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 팀 응원해?"
야구팬으로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한때는 꼴찌를 밥 먹듯이 했고, 한때는 돈으로 시장 질서를 어지럽힌 주범이었으며, 제 멋대로 연고지를 옮기려다 결국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었고, 또 이렇게 마지막 모양새까지 좋지 못한 팀. 그래서 당연히 팬 수도 가장 적은 팀.
하지만 나는 이 팀과 함께 자랐다. 임호균으로 시작한 이 팀 에이스가 장원삼이 되고, 양승관이 버티던 중심 타선에 브룸바가 괴력을 선보이는 동안, 코흘리개 꼬마는 어느새 187cm짜리 청년이 돼 있었다.
이 팀은 처음부터 어딘지 모르게 늘 외인구단 냄새를 풍겼다. 다른 팀에서 쫓겨오거나 다른 팀에서 뛰었더라면 진작에 쫓겨났을 선수들이 뛰는 구단. 열심히 뛰는 것 말고는 남보다 더 잘하는 게 아무 것도 없는 선수들이 모인 구단.
양승관이 감사용을 무시하는 게 너무도 당연했던 이상한 팀. 그래서 사람들은 이 애송이 집단을 '도깨비 팀'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나는 그 이상한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자금 사정이 좋아진 뒤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태평양 선수들 사이에 피닉스 코칭 스탭이 뒤섞였고 또 트레이드를 통해 전준호가 건너와 1번 타자 자리를 꿰차기도 했다. 선수의 질적 수준은 우수해졌지만 여전히 인천 토박이보단 외지 사람이 더 많았다.
그렇지만 이 팀 팬들에게 '홈런 슈퍼집 아들' 최창호는 인천 토박이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인터뷰를 하는 정명원 역시 당연히 인천 사람이다. 그렇게 우리는 뭉쳤다. 그리고 그렇게 선수들 역시 뭉쳤다.
이 팀은 항상 그렇게 '외인들이 똘똘 뭉치는 팀'으로 자랐다. 열혈 OB 베어스 어린이 회원으로 자란 이숭용이 인정했듯 "선수단 분위기는 두산에도 안 지는" 팀이 돌핀스였고, 유니콘스였다.
그리고 기어이 이 팀은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선수들이 알아서 대는 번트로. 문자 그대로의 적시타로. 그리고 '짠물 야구' 특유의 굳건한 마운드로.
팀이 하나가 된다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은가? 유니콘스 선수들의 눈동자에 그 정답이 있었다.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첫 몇 년을 제외하고는 경기조차 제대로 열리지 않은 연고지 강원도. 하지만 단지 그 동네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사직구장 3루에서 늘 숨죽여 권준헌을 응원하던 팬.
인천에 살면서도 일부러 수원 야구장 근처에 직장을 잡은 아가씨.
매일 야구장에서 사는 아내와 처형을 두면 어떤 기분이 들까 궁금해지게 만드는 열혈 자매.
많은 사람들이 각자 다른 이유로 응원팀을 옮기기도 하고, 야구를 끊기도 했지만 남은 현대 팬들은 굳건히 버텼다. 팬심을 측정하는 체에 거르고 또 거르면 이만큼 충성심에 가득찬 팬들을 걸러낼 수 있을까.
서럽고, 아쉽고, 분하고, 억울하고, 짜증이 나도 이 사람들은 오직 한 팀만을 보고 살았다. 이들이야 말로 민들레보다 더 일편단심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준 사람들이다.
못난이 애인을 사랑하는 더 못난 순둥이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너희 팀은 없어졌단다. 이제 그 팀은 사라지고 없으니 다른 곳에 가보란다. 뛰쳐 가 확인했다. 정말 우리 팀은 죽고 없었다. 이미 난도질 된 시신이 맥없이 철제 침대 위에 누워 있을 뿐이었다.
왜 살리지 못했냐고 물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기 피를 뽑아 바쳤는데도 왜 살리지 못했느냐고 울먹이며 물었다. 피가 모자라면 더 많은 피를 바치겠다고 빌었다.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부검용 시신으로 쓰이는 게 오히려 더 숭고한 죽음이라고. 그렇게 그들은 여전히 뛰고 있던 너의 심장을 칼로 도려내 버렸다.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너의 심장을 도려낸 그들을. 우리의 추억을 갈기갈기 찢어 씹으며 비웃음을 날리는 그들의 면전을. 우리의 영혼을 두고 저울질하던 그들을. 이제 나는 희망과 열정이 아닌 분노와 복수로서 목 놓아 그들을 응원할 것이다.
나의 야구는 이렇게 죽었다.
야구팬으로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한때는 꼴찌를 밥 먹듯이 했고, 한때는 돈으로 시장 질서를 어지럽힌 주범이었으며, 제 멋대로 연고지를 옮기려다 결국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었고, 또 이렇게 마지막 모양새까지 좋지 못한 팀. 그래서 당연히 팬 수도 가장 적은 팀.
하지만 나는 이 팀과 함께 자랐다. 임호균으로 시작한 이 팀 에이스가 장원삼이 되고, 양승관이 버티던 중심 타선에 브룸바가 괴력을 선보이는 동안, 코흘리개 꼬마는 어느새 187cm짜리 청년이 돼 있었다.
이 팀은 처음부터 어딘지 모르게 늘 외인구단 냄새를 풍겼다. 다른 팀에서 쫓겨오거나 다른 팀에서 뛰었더라면 진작에 쫓겨났을 선수들이 뛰는 구단. 열심히 뛰는 것 말고는 남보다 더 잘하는 게 아무 것도 없는 선수들이 모인 구단.
양승관이 감사용을 무시하는 게 너무도 당연했던 이상한 팀. 그래서 사람들은 이 애송이 집단을 '도깨비 팀'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나는 그 이상한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자금 사정이 좋아진 뒤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태평양 선수들 사이에 피닉스 코칭 스탭이 뒤섞였고 또 트레이드를 통해 전준호가 건너와 1번 타자 자리를 꿰차기도 했다. 선수의 질적 수준은 우수해졌지만 여전히 인천 토박이보단 외지 사람이 더 많았다.
그렇지만 이 팀 팬들에게 '홈런 슈퍼집 아들' 최창호는 인천 토박이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인터뷰를 하는 정명원 역시 당연히 인천 사람이다. 그렇게 우리는 뭉쳤다. 그리고 그렇게 선수들 역시 뭉쳤다.
이 팀은 항상 그렇게 '외인들이 똘똘 뭉치는 팀'으로 자랐다. 열혈 OB 베어스 어린이 회원으로 자란 이숭용이 인정했듯 "선수단 분위기는 두산에도 안 지는" 팀이 돌핀스였고, 유니콘스였다.
그리고 기어이 이 팀은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선수들이 알아서 대는 번트로. 문자 그대로의 적시타로. 그리고 '짠물 야구' 특유의 굳건한 마운드로.
팀이 하나가 된다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은가? 유니콘스 선수들의 눈동자에 그 정답이 있었다.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첫 몇 년을 제외하고는 경기조차 제대로 열리지 않은 연고지 강원도. 하지만 단지 그 동네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사직구장 3루에서 늘 숨죽여 권준헌을 응원하던 팬.
인천에 살면서도 일부러 수원 야구장 근처에 직장을 잡은 아가씨.
매일 야구장에서 사는 아내와 처형을 두면 어떤 기분이 들까 궁금해지게 만드는 열혈 자매.
많은 사람들이 각자 다른 이유로 응원팀을 옮기기도 하고, 야구를 끊기도 했지만 남은 현대 팬들은 굳건히 버텼다. 팬심을 측정하는 체에 거르고 또 거르면 이만큼 충성심에 가득찬 팬들을 걸러낼 수 있을까.
서럽고, 아쉽고, 분하고, 억울하고, 짜증이 나도 이 사람들은 오직 한 팀만을 보고 살았다. 이들이야 말로 민들레보다 더 일편단심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준 사람들이다.
못난이 애인을 사랑하는 더 못난 순둥이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너희 팀은 없어졌단다. 이제 그 팀은 사라지고 없으니 다른 곳에 가보란다. 뛰쳐 가 확인했다. 정말 우리 팀은 죽고 없었다. 이미 난도질 된 시신이 맥없이 철제 침대 위에 누워 있을 뿐이었다.
왜 살리지 못했냐고 물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기 피를 뽑아 바쳤는데도 왜 살리지 못했느냐고 울먹이며 물었다. 피가 모자라면 더 많은 피를 바치겠다고 빌었다.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부검용 시신으로 쓰이는 게 오히려 더 숭고한 죽음이라고. 그렇게 그들은 여전히 뛰고 있던 너의 심장을 칼로 도려내 버렸다.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너의 심장을 도려낸 그들을. 우리의 추억을 갈기갈기 찢어 씹으며 비웃음을 날리는 그들의 면전을. 우리의 영혼을 두고 저울질하던 그들을. 이제 나는 희망과 열정이 아닌 분노와 복수로서 목 놓아 그들을 응원할 것이다.
나의 야구는 이렇게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