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애너하임에서 열린 프로배구 여자부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서 1순위로 인삼공사 지명을 받은 헤일리(25·왼쪽 세 번째). 왼쪽부터 같은 팀 세터 한수지(27), 조성인 단장, 이성희 감독. 


한국배구연맹(KOVO)은 지난해 여자부 외국인 선수 선발 제도를 트라이아웃(공개 선수 평가)으로 바꾸면서 보도자료에 이렇게 썼습니다. 


외국인 선수에게 편중된 경기를 개선하고, 구단의 과도한 부담도 경감하여 국내 유소년 배구 발전 및 국내 선수 경쟁력 향상 위해 투자될 수 있도록 최선을 노력을 다할 예정이다.


프로배구 2014~2015 V리그 여자부 정규리그 기록을 보면 외국인 선수가 전체 공격 중 47.5%를 책임졌습니다. 문자 그대로 세터가 거의 두 번 중 한 번은 외국인 선수에게 공을 띄운 겁니다. 남자부에서도 이렇게 외국인 선수 공격 점유율이 높게 나온 적은 없었습니다. 남자부도 지난 시즌이 최고였는데 기록은 44.1%였습니다. 확실히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기는 했습니다.


그러면 제도를 바꾼 올 시즌은 어떻게 됐을까요? 여자부 외국인 선수 공격 점유율은 35.5%로 12%포인트 내려갔습니다. 2012~2013 시즌(36.9%) 이후 가장 낮은 기록입니다. 지난해에는 여자부 6개 팀 모두 이 기록이 40%를 넘어갔지만 올해는 인삼공사 헤일리만 44.7%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시즌 인삼공사에서 뛰었던 조이스(32·브라질)는 53.6%였으니 이 팀도 외국인 선수 비중이 줄어들기는 했습니다. 헤일리가 시즌 내내 건강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확률이 크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남자부도 외국인 선수 공격 점유율이 37.6%로 내려왔습니다. 여자부하고 마찬가지로 2012~2013 시즌(38.7%) 이후 가장 낮은 기록입니다. 남자부도 인삼공사하고 대전 충무체육관을 나눠 쓰는 삼성화재가 그로저(32·독일)에게 47.1%를 띄웠지만 지난해 공격 56.7%를 책임진 레오(26·쿠바)하고 비교할 바는 아닙니다. 삼성화재 외국인 공격수가 공격 점유율 50% 미만을 기록한 건 레오가 처음 합류했던 2012~2013 시즌(45.7%) 이후 올해가 처음입니다.


▌역대 프로배구 외국인 선수 (실질) 공격 점유율 추이

※남자부 계산 때 외국인 선수가 없던 시절 한국전력과 상무 기록은 제외


그러면 이렇게 외국인 선수 점유율이 내려간 건 국내(토종) 선수들 경쟁력 향상에 도움을 줬을까요? 아직까지는 일단 회의적입니다. 올 시즌 여자부 전체 평균 공격 성공률은 35.8%에 그쳤습니다. 2010~2011 시즌 공인구를 현재 쓰는 스타 '그랜드챔피언'으로 바꾼 이래 가장 나쁜 기록입니다. 원래 여자부 공격 성공률은 해마다 떨어지는 추세였는데 트라이아웃으로 이전보다 기량이 떨어지는 선수들이 들어오면서 지난 시즌(38.5%)보다 2.7%포인트 떨어졌습니다.


▌외국인 선수 도입 이후 프로배구 여자부 공격 성공률 추이


공격 성공률이 내려간 제일 큰 이유는 역시 외국인 선수들 파괴력이 내려갔다는 것. 지난 시즌까지 직전 세 시즌 동안 외국인 선수들 공격 성공률은 평균 43.4%였습니다. 올 시즌에는 38.0%로 내려왔습니다. 토종 선수들 기록도 이전 세 시즌 36.7%에서 34.6%로 줄었습니다. 공격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걸 오히려 토종 선수들이 부담스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로배구 여자부 유형별 공격 비중

 시즌  오픈  후위  퀵오픈  시간차  속공  이동
 2013~2015  48.3%  17.7%  14.6%  8.8%  7.2%  3.4%
 2015~2016  47.2%  13.0%  19.2%  10.5%  6.9%  3.2%
 차이  -1.2%p  -4.7%p  +4.6%p  +1.8%p  -0.3%p  -0.2%p


상대 공격이 약하면 우리 팀 수비는 좋아지는 게 당연한 일. 역시 직전 세 시즌 동안 평균을 내보면 여자부 경기에서는 한 세트에 디그(상대 득점을 막아내는 수비)가 18.0개 나왔습니다. 이번 시즌에는 21.9개입니니다. 예전 같으면 점수가 났을 상대 스파이크를 한 세트에 4개 정도 막아내는 셈이죠. KOVO에서 공식 집계하지 않아 정확한 숫자는 확인할 수 없지만 랠리가 길어졌을 게 당연한 일입니다. 


관점에 따라서 이런 스타일이 좋을지 모르겠지만 보통은 지루하게 느끼기 쉽습니다. 그저 외국인 선수 점유율을 끌어내린다고 해서 한국 배구가 안고 있던 문제가 단번에 풀리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체질 개선에는 원래 충분히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법. KOVO가 보도자료에 쓴 것처럼 국내 유소년 배구 발전에 투자해야 '몰방(沒放) 배구'에서 진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좋은 선수가 많이 나와야 공격 기회가 고루 돌아갈 게 당연한 일이니까요.


이 문제에 힌트를 줄 수 있는 팀은 역시 남자부 현대캐피탈입니다. 그저 현대캐피탈 외국인 선수 올레올(30·쿠바)이 리그 평균보다 적게 공을 때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세터 노재욱(24)이 완전 다른 선수가 됐다고 해도 좋을 만큼 성장했기 때문이죠. 문성민(30)은 올 시즌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공격 성공률(48.9%)이 50% 밑으로 내려갔지만 기량 하락을 염려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세터가 활용할 수 있는 공격 루트가 다양해진 덕이죠.


▌2015~2016 V리그 정규리그 구단별 외국인 선수 공격 점유율

 순위  남자부  여자부
 구단  선수  점유율  구단  선수  점유율
 1  삼성화재  그로저  47.1%  인삼공사  헤일리  44.7%
 2  한국전력  얀 스토크  43.9%  IBK기업은행  맥마혼  40.6%
 3  OK저축은행  시몬  39.0%  도로공사  시크라  37.4%
 4  우리카드  군다스, 알렉산더  35.7%  현대건설  에밀리  33.2%
 5  현대캐피탈  오레올  34.6%  흥국생명  테일러, 알렉시스  29.4%
 6  KB손해보험  마틴  31.9%  GS칼텍스  캣벨  28.5%
 7  대한항공  산체스, 모로즈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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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인적으로 몰방 배구가 아주 틀린 전법이 아닌 것처럼 소위 '스피드 배구'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가 대항전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흥행 중인 프로 리그가 제도를 바꿔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많습니다. 다만 서로 다른 팀이 다양한 배구로 경쟁하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입니다. 문제는 몰방 배구에 몰방하는 데서 시작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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