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가 아니라 금지 약물 복용이었습니다. 마리야 샤라포바(29·세계랭킹 7위·사진)는 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올 1월 호주 오픈 (테니스 대회) 때 약물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며 "며칠 전 국제테니스연맹(ITF)에서 통보를 받았다. 전적으로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습니다.
계속해 "지난해 12월 22일에 세계반도핑기구(WADA)에서 e메일을 한 통 받았다. 새로 금지한 물질을 알리는 링크가 들어 있었는데 클릭해 보지 않았다"면서 "내가 아주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덧붙였습니다. "아직 징계 절차에 대해 듣지 못했다"는 샤라포바는 "이런 식으로 커리어를 끝내고 싶지는 않다. 다시 코트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샤라포바는 "10년 동안 주치의로부터 밀드로네이트라는 약물을 처방 받아 왔다. 다른 말로는 멜도니움이라고 한다는데 그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면서 "WADA에서 올해 1월 1일자로 멜도니움을 금지 약물로 적용했는데 그 사실도 알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원래 협심증이나 심근경생 치료용으로 쓰는 멜도니움은 WADA 금지 약물 항목 'S4.호르몬 및 대사 변조제'에 속하는 것으로 상시 복용 금지 물질입니다. 종목도 가리지 않습니다. 어떤 종목에서 뛰든 무조건 먹으면 안 되는 물질입니다. 샤라포바는 2006년 마그네슘 결핍 진단을 받은 뒤부터 이 약물을 복용해 왔다고 밝혔습니다. 샤라포바는 "지난 10년 동안 WADA는 이 약물을 금지했던 적이 없다. 나는 합법적인 치료 목적으로 이 약을 복용했던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문제는 러시아 선수들이 도핑(약물을 써서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행위) 루머에 연루될 때마다 등장한 약물이 바로 멜도니움이라는 것. 동구권에서는 널리 쓰는 약물이지만 미국식품의학안전국(FDA) 미승인 물질이기도 합니다. 이 약물을 운동 선수가 복용하면 제일 큰 이유는 지구력 향상에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 또 훈련 후 회복 속도도 빨라지고 경기에도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고 합니다.
ITF는 샤라포바가 12일 이후 출장 정지 상태가 된다고 알렸습니다. 샤라포바는 ITF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로 했습니다. 최종 징계는 테니스반도핑프로그램(TADP)에서 내리게 멜도니움이 적발되면 1년 정도 출장 정지 처분을 받는 게 일반적입니다. WADA 관계자는 "단순 실수라는 점을 증명할 수만 있으면 아예 징계가 없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여자 테니스 선수가 도핑에 연루된 건 샤라포바가 처음은 아닙니다. 마르티나 힝기스(36·스위스)는 2007년 윔블던 도중 도핑 데스트에서 코카인이 검출됐습니다. 힝기스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항변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힝기스는 그해 11월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2002년 은퇴했다가 2005년 코트로 돌아온 뒤 다시 은퇴를 선언한 겁니다. 물론 지금은 다시 복귀해 '복식의 여왕'으로 거듭났습니다. 현재 힝기스-사니아 미르자(30·인도) 조가 여자 복식 세계랭킹 1위입니다.
샤라포바가 '중대 발표'를 예고하면서 은퇴 선언을 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잇따랐습니다. 최근 8개월 동안 각종 부상으로 대회에 세 번밖에 출장하지 않았으니 억측도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현재도 부상을 달고 있습니다. 샤라포바는 "오늘 내가 은퇴 선언을 하는 줄 알고 오신 기자 분들이 적지 않은 걸로 안다. 만약 내가 진짜 은퇴 선언을 하려고 했다면 빨간 카페트가 깔린 LA 도심 속 호텔을 회견 장소로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