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넥센 김택형(19·사진)이 푹 숙였던 고개를 당당하게 치켜 들었습니다. 김택형은 16일 안방 목동 경기에서 5이닝 동안 삼진 8개(볼넷 2개)를 잡아내는 동안 롯데 타선에 단 1점만 내주며 데뷔 후 처음으로 선발승을 거뒀습니다. 4회 최준석(32)에게 허용한 솔로 홈런이 유일한 옥에 티. 게다가 6회 갑자기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지 않았다면 더 오래 마운드를 지켰을지 모릅니다. 그만큼 투구 내용이 좋았습니다. 10일 광주 KIA 경기에 이어 두 경기 연속 호투.
그 전까지 김택형은 9와 3분의 2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8.38을 기록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다닐 만도 했죠. 그런데 최근 선발 두 경기에서는 10이닝을 던져 평균자책점 1.80입니다. 그 덕에 넥센은 갑자기 송신영(38) 말고도 등판 때 견적을 내볼 수 있는 토종 선발 투수를 하나 얻었습니다. 팬들이 더욱 기대하는 건 김택형이 넥센에서는 씨가 마른 줄 알았던 왼손 투수라는 점. 무엇이 김택형을 이렇게 달라지게 만들었을까요?
#넥센히어로즈 내일 논개 아니 선발 투수는 김택형, 그가 상대해야 하는 #KIA타이거즈 선발은 양현종
— sportugese (@sportugese) June 9, 2015
제가 찾은 정답은 '머리' 그리고 '글러브팔'입니다. 원래 김택형은 공을 놓을 때 고개를 숙이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이런 투구폼으로 메이저리그에서 6시즌 동안 살아 남은 오카지마 히데키(40·岡島秀樹)하고 비교하는 기사가 나올 정도였죠. 김택형은 "고등학교(동산고) 때부터 이렇게 던지다보니 몸에 익숙해졌다"며 "어려운 투구 동작인 건 맞다. 특히 제구력이 문제다. 그래서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달 20일 LG 경기 때만 해도 이 버릇은 여전했습니다. 당시 경기 중계를 캡처한 아래 GIF 파일을 보시면 공을 던지고 나서 인사하듯이 고개를 숙이는 장면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16일 경기 때는 이런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투구 동작 내내 머리가 몸의 중심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0일 경기 때도 그랬습니다.
어떤 무술이든 돌려차기 할 때는 머리부터 수평으로 돌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야 몸통을 재빨리 회전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는 머리가 우리 몸에서 가장 무거운 부분이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투수가 공을 던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이오메카닉스 피칭 이론에 따르면 투수가 던지는 팔 모양은 자기 신체 조건에 따라 얼마든 변할 수 있지만 몸통은 반드시 균형을 유지해야 하며 두 눈은 평행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과서적으로 얘기해 투수가 동적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투구하려면 △공 던지는 반대편 다리를 들어올리는 리프트 때는 배꼽 위 △앞으로 다리를 뻗는 스트라이드 때는 두 다리 사이 △실제로 공을 놓는 릴리스 포인트 때는 무릎 위에 머리가 위치하고 있는 게 가장 이상적입니다.
그러니 고개를 숙이는 폼은 아주 일부 선수를 제외하고는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고개가 젖혀지는 것은 세게 던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야만 세질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것이다"이라고 말했습니다. 염 감독은 그러면서 팀 선배인 조상우(21)를 예로 들었습니다. 조상우 역시 신인이던 2013년 고개를 숙인 채 공을 던졌지만 투구폼을 손보면서 제구를 잡았습니다.
이제 '글러브팔'을 이야기할 차례. 글러브팔은 문자 그대로 글러브를 끼운 팔을 뜻합니다. 김택형은 왼손 투수니까 오른팔이 글러브팔이겠죠. 글러브팔이 중요한 건 브레이크 겸 스티어링휠(핸들) 구실을 하기 때문입니다. 투수가 공을 던지는 힘은 대부분 상체 회전에서 나옵니다. 만약 중간에 브레이크가 없다면 왼손 투수는 1루에서 3루 쪽으로 그대로 힘이 쏠리게 됩니다. 이때 글러브가 브레이크 구실로 회전을 막아주는 동시에 회전으로 생긴 힘을 포수 쪽으로 향하게 만들어 줍니다.
5월 20일 경기까지 김택형은 글러브를 몸 쪽으로 당기면서 투구했습니다. 제가 2013년 4월 19일자에 "현진 투구폼, ML선 '별종'"이라는 기사를 쓰면서 '동양식'이라고 규정했던 형태입니다. 반면 이제는 몸이 글러브 쪽으로 나아가면서 공을 던집니다. 같은 기사에서 '미국식'이라고 불렀던 형태입니다. 당시 기사에서 인용하면
NPA(National Pitching Association)의 인체공학적 투구 이론에 따르면 투구 동작은 △(우완 투수는 왼쪽) 다리를 들어 힘을 모아 △앞발(우완 투수는 왼발)을 뻗어 이 힘을 추진력으로 바꾸고 △상체 회전을 통해 추진력을 회전력으로 바꾼 다음 △팔에 회전력을 전달해 공을 던지는 행위다. 당연히 힘과 힘이 바뀌는 과정에서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투구다.
이 관점에서 보면 글러브를 앞에 두는 미국 방식이 더 효과적이다. 빠른 속도로 달리던 자동차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순간적으로 몸이 앞으로 쏠리는 것처럼 글러브로 '가상의 벽'을 만들면 팔이 더 빨리 회전하기 때문이다.
기사 분량이 제한적이다 보니 다 쓰지 못했지만 그러다고 동양식이 아주 잘못된 접근법인 건 아닙니다. 언제나 그렇듯 지나친 게 문제죠. 글러브를 너무 당기면서 투구하면 몸이 공 던지는 팔 반대 쪽으로 기울기 때문에 몸의 균형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면 릴리스 포인트를 충분히 끌고 나오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릴리스 포인트를 끌고 나오지 못하면 제구가 잡히지 않는 건 물론이고 타자가 느끼는 '체감 속도' 역시 느려지게 됩니다.
염 감독은 "김택형은 앞으로도 계속 투구폼을 교정하면서 간다. 당장 한 경기 (결과)보다 좋은 과정으로 흘러갔으면 좋겠다. 눈 앞에 한 경기보다 앞으로 10년을 잘 던질 수 있게 하라고 항상 귀띔해준다”며 "기대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김택형에게 더 많은 기대와 희망을 엿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올해 신인선수 지명회의(드래프트) 2라운드 때 넥센 지명을 받은 김택형은 개막전 때 서건창(26)이 끝내기 홈런을 때려낸 덕에 고졸 신인 투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개막전 승리투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데뷔전에서 승리투수가 되는 행운까지 누렸습니다. 하지만 데뷔 두 번째 승리는 분명 자기 실력으로 일궈냈습니다. 중간에 또 고비가 오겠지만 아직 신인 선수이니만큼 고개 떳떳하게 들고 씩씩하게 배워가면서 던지면 됩니다. 강윤구(25)를 견뎌낸 넥센 팬들이시라면 몇 년 더 지켜볼 용의가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