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조심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남자프로테니스(ATP) 세계랭킹 1위 노바크 조코치비(29·세르비아·사진)가 구설수에 휘말렸습니다. "남자 테니스 선수가 상금을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테니스는 4대 메이저 대회 모두 남녀부 상금이 똑같습니다. 이에 대해 여자프로테니스(WTA) 랭킹 1위 세리나 윌리엄스(35·미국)은 "조코비치가 아들만 있는 걸로 아는데 딸이 있으면 가서 똑같이 얘기해 보라고 전하고 싶다"고 받아쳤습니다.
조코비치는 20일(현지 시간) ATP투어 BNP 파리바스 오픈 남자 단식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그 뒤 인터뷰에서 "관중 숫자 등 여러 통계를 보더라도 남자 테니스가 더 인기가 많다. 여자프로테니스(WTA)가 합당한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싸웠듯 남자 테니스도 싸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먼저 이렇게 얘기한 건 아닙니다. 이보다 앞서 이 대회 최고경영자(CEO) 레이먼드 무어(70)가 "여자 선수들이 남자 선수들 덕을 보고 있다(WTA ride on the coattails of the men)"고 말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무어는 "내가 여자 선수라면 매일 밤 무릎을 꿇고 '로저 페더러(35·스위스·3위), 라파엘 나달(30·스페인·5위)가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기도를 올릴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한 견해를 묻자 조코비치는 "매우 예민한 문제이기는 하지만…"이라고 말문을 열면서 저렇게 답한 겁니다. 조코비치는 "남녀 테니스 중 어떤 대회가 주목을 더 크게 받고 입장권과 기념품이 많이 팔리느냐"며 "그런 사정에 맞게 상금을 분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여자 테니스 인기가 더 높으면 남자 선수들이 적게 받는 게 마땅하냐"는 질문에는 "확실히 그렇다(Absloutely)"고 답했습니다.
사실 남자 테니스 인기가 더 높다는 것부터 항상 사실은 아닙니다. 2013, 2014년 2년 연속으로 US 오픈 여자 단식 결승전이 남자 결승전보다 TV 시청률이 더 높게 나왔습니다. 지난해 US 오픈 역시 여자 단식 결승전 티켓이 남자 결승전보다 먼저 매진됐습니다.
테니스는 프로 스포츠 종목 중에서 제일 먼저 남녀 상금을 똑같이 맞췄습니다. 1973년 US 오픈이 4대 메이저 대회 중 처음으로 남녀부에 똑같은 상금을 내걸었습니다. 그 뒤 2001년 호주 오픈, 2006년 프랑스 오픈도 마찬가지 선택을 내렸습니다. 2007년 윔블던을 마지막으로 그랜드 슬램 대회는 모두 상금 양성 평등화를 이룬 상태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테니스 대회 상금이 똑같은 건 아닙니다. 제가 예전에 썼던 '유리 천장' 기사를 잠시 인용하면
남녀 상금이 똑같은 4대 메이저 대회를 제외하면 올해(2013년) WTA 총상금은 5870만 달러로 ATP(7548만 달러)의 77.8% 수준. 반면 골프에서는 여자프로골프(LPGA) 총상금(4900만 달러)이 남자프로골프(PGA·2억600만 달러)의 23.8%밖에 안 된다.
그래도 테니스는 확실히 남녀 임금 격차 해소에 앞장서는 스포츠입니다. 이렇게 남녀 상금 격차가 적기 때문에 테니스 선수는 여자 스포츠 세계에서도 독특하게 존재하게 됩니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서 해마다 발표하는 스포츠 선수 소득 순위 100위 안에 이름을 올린 여자 선수는 딱 두 명. 마리야 샤라포바(29·러시아)하고 윌리엄스입니다.
반면 위에 등장한 것처럼 골프는 남녀 상금 차이가 큰 대표 종목입니다. 23일 현재 올 시즌 PGA 상금 1위 애덤 스콧(36·호주)은 436만8918 달러(약 50억7366만 원)를 벌었습니다. LPGA 1위 장하나(24·비씨카드)는 58만1752달러(약 6억7570만 원)로 13.3% 수준입니다. 지난해 US 오픈 우승 상금은 남자 180만 달러(약 20억9070만 원), 여자 81만 달러(약 9억4082만 원)였습니다.
축구도 상금 차이가 큽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팀 독일이 3500만 달러(약 406억5250만 원)를 상금으로 받을 때 2015 캐나다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한 미국(사진)은 20분의 1을 겨우 넘긴 200만 달러(약 23억2300만 원)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남자보다 여자 축구가 훨씬 더 인기 있지만 미국여자프로축구(NWSL) 샐러리캡(연봉 총액 상한제)은 26만5000달러(약 3억780만 원)밖에 되지 않습니다. 남자(MLS)는 349만 달러(약 40억5364만 원)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남여 상금이 똑같은 종목이 더 많습니다. 영국 BBC 방송 2014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메이저 대회나 챔피언십에 상금을 걸어두고 있는 33개 종목 중에서 25개 종목(75.8%)이 남녀 상금이 똑같았습니다. 또 갈수록 남녀 상금을 똑같이 맞추는 종목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2014년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스포츠 애호가 61%는 톱레벨 여자 선수는 남자 선수만큼 재능을 갖추고 있는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절반 이상이 여자 스포츠도 남자 스포츠만큼 익사이팅하다고 답했습니다. 물론 전체적으로는 남자 경기가 더 재미있다는 뜻이죠. 그러니 남자 테니스 선수들이 돈을 더 많이 벌고 싶다면 지금 있는 파이를 여자 선수들한테 빼앗아 올 게 아니라 머리를 맞대고 전체 파이를 키우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