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시몬(30·쿠바·사진 왼쪽) 하나 빠졌다고 팀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요? OK저축은행은 5라운드 마지막(지난달 15일) 경기에서 패하면서 프로배구 2016~2017 NH농협 V리그 남자부 최하위를 확정했습니다. 프로배구 13년 역사상 전 시즌 챔피언이 최하위로 떨어진 건 올 시즌 OK저축은행이 처음입니다.


1일 경기에서도 이변은 없었습니다. 지난 시즌 챔피언 결정전 파트너끼리 맞붙는 경기였지만 OK저축은행은 현대캐피탈에 0-3(21-25, 30-32, 23-25)으로 완패했습니다. 특히 2세트 때는 중반까지 14-7로 앞서고도 듀스 끝에 결국 세트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OK저축은행은 올 시즌 현대캐피탈에 6전 전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시몬만 없던 건 아닙니다. '주포' 송명근(24·레프트)도 부상 후유증으로 전체 128세트 중 49세트(38.3%)를 뛰는 데 그쳤습니다. 그래도 역시 시몬 자리가 더 아쉬웠습니다. 트라이아웃(공개 선수 평가)를 통해 뽑은 세페다(28·쿠바)는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르면서 팀에 합류하지도 못했고, 대신 팀에 합류한 마르코(29·몬테네그로)도 영 좋지 못한 소문만 남긴 채 짐을 쌌습니다. 현재 뛰는 모하메드(27·모로코)는 보시는 대로입니다.


사실 시몬은 다른 외국인 선수로는 채우기 힘든 롤(role)을 맡고 있었습니다. 파격이라면 파격이었죠. 창단 첫 시즌(2013~2014) 바로티(26·헝가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던 김세진 감독은 세계 양대 센터로 손꼽히던 시몬을 데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전위에 있을 때는 계속 센터로 쓰고, 후위로 빠지면 오른쪽 날개 공격수로 활용하는 창의적인(?) 전술을 선보였습니다.


결과도 성공이었습니다. 시몬을 앞세운 OK저축은행은 삼성화재 스타일 몰방(沒放) 배구를 무너뜨리면서 창단 두 시즌 만에 챔피언 자리에 올랐고, 지난 시즌에는 '스피드 배구'를 앞세운 현대캐피탈마저 무릎 꿇게 만들었습니다. 시몬은 지난 시즌 전위에서 속공 성공률 67.9%(1위), 퀵오픈 성공률 68.3%(1위)를 기록했고 전공이 아닌 후위에서도 공격 성공률 54.5%(7위)로 밥값은 했습니다. 서브 득점(세트당 0.64개)도 삼성화재에 그로저(33·독일)라는 괴물(세트당 0.83개)가 없었다면 1위를 하는 게 이상한 기록이 아니었습니다.


   ▌OK저축은행 공격 유형별 비중 비교

특히 속공은 지난 시즌 OK저축은행을 상징하는 공격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지난 시즌 OK저축은행 전체 공격 시도 중 21.3%가 속공이었습니다. 지난 시즌 속공 비중이 20%를 넘는 팀은 OK저축은행이 유일했습니다. 올 시즌 현재 이 비율은 15.2%로 내려갔습니다. 비율로 따지면 28.8%가 줄어든 겁니다. 속공만 줄지 않았습니다. 시간차 비중도 5.8%에서 4.0%로 30.6% 줄었습니다(오른쪽 그래프 참조). 


배구에서는 보통 양 날개에서 공격을 하는 일이 더 많습니다. 속공과 시간차는 가운데를 '파는' 공격 스타일입니다. 양 날개에서 큰 공격을 하려면 가운데에서 '미끼'를 계속 던져줘야 하는 거죠. 그래서 가운데 공격 비중이 의미가 있습니다.


이건 흔히 '파이프 공격'이라고 부르는 중앙 후위 공격도 마찬가지입니다. 파이프 공격은 따로 집계하지 않으니 추론해 보면 지난 시즌 OK저축은행 레프트 선수들 후위 공격 비중은 9.5%였는데 올 시즌에는 6.0%로 줄었습니다. 비율로 따지면 37.2%가 빠졌습니다. 마르코(44번) 기록을 포함해도 그렇습니다. 이들이 후위에서 기록한 공격 성공률도 55.9%에서 51.3%로 내려왔습니다. 후위로 빠진 선수들이 지난해보다 가운데서 별 재미를 보지 못한 겁니다.


종합해 보면 지난 시즌에는 전체 공격 중 36.6%가 중앙에서 나왔습니다. 올 시즌에는 25.2%로 줄었습니다. 이게 뭘 나타낼까요? 시몬이 문자 그대로 팀 '기둥'이었던 겁니다. 시몬이 전위에 서 있으면 상대 팀에서는 블로커 한 명에게 시몬을 전담 마크 시키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이 블로커는 시몬이 뜨면 따라 뛰는 수밖에 없었죠. 그럼 그 빈 틈을 토종 선수가 뚫고 들어갈 수 있던 겁니다.


뿐만 아닙니다. 시몬이 빠졌으니 당연히 블로킹도 줄었습니다. OK저축은행은 지난 시즌 한 세트에 블로킹을 평균 2.4개 잡았는데 올 시즌에는 1.7개로 줄었습니다. 블로킹 벽이 높으면 디그(상대 득점을 막아 내는 수비)도 좋아집니다. 블로커가 한 쪽 사이드는 확실히 잡아주기 때문이죠. OK저축은행은 지난 시즌 디그 성공률 56.2%로 리그 최고 팀이었습니다. 올 시즌에는 44.2%로 리그 최하위입니다.


요컨대 시몬이 있었기에 OK저축은행은 공격뿐만 아니라 수비에서도 확실히 상대 팀에 우위를 점할 수 있던 겁니다. 시몬과 함께 하는 두 시즌 동안 OK저축은행은 시몬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 시스템에 완전히 젖은 상태였고 말입니다. 그러니 예정대로 세페다가 왔다고 해도 모하메드가 지금하는 것하고 크게 달랐을지 의문입니다.


김 감독은 시즌 중후반부터 "감독 노릇 하기 너무 힘들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성적도 안 나오는 데다 사내에 '사공'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다음 시즌에는 달라질까요? 한 시즌만 더 뛰면 '경기대 삼총사' 송명근 이민규(25) 송희채(25) 모두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습니다. 과연 김 감독, 아니 어쩌면 석진욱 코치가 어떤 해법을 찾아낼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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