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프로배구 2016~2017 남자부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를 통해 한국 무대를 밟게 된 선수들. 왼쪽부터 대한항공 가스파리니(32·슬로베니아), 한국전력 바로티(25·헝가리), 우리카드 파다르(20·헝가리), 삼성화재 타이스(25·네덜란드), 현대캐피탈 툰(32·캐나다), KB손해보험 우드리스(26·벨라루스), OK저축은행 세페다(27·쿠바). 이 중 세페다는 국가대표 일정을 소화하던 중 성폭행 사건에 연루돼 마르코(28·몬테네그로)로 교체. 


트라이아웃. 프로배구 2016~2017 NH농협 V리그 개막과 함께 가장 자주 듣게 되는 말입니다. 올 시즌부터는 남자부도 트라이아웃으로 외국인 선수를 뽑았기 때문이죠. 여자부는 이미 지난 시즌부터 트라이아웃으로 외국인 선수를 뽑았습니다. 도대체 이 트라이아웃이라는 게 뭘까요?


언론에서는 이 'try out'을 흔히 '공개 선수 평가'라는 말로 번역합니다. 문자 그대로 이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선수들이 공개적으로 평가를 받기 때문입니다. 이는 모든 구단 관계자가 참가한 가운데 기량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테스트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기업체 입사 시험을 기준으로 하면 공개 채용(공채)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반대로 비공개 선수 평가도 있을까요? 정확하게 의미가 똑같지는 않지만 자유계약 제도가 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정 구단에서 어떤 선수를 선발하려고 하는지 다른 구단에 알릴 필요 없이 마음대로 선수를 뽑으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즌까지 프로배구 남자부 7개 팀은 이런 식으로 외국인 선수를 뽑았습니다. 여자부 6개 팀은 2014~2015 시즌까지 그렇게 했고 말입니다.


한국배구연맹(KOVO)에서는 이렇게 외국인 선수 선발 제도를 바꾼 제일 큰 이유로 '몸값 거품'을 꼽습니다. 선수를 자유롭게 선발할 수 있다 보니 괜찮은 선수가 나타나면 영입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 때문에 선수들 몸값이 정상가보다 지나치게 올라갔다는 겁니다. KOVO 관계자는"“한국 구단이 연봉을 후하게 쳐준다는 소문이 퍼져 급(級)이 떨어지는 선수들도 높은 연봉을 요구하는 게 당연한 일처럼 돼 버렸다. 남미 리그에서 5만 달러(약 5700만 원) 정도에 뛸 (여자) 선수들도 한국 팀에는 수십만 달러의 몸값을 요구한다"고 말했습니다.


한 마디로 외국인 선수 연봉 상한선(남자부 28만 달러)이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몇몇 선수는 100만 달러 이상을 받았다는 게 배구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 돈 우리가 쓰겠다는데 왜 난리냐'는 구단이 없던 건 아니지만 트라이아웃으로 선수를 뽑게 된 건 이미 기정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트라이아웃에 참가할 선수는 어떻게 고르는 걸까요? 공개 선수 평가니까 아무나 다 와서 기량을 점검 받으면 되는 걸까요?


그렇게 하기에는 물리적 제약이 뒤따르는 게 사실. 그래서 KOVO에서 먼저 트라이아웃 참가 신청서를 받습니다. 다시 입사 시험에 비유하면 모집 공고를 내는 겁니다. 그러면 서류 심사를 해야겠죠? 원서를 낸 선수를 각 구단에 보내 선호도를 매기도록 합니다. 예를 들어 올해 남자부 트라이아웃에 지원한 선수는 모두 162명. 각 구단에서는 이들을 대상으로 트라이아웃 참가 인원(24명) 숫자만큼 점수를 매깁니다. 1등한테는 1점을 주고 2등한테는 23점, 3등한테는 22점 … 24등에게는 1점을 주는 방식입니다.


보통 입사 시험이라면 이렇게 점수를 주는 게 맞겠지만 서로 서로 경쟁해야 하는 프로 리그는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우리 팀에는 별로 필요 없지만 다른 팀에 꼭 필요한 선수 같으면 일부러 점수를 낮게 주는 전략도 필요합니다. 그래야 그 선수가 아예 트라이아웃 현장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실제로 올해 남자부 트라이아웃을 앞두고 이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구단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24명을 추리면 선수를 불러 직접 기량을 점검합니다. 올 시즌 남자부는 5월 11~13일 인천 송림체육관에서 트라이아웃을 진행했습니다. 가장 기본은 역시 직접 연습 경기를 뛰는 것. 입사 시험으로 말하자면 '실무 평가'를 진행하는 겁니다. 이와 함께 신체 검사도 진행합니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지만 스포츠 팀에서 선수를 뽑을 때는 이 작업이 더욱 중요한 게 당연한 일입니다.


트라이아웃을 마치고 나면 이제 진짜 선수를 뽑을 차례입니다. 이때는 신인 선수를 뽑을 때와 마찬가지로 드래프트를 거칩니다. 프로 리그가 팔아야 하는 핵심 상품 중 하나는 전력 평준화. 그러려면 이전 시즌 하위권 팀에서 좋은 선수를 뽑을 수 있도록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KOVO는 지명 순번을 정할 때 추첨 기구 안에 구슬을 넣어 뽑는데요, 올 시즌에는 전체 구슬 140개 중 35개를 지난해 최하위 우리카드 몫으로 넣었습니다. 그 다음 순위에 따라 30개, 25개, 20개 하는 식으로 5개씩 줄어드는 방식입니다.

 

물론 이렇게 넣는다고 구슬이 많은 팀이 먼저 뽑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카드는 구슬은 제일 많았지만 다섯 번째가 되어서야 겨우 지명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카드는 나중에 열린 신인선수 드래프트 때도 구슬이 제일 많았지만 두 번째 지명권을 받으면서 '구슬의 저주'에 시달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뽑힌 선수는 미리 정한 연봉을 받게 됩니다. 올 시즌 뽑힌 남자부 선수 연봉은 일괄적으로 30만 달러(약 3억4365만 원)입니다. 한국 구단에서는 임금 체불이 없는 데다 숙소를 제공하는 것도 일반적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이보다 더 많이 받는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도 예전 같은 몸값 폭등은 줄어들 게 자명한 일. 이는 거꾸로 예전 외국인 선수들보다 기량이 떨어지는 이들이 한국 무대를 찾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 해 먼저 트라이아웃을 실시한 여자부에서는 이미 경기 양상이 조금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세계 최고 수준 선수가 뛰는 무대라는 게 한국 프로배구가 프로농구를 따라잡은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트라이아웃 제도 도입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은 오레올(30·쿠바)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바꿀 수 없는 건 바꿀 수 없는 법. 과연 올 시즌 프로배구 남자부 경기는 어떻게 변할까요?




댓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