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1차전이 끝나고 동료들과 함께 소주 한 잔을 나누는 자리에서 한 선배 기자가 그러시더군요. "네가 칼럼으로도 썼지만 여전히 나는 네가 그 팀을 응원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선배께 즉답을 하지는 못했지만 아니 어떻게 이런 팀을 응원하지 않을 수가 있는지 되묻고 싶었습니다. 그 이유를 하나씩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이제는 가장 유력한 최우수선수(MVP) 후보가 된 이 팀 1번 타자는 LG에서 방출 당한 뒤 다시 신고선수(연습생)부터 시작해 지금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리고는 한 시즌에 안타를 200개도 더 때린 선수가 가을 야구 때는 당연하다는 듯 희생번트로 징검다리를 놓습니다. 생애 154세이브나 거둔 마무리 투수는 자기 생애 첫 포스트시즌 세이브에 아웃 카운트가 딱 하나 남은 상황에서 마운드를 넘겨주며 오히려 후배를 격려합니다. 


3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한 4번 타자는 전 소속팀에서 만년 유망주 꼬리표를 떼리 못해 '박병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4차전 때 결승 홈런을 때린 선수는 4년 전만 해도 상대 선수 반값에 트레이드 된 선수였습니다. 1차전에서 역전 3점 홈런을 때린 대타 역시 올 시즌을 앞두고 이 팀 유니폼을 입기 전까지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주장은 팀에 돈이 없어 부잣집에 팔려 갔다 겨우 돌아왔고, 외국인 타자 역시 말이 좋아 '멀티노'지 사실 팀에 별 필요가 없는 자원 취급을 받았습니다. 포스트시즌 주전 지명타자는 '이 번트 타구를 파울로 처리하면 당연히 삼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선수였습니다. 주전 포수 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든 케이스에 가깝습니다.

이제 메이저리그를 노리는 유격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정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2006년 개막전 주전으로 나선 신인 선수가 바로 그 유격수였습니다. 팀이 제대로 굴러갔다면 절대 그 자리에 나올 일이 없던 선수였죠. 원래 박진만(38·현 SK)이 지키던 자리였으니 말입니다.

아니, 감독부터 그렇습니다. 그는 50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 중에서 통산 타율(0.195)이 가장 나쁜 선수고, 잘 쳐줘야 전문 대자주 요원이었지만 이제는 '염갈량'이 됐습니다. 그를 믿고 과감하게 사령탑에 앉힌 구단 대표 역시 처음 팀을 인수할 때는 사기꾼 소리를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이 팀은 묘하게 (이제는 공식적으로 인연이 끊긴) 태평양을 닮았습니다. '홈런 슈퍼집 아들' 최창호가 인천 토박이고(실제로는 대구 출신),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인터뷰를 하는 정명원 역시 당연히 인천 사람이던 그 도깨비 구단 태평양 말입니다.

선수들만 그런 게 아닙니다. 넥센에서 보내는 보도자료 등장하는 홍보팀 직원은 4명. 그런데 이 중 한 명은 전화번호나 e메일 주소 같은 연락처가 없습니다. 홍보팀에서 일하던 이화수 대리는 2010년 시즌 중반 암 투병 끝에 향년 32세로 숨졌지만 여전히 보도자료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동료애가 무엇인지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사례를 저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사실 몇 년 전에 드렸어야 할 말씀이지만 이제라도 뒤늦게 고백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다시 나의 야구를 살려주셔서. 다시 목청 놓아 응원할 수 있는 팀을 갖게 해주셔서. 겸손한 체 하거나 내숭 떨지 않겠습니다. 우승을 원합니다. 그대들을 믿습니다. 2014년 한국시리즈 챔피언이 되어주세요.

그리하여 간절하다고 다 이뤄진다는 건 거짓말이지만 그렇다고 지레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것. 묵묵히 실력을 키워가면 언젠가 기회는 찾아오게 마련이라는 것. 그 기회를 잡는 게 진짜 실력이라는 것. 그렇게 믿고 말하는 대로 언젠가 이뤄지게 돼 있다는 것. 그 사실을 온 세상에 다시 한번 증명해 주세요.

네, 최근 12년 동안 정규 시즌 1위 팀이 모두 우승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결단코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미 희망의 이유 그 차제고, 기적의 살아 있는 증거니까요. 그대들이 영웅이니까요. 부탁드립니다. 꼭 2014년 챔피언이 되어주세요. 나의 사랑, 넥센 히어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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