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난데없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박태환(26·인천시청·사진)이 국제수영연맹(FINA) 도핑(약물을 써서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행위)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을 보인 겁니다. 지금이 대회 기간도 아니고, 지난해 인천 아시아경기 때도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어떻게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일단 박태환은 세계 수영에서도 '클래스'가 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특별히 대회가 없더라도 수시로 도핑 검사를 받게 됩니다.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로 수시 검사를 실시합니다.) FINA는 아시아경기를 앞둔 9월 초 도핑 테스트를 실시했고 그 결과를 10월에 박태환에게, 11월에는 대한수영연맹에 전달했습니다


김동권 대한수영연맹 사무국장은 "도핑 규정에 따라 박태환 측이 비밀을 지켜달라고 했다. 박태환 측에서 '검증을 해보고 특이사항이 있으면 얘기하겠다'고 해 협조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아버지 박인호 씨가 운영하는 소속사 팀GMP는 "(양성 반응이 나온 건) 지난해 7월 29일 T 재활 병원에 맞은 주사 때문"이라며 "박태환은 해당 주사의 성분이 무엇인지, 금지약물 성분이 들어있는지 수차례 확인했고, 이 병원 의사는 문제가 없다고 확인해 줬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팀GMP는 20일 상해 내지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T 병원을 검찰에 고소했습니다. 이 의사가 약물 악영향을 잘 알고도 주사제를 투여했다면 '상해', 잘 모르고 투여했다면 '업무상 과실치상'에 해당한다고 본 겁니다.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 이두봉)에 이 사건을 배당했고 박태환은 25일 검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박태환은 '네비도' 정말 몰랐을까?

 

검찰에서 23일 이 병원을 압수수색한 결과에 따르면 박태환은 '네비도(nebido)' 주사를 맞았습니다. 원래 갱년기 치료제로 많이 쓰는 네비도는 근육강화제로 쓰는 남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 그 자체라 세계반도핑기구(WADA)에서 금지약물로 지정한 약품입니다. T 병원은 검찰 조사에서 "남성호르몬 수치를 높이기 위해 주사를 놨고 테스토스테론이 금지약물인줄은 몰랐다"고 진술했습니다.

 

이렇게 남성호르몬 분비가 부족한 이들에게 약물을 처방하는 걸 '테스토스테론 대체 요법(TRT·Testosterone Replacement Therapy)'이라고 합니다. 박태환에게 의심의 눈초리가 쏠리는 건 이 TRT를 '도핑' 형태로 이용하는 운동 선수들이 적지 않은 탓입니다. 사춘기 때 남자 아이들이 근육량이 늘어나는 건 이 호르몬 분비가 왕성해진 결과입니다. 마찬가지로 운동 선수들도 근육을 늘리려고 TRT를 받는 겁니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 관계자는 "네비도 역시 '애너볼릭 스테로이드' 계열이다. 전문의약품 중에서도 전문의약품으로 일반적인 재활병원에서는 잘 취급하지 않는다"면서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자격정지를 받을 확률이 높다"고 내다봤습니다. 그러면서 "애너볼릭 스테로이드는 도핑 테스트 직전에 꾸준히 투약했을 때만 양성 반응이 나온다"고 덧붙였습니다. 

 

T병원 관계자는 "혈액 검사를 했는데 남성호르몬 수치가 떨어져 있어서 정상 수치로 올라가도록 놔줬다. 다른 손님도 그런 식으로 투약하곤 했다"고 전했습니다. 박태환이 정말 남성호르몬 분비가 갑자기 떨어지는 특별한 사유 때문에 치료 목적으로 TRT를 받았다고 해도 문제입니다. 스테로이드 계열 약물을 복용하면 남성호르몬 분비가 줄어드는 부작용이 찾아오는 일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TRT를 받는 것 자체가 그 선수가 금지 약물을 복용한 적이 있다는 간접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박원하 대한스포츠 의학회장은 "박태환이 9월초 FINA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지만 (아시아경기를 앞둔) 9월말 정상으로 나왔다는 건 체내 테스토스테론이 이미 상당히 희석됐기 때문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KADA 관계자는 "테스토스테론은 소변검사를 하느냐 혈액검사를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를 수 있다. 아시아경기 때 선수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도핑 검사를 했는지 알아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몰랐다면 죄가 안 될까?

 

다른 '특별한 사유'가 있다면 박태환은 2월말 열릴 예정인 FINA 청문회에 참석해 상황을 설명하면서 적극적인 해명에 나서야 합니다. FINA는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일 보인 선수는 금지 약물 종류와 고의성 여부 등에 따라 기본적으로 2~4년 자격정지 처분을 내립니다. FINA는 또 징계를 확정하면 테스트 날짜 이후에 딴 메달, 랭킹 점수, 상품 등은 모두 무효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박태환은 인천 아시안경기에서 딴 은메달 1개, 동메달 5개를 모두 박탈 당하게 됩니다. 

 

다만 박태환이 정말 몰랐다고 해도 특별한 사유가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지난해 한국 남자 배구 대표팀을 따라 국제배구연맹(FIVB) 월드리그 네덜란드 방문 경기에 다녀왔습니다. 그때 세계도핑방지규약(World Anti-Doping Code) 교육도 받았습니다. 이 규약 10.4에 딸린 주석 (b)는 선수가 "몰랐다"고 주장해도 처벌할 수 있는 경우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b)the Administration of a Prohibited Substance by the Athlete's personal physician or trainer without disclosure to the Athlete (Athletes are responsible for their choice of medical personnel and for advising medical personnel that they cannot be given any Prohibited Substance)
(b)선수에게 알리지 않은 채 주치의 또는 트레이너가 금지 약물을 투여한 경우(선수는 자신이 선택한 주치의에 대해 책임져야 하며, 어떤 금지 약물도 (투여) 받을 수 없다고 알릴 책임이 있다.)

 

이런 규정이 있는 건 만약  몰랐다는 선수 주장을 그대로 받아 들이면 예외가 속출할 게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박태환이 진짜로 몰랐다고 해도 금지 약물 투여를 예방하지 못한 책임에서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겁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병원이 "금지 약물인 줄 몰랐다"고 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박태환이 살 길은?


여기까지 살펴 보면 여러모로 '선수 박태환'에게는 이번 사건이 치명타인 게 분명한 일. 징계를 받게 되면 당장 7월 세계선수권대회와 내년 8월 리우 올림픽에 나설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 선수 생명도 사실상 끝날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인간 박태환'이 아주 죽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일단 민사소송을 통해 명예회복에 나서는 길이 있습니다.

 

사실 검찰에서 T 병원을 기소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기소(起訴)는 "검사가 특정한 형사 사건에 대해 법원에 심판을 요구하는 일"을 뜻합니다. 범죄 피해자가 다른 고소권자가 범죄 사실을 수사해 그 범인을 기소해 달라고 하는 게 고소(告訴)이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현재 박태환은 T 병원을 고소한 상태인 겁니다.

 

그러면 검찰은 T 병원이 법적으로 잘못을 저질렀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런데 TRT는 법적으로 상해(사람의 생리적 기능에 장해를 주는 일)나 과실치상(과실 행위로 사람을 상하게 하는 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는 시선이 우세합니다. TRT는 원래 우리 몸에 있는 테스토스테론을 더 늘려주는 과정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기껏해야 부작용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정도일 텐데 이때는 아시아경기에서 메달을 딴 게 오히려 걸림돌이 될 겁니다.

 

대신 "강제 투약 때문에 정신·재산적 피해를 봤다"고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양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도핑 테스트 결과로 박태환의 명예가 훼손된 건 물론 금전적인 손해도 만만찮을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박태환 측에서는 FINA 징계와는 별도로 "나는 몰랐다"는 주장을 굽힐 수 없습니다. 


그러면 병원에서도 정말 몰랐을까요? 한 재활의학 전문의는 "노화방지 치료를 하는 병원에서 자주 쓰이는 약물이 테스토스테론이다. 테스토스테론을 직접 다루는 노화방지 의사는 이 약물에 대한 최고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며 "T병원 김 원장 이 테스토스테론이 금지약물인 줄 몰랐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습했니다. 게다가 법조계에서는 "병원에서 고의로 금지약물을 투약했다는 점이 명백하지 않아도 민사상으로는 배상 책임이 인정될 개연성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너무도 치명적인 유혹


공교롭게도 박태환이 약물 의혹에 휩싸인 날 랜스 암스트롱(44)은 영국 BBC 방송에 출연해 "과거로 다시 돌아가도 금지 약물을 사용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암스트롱은 고환 암을 극복하고 1999~2005년 7년 연속으로 '투르 드 프랑스' 우승을 차지하며 인간 승리 주인공이 됐다가 금지 약물을 사용한 게 밝혀져 2012년 미국반도핑기구(USADA)에서 영구 제명을 받은 인물입니다.

 

암스트롱은 "2015년에 사이클 경주에 나간다면 도핑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도핑이 만연했던 1995년으로 돌아간다면 아마도 나는 다시 약물을 사용했을 것이다. 잘못했다는 걸 알고 사람들이 이 말을 듣기 싫어한다는 것도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전에도 썼지만 우리 양심은 이렇게 '내(內)집단' 효과에 시달립니다. 나랑 비슷한 사람이 속임수를 써도 괜찮으면 나도 괜찮다고 느끼는 심리죠. 게다가 선수 생활은 내리막길에 경쟁자까지 치고 올라오는 상황이라면 더욱 양심이 흔들릴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아직 박태환을 도핑 범으로 몰아야 할 근거는 부족합니다. 저 역시 무죄추정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인간이기에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만약 먼저 알았다면) 흥분제를 쓴 쑨양(孫楊·24)자기 이름을 딴 수영장에서 경쟁해 아무 것도 모르는 국민을 기쁘게 해야한다는 게 박태환에게도 약물 유혹을 이기지 못할 만큼 큰 부담이 된 걸까요? 검찰 수사 결과가 이렇게 궁금한 건 참 오랜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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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채소인간 2015.01.28 08:32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이번 사건은 병원의 주장이나 박태환측의 주장 모두 믿기가 어렵습니다. 운동선수 관리하는 병원에서 테스토스테론이 도핑 약물이 아닌 줄 알고 있었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 사진처럼 약상자에 테스토스테론이라고 적혀있고 처방전에 붙어있을 약 이름만 검색해봐도 성분이 테스토스테론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는데 말이죠. 진짜 병원에 약 이름도 안 물어보고 "이거 문제없는 거죠?"라고 물어만 봤다면 박현준 사건 때 LG의 과학수사 급이고... MLB의 몇몇 사람들처럼 치료제 중에 일부가 반도핑 약품인가 했는데 그것도 아니고.

    아시안게임 기간 중엔 도핑이 안 걸렸다길래 도핑 전문 병원인가 했더니 저런 전문의약품을 쓴 걸 보면 그런 데도 아닌 것 같고.. 이번 사건은 참 이해하기 어렵네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2. BlogIcon 이끼 2015.03.24 20:23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위에 인용해주신 규정을 읽어보니 부주의로 벌어진 과실이 입증되면 징계를 줄일수 있다고 되어있네요. 오늘 결과를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통상적 2년에서 6개월 줄여 18개월이 된 거죠. 병원이 몰랐다는 게 저는 가장 말이 안되는 주장 같습니다. 호르몬 수치가 낮아 치료차 주사했다. 그렇다면 병원은 그 치료에 대한 성분이나 효과에 대해 아무 설명을 하지 않았다면 업무상 과실일 수 있죠. 매번 누구보다 철저하게 도핑 검사를 받는데 박태환 선수가 알고 맞았다고 보기는 믿기 힘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