타(軟打)라고 합니다.
개인 시간차
동료 선수 도움 없이 자기 혼자 점프 타이밍을 조절해 시간차 공격을 구사할 때도 있습니다.
일부러 점프 타이밍을 늦춰 상대 블로커가 내려온 다음 공격하는 방식. 이를 개인 시간차라고 부릅니다.
여자부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흔한 공격법. 남자부에서는 삼성화재 이선규(35)가 유일하게 이 기술을 '특기'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동
이동 공격은 주로 센터가 다른 선수 뒤를 돌아 네트 쪽으로 파고 들면서 스파이크를 날리는 기술을 뜻합니다.
남자부에서는 올 시즌 활용 빈도 0.1%로 사실상 멸종한 공격 옵션이지만 여자부에서는 3.2%로 남자부보다 32배 많이 쓰고 있습니다.
여자부 선수들은 후위 공격이 약하기 때문에 이동 공격을 많이 씁니다.
로테이션상 세터가 전위에 있을 때 라이트는 후위 공격만 해야 하는데 여자 선수들은 점프력이 부족해 후위 공격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 오른쪽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센터가 이동하는 겁니다.
여자부에서 센터와 라이트를 같이 보는 선수가 많은 이유도 여기 녹아 있습니다.
플레어
남자 선수는 이동 공격 패턴이 조금 다를 때가 있습니다.
위 GIF처럼 날개 공격수가 후위 코트 가운데 있다가 전위 사이드 쪽으로 이동하면서 공격을 할 때가 있는 것.
이를 흔히 '플레어'(flare) 공격이라고 부릅니다. 불꽃이라는 낱말 뜻 그대로 불꽃이 치솟는 것처럼 옆으로 확 퍼진다는 뜻입니다.
후위(백어택)
배구에서 로테이션상 후위에 자리 잡고 있는 선수는 어택라인(네트 뒤 3m 지점에 코트를 가로 질러 그은 선) 앞에서는 머리 위에 있는 공을 때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터가 어택라인 뒤로 공을 띄우면 주로 라이트가 달려와서 공을 때리게 되는데 이를 후위 공격(백어택)이라고 합니다.
로테이션상 라이트는 세터와 대각에 서기 때문에 세터가 전위에 있으면 라이트는 무조건 후위에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라이트가 후위 공격에 가장 많이 참여합니다.
중앙 후위(파이프)
그렇다고 라이트만 후위 공격을 하는 건 아닙니다.
후위에 있는 레프트가 공격을 할 때는 보통 중앙 후위 공격이라는 기술을 활용합니다.
중앙 후위 공격은 브라질 남자 대표팀을 세계 정상으로 만든 공격 전술로 유명합니다.
요즘 TV 중계 때 자주 들리는 '파이프(pipe) 공격'이 바로 이 공격 기술을 뜻합니다.
파이프 공격을 할 때 세터는 속공 못지 않게 빠르게 세트해야 하고, 센터는 시간차 공격을 하는 것처럼 페이크 점프를 뛰어야 합니다. 공격수는 발이 빨라합니다.
그래서 파이프 공격이 '스피드 배구'를 상징하는 기술이라고 믿는 이들이 많습니다.
위에 있는 속공 GIF에서도 뒤에서 달려든 박주형(29)이 공을 때렸다면 파이프 공격이 됩니다.
여기 나온 GIF에서 센터만 보면 자기가 직접 공격하지 않을 때도 계속 점프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상대 블로커를 속이려고 계속 연기(?)를 하는 것.
게다가 센터는 후위에 있는 세터가 디그(상대 득점을 많이 내는 수비) 등으로 무너졌을 때 '전위 세터'를 맡아야 할 때도 잦습니다. 당연히 블로킹도 책임져야 합니다.
센터도 공격 시도 숫자 이상으로 팀에 기여하는 게 많은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