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업템포 1.0'은 확실히 성공적이었습니다. 프로배구 남자부 현대캐피탈은 올 시즌을 앞두고 스피드 배구를 표방하면서 이런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습니다. 정규리그 우승 뒤 축승회 자리에서 신현석 현대캐피탈 단장은 "앞으로 현재 스타일을 버전업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요컨대 올해 우승을 발판삼아 다음 시즌에는 '업템포 2.0'을 표방하겠다는 뜻입니다. (원래는 업템포 1.5 정도로 하려고 했는데 우승해서 한번에 2.0으로 가시겠다고…)


기록을 훑어 보면 업텝포 1.0 완성에 가장 지대한 공을 세운 건 단연 외국인 선수 오레올(30·쿠바·사진)입니다. 저는 전반기가 끝났을 때 공격 효율을 근거로 "현대캐피탈이 이기고 싶다면 오레올 머리 위로 공을 좀더 많이 띄워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대신 문성민(30)의 공격 시도를 줄여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기사로도 그렇게 썼습니다. (참고로 기사 제목은 기사를 쓴 기자가 정하는 게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습니다. 전반기에는 올레올에게 팀 전체 세트 33.9%가 올라갔는데 후반기에는 36.0%로 2.1%포인트 올라갔습니다. 문성민은 30.9%에서 25.4%로 5.5%포인트 줄었습니다. 더 드라마틱한 변화는 '오픈 공격 점유율'입니다. 전반기(34.5%)하고 비교하면 후반기에(42.6%)에 현대캐피탈 선수들은 제대로 세트(토스)하기 어려울 때 오레올을 더 많이 찾았습니다. 같은 기록에서 문성민은 29.0%에서 22.0%로 7%포인트가 줄었습니다.


야구에 비유하자면 전반기에 오레올과 문성민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선발 원투펀치로 코트에 나섰지만 후반기에는 오레올이 확실한 에이스, 문성민은 그 뒤를 받치는 2선발로 안착한 겁니다. 이게 통했습니다. 올레올은 여전히 리그에서 공격 효율이 가장 좋은 선수고, 문성민도 10위에서 7위로 올랐습니다.


▌2015~2016 V리그 후반기 남자부 공격 효율 순위

 순위  선수  구단  시도  공격 효율
 1  오레올  현대캐피탈  513  .476
 2  송명근  OK저축은행  409  .403
 3  모로즈  대한항공  597  .395
 4  정지석  277  .375
 5  김학민  325  .372
 6  시몬  OK저축은행  628  .371
 7  문성민  현대캐피탈  362  .351
 8  김요한  KB손해보험  483  .350
 9  얀스토크  한국전력  749  .348
 10  그로저  삼성화재  698  .337

※27일 현재


레올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오레올은 상대 서브 중 22.2%를 받았다. 대한항공 리베로 최부식(38·리시브 점유율 19.8%)보다 오레올이 서브를 더 많이 받은 겁니다. 오레올이 공을 받지 않았다면 현대캐피탈은 3인 리시브-4인 공격으로 이어지는 업템포 1.0을 구사할 수 없었을 것이고, 또 이렇게 높은 효율로 상대 코트에 공을 꽂지도 못했을 겁니다.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40)이 올해만 반짝 재미를 보려고 스피드 배구라는 키워드를 들고 나오지는 않았을 겁니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다음 시즌부터 외국인 선수 선발 시스템을 트라이 아웃(공개 선수 평가)으로 바꿉니다. 과연 현대캐피탈은 오레올을 대신해 이렇게 멋진 서커스를 구경시켜줄 외국인 선수를 찾을 수 있을까요?


※최 감독 말씀에 따르면 세터 노재욱(24)이 성장하는 데도 쿠바 대표팀 세터 출신 오레올이 한몫 단단히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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