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저는 한화 최진행(30·사진)이 올 시즌 프로야구 경기에 나서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합니다. 운전 면허 정지 기간이 끝난 사람에게 왜 핸들을 잡느냐고 나무라면 안 되는 법. 최진행 역시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약에 따른 처벌을 모두 받았습니다. 더 이상 그를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없습니다.


좀 거창하게 얘기하면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올 시즌에는 출장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헌법에도 어긋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3조①은 "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올해 규정에 따라 30경기 출장 정지가 최고형이고, 이미 처벌을 받았는데 또 처벌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렇다고 대부분 언론에서 사용한 '속죄포'라는 표현에 동의하는 것도 아닙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속죄(贖罪)를 "지은 죄를 물건이나 다른 공로 따위로 비겨 없앰"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복귀 첫 경기에서 홈런 하나 쳤다고 금지 약물 복용이라는 죄를 비겨 없앨 수 있는 건 아니겠죠. 네이버 뉴스 검색 결과에 따르면 스타뉴스에서 이 표현을 처음 썼던데, 사전도 찾아 보지 않고 남의 기사 베끼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한국 언론 문화가 빚은 촌극이라고 봅니다. 굳이 써야겠다면 "지은 죄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빈다"는'사죄' 정도가 적당했겠죠.



그저 이번 사태를 KBO에서 '반(反)도핑' 규정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올해 4월에 제재 규정을 강화하지 않았다면 최진행 역시 10경기 출장 정지에 그쳤을 텐데 그러면 여론을 감당하기가 더 힘들었을 겁니다. 그나마 그때 제재를 세분화했기 때문에 최진행에게 30경기 출장 정지 처분은 내릴 수 있었죠.




2014년 KBO 규약(위)과 2015년 규약 중 '반도핑 규정' 제6조 제재 부분 변화. 규약에 따라 최진행은 올해 연봉 1억5000만 원 중에서 2350만 원이 깎였습니다. 한화 구단은 이와 별도로 최진행에게 제대금 2000만 원도 부과했습니다.


KBO에 새롭고 대단한 걸 기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일본야구기구(NPB) 가이드를 잘 따르면 되는 게 아닐까요? 일본 프로야구에서 처음 금지 약물로 징계를 받은 건 2007년 구톰슨(38·당시 소프트뱅크)이었습니다. 발모제 '프로페시아'를 잘못 바른 게 문제였죠. NPB는 구톰슨에게 20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내렸습니다. 두산 이용찬(26)이 지난해 어른들의 사정으로 피부 질환 치료제를 썼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죠. 이용찬은 당시 규정에 따라 10경기 출장 정지를 당했습니다.


구톰슨 다음은 루이스 곤살레스(36)였습니다. 곤살레스는 요미우리(讀賣)에서 뛰던 2008년 도핑 테스트 결과 암페타민 등에서 양성 판정이 나왔고 1년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요미우리는 곧바로 그를 퇴출시켰죠. 다음 케이스는  '이오수' 리오스(43·당시 야쿠르트). 리오스도 2008년 스테로이드 양성 반응으로 1년 출장 정지 처분을 받은 뒤 짐을 싸야 했습니다.


우리도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물론 퇴출이 아니라 1년 출전 정지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들이 외국인 선수가 아니라면 퇴출 당할 확률은 더 적었을 테니까요. 다른 성분으로 양성 반응이 나올 때 기존 징계 내용은 그대로 둬 억울한 피해자를 구제하는 길은 열어둬야겠죠. 대신 '경기력 향상 물질(PED·Performance-Enhancing Drugs)'이 나온 경우에는 해당 시점으로부터 1년 동안 출전 정지하면 충분히 예방 효과가 있다고 봅니다.


1년 출장 정지는 처음 적발 때 반 시즌 정도(80경기) 경기에 나오지 못하게 하는 메이저리그하고 비교하면 너무 엄격하고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한 시즌에 144경기를 소화하는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70경기 정도는 해볼 수 있다고 봅니다. 대신 "KBO에 소속하는 구단(선수, 팀닥터, 감독, 코치, 트레이너, 임원, 직원, 기타 구단관계자를 포함. 동일)은 항상 도핑을 방지하는 의무를 진다"는 규정에 따라 예전처럼 70경기 동안 1군 엔트리 한 자리를 비워두면 충분히 처벌 효과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사실 최진행에게 제일 큰 처벌은 평생 '약쟁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리라는 점. 응원가 가사처럼 '이글스 파워히터' 노릇을 해내도 영원히 이 꼬리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겁니다. "몰랐다"는 건 핑계가 될 수 없죠. 특히 스타노조롤 성분(상품명 윈스트롤)을 모르고 먹었다는 건 스스로 바보라고 인증하는 꼴밖에 되지 않습니다. 정말 모르고 먹었다면 박태환처럼 소송이라도 걸어야 했을 겁니다.



선수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도 물론 중요한 일. 그래도 30경기 출장 정지라면 144경기 중 114경기에 모든 걸 쏟아붓겠다는 생각을 막는데는 한계가 있을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적절한 징계 수위는 어느 정도 수준이나 되나요?


※결론까지 써놓고 엉뚱한 얘기: 그런데 정말 도핑이 도덕적으로 꼭 이렇게 매장되어야 하는 행위일까요? 이에 대한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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