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코리안 몬스터' LA 다저스 류현진(26)은 한국 프로야구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다른 공을 던집니다. 몇 달 새 갑자기 새 구종을 익힌 건 물론 아닙니다. (슬라이더는 한국에서도 던졌죠.) 공인구 자체가 다릅니다. 게다가 경기 전 공을 처리하는 방식도 차이가 납니다.


메이저리그는 경기 때 쓰는 모든 공에 진흙을 바릅니다. 이른바 '머드(mud) 베이스볼'이죠. 그것도 아무 흙이나 바르는 게 아닙니다. '레나 블랙번 베이스볼 러빙 머드'라는 회사에서 만든 전용 진흙을 씁니다. 이 회사는 뉴저지 남부 댈라웨어 강 인근에서 채취한 진흙을 숙성시켜 제품을 만듭니다.

진흙 채취 장소는 비밀. 이 회사를 3대째 운영하고 있는 빈틀리프 집안만 위치를 알고 있습니다. 짐 빈플리프 씨는 "가끔 내가 진흙을 캐내는 걸 사람들이 목격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정원에 쓰려고 한다거나 벌에 물린 걸 치료하려 가져가는 거라고 둘런댄다"며 "원래 이 곳은 할아버지 친구였던 레나 블랙번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 감독이 낚시터로 쓰던 곳"이라고 설명합니다.

야구공에 진흙을 바르기 시작한 건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20년 클리블랜드 유격수 레이 챔프먼이 뉴욕 양키스 투수 갈 메이스의 손에서 빠진 야구공에 머리를 맞아 숨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헬맷은 겁장이나 쓰는 것'이라며 타격 때 헬멧을 쓰지 않았습니다.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은 똑같은 사고를 방지하려고 공이 투수 손에서 빠지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아 나섰습니다.

처음에는 담배 진액, 구두 약 같은 걸 썼습니다. 내야에 깔린 흙도 당연히 실험 대상. 그런데 이런 걸 쓰면 공이 너무 끈적해지거나, 표면에 흠집이 생겨 변칙 투구가 나왔습니다. (이해가 안 가신다면 지난해 롯데 이용훈 선수가 공을 깨물었다는 의혹을 받았던 걸 떠올려 보세요!)

그러다 블랙던 감독이 낚시터에서 발견한 진흙을 실험하면서 해법을 찾아낸 겁니다. 댈라웨어 강에는 나무가 많아 물이 천천히 흐릅니다. 그 덕에 아주 부드러운 진흙을 얻을 수 있었던 거죠. 빈플리프 씨는 "우리가 캐내는 진흙도 밑으로 내려갈수록 모래가 많다. 그 흙을 쓰면 공 표면에 흠집이 생긴다. 그래서 제일 윗부분만 걷어낸다"며 "이렇게 가져온 흙을 와인 숙성시키듯 숙성시킨 다음 각 팀에 공급한다"고 말했습니다. 1938년 모든 메이저리그 팀은 이 진흙을 공식 채용했습니다.

공인구 표면을 진흙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은 메이저리그 공식 규칙 3.01(c)에도 나와 있습니다.

The umpire shall inspect the baseballs and ensure they are regulation baseballs and that they are properly rubbed so that the gloss is removed.

이 부분이 우리 프로야구 규칙에는 이렇게 돼 있습니다.

공인구는 리그 회장의 서명이 담긴 포장지로 싸여 있어야 하며, 그 포장지는 게임 직전에 심판원이 공을 점검하고 광택을 제거하기 위해 뜯기 전까지 훼손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야구 규칙에는 'properly rubbed'에 해당하는 표현이 빠져 있습니다. 파울볼이나 홈런볼을 잡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우리 리그에서 쓰는 공은 그저 매끈합니다.

공에 진흙을 바른다는 건 누군가 그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뜻. 메이저리그에서는 보통 장비 담당자가 이 일을 맡습니다. 애틀랜타의 장부 부(副) 담당자 크리스 반 잔트 씨는 10년 동안 4만 개가 넘는 공에 진흙을 발랐습니다. 한 경기에 보통 11타스 정도 꼴.그냥 진흙만 바르는 게 아닙니다. 침을 섞습니다. 반 잔트 씨는 "파울볼을 두고 다투는 팬들을 보면 ‘이봐, 거기 내가 침을 뱉었다고!'하면서 혼자 웃을 때가 많다"며 "진흙 작업을 할 때는 침이 잘 나오게 하려고 늘 껌과 탄산음료를 곁에 둔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야구에서 보듯 사실 요즘에 나오는 공에는 굳이 진흙을 바르지 않아도 됩니다. 투수들이 송진 가루를 써도 미끄러움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사실 빈틀리프 가문이 이 진흙으로 벌어들이는 수입도 1년에 2만 달러(2229만 원)밖에 안 됩니다. 빈틀리프 씨는 "1938년부터 모든 홈런과 삼진의 순간을 이 진흙이 함께 했다. 이 진흙은 메이저리그의 역사와 전통의 상징"이라고 말했습니다. 네, 모든 홈런과 삼진에는 장비 관리자의 침도 묻어 있는 겁니다.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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