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도핑(약물을 써서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행위)은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이 명제를 부정하는 사람을 찾기는 아주 힘들 겁니다.

 

특히 서울 올림픽 때 세계 기록을 세웠다가 약물을 쓴 게 걸린 벤 존슨(52·캐나다)은 이 주장에 동의할 게 틀림없습니다.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 3루수 알렉스 로드리게스(38·사진)는 어떨까요?

 

로드리게스는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 있는 노화방지 클리닉 '바이오 제네시스'로부터 금지 약물인 인간 성장 호르몬(HGH·Human Growth Hormone)을 공급 받아 사용했습니다.

 

여기에 다른 선수들에게 알선한 혐의까지 받아 211 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최근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이에 대한 재심 청구 절차를 진행중입니다.

그런데 이번 재심은 로드리게스가 약물 복용을 했느냐 아니냐는 관건이 아닙니다.

 

211 경기가 과하냐 아니냐를 두고 법 해석 다툼을 벌이는 겁니다.

 

로드리게스가 금지 약물 사용자라는 건 사실입니다.

 

어떻게 보면 더 이상 이룰 게 없는 선수가, 그것도 이미 도핑 테스트에서 걸린 상황에서, 또 약물 사용 유혹을 이기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댄 애리얼리 미국 듀크대 교수 TED 강연에 해답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강연은 우리가 부정행위를 어떻게 저지르는지 파고듭니다.

 

 

이 강연을 통해 애리얼리 교수는 "몇몇 사람이 커다란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게 아니라 우리 대다수가 사소한 부정행위를 저지른다"고 강조합니다.

 

사람들은 부정행위를 저지를 수 있는 환경에서는 언제든 부정행위를 저지른다는 겁니다.

 

걸릴 확률이 높든 낮든, 보상이 크든 적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애리얼리 교수는 또 우리가 부정행위를 저지를 때도 최소한의 선을 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부정행위로 분명 이득을 보지만 나중에 거울을 보고 '아, 내가 나쁜 짓을 저질렀어'하고 자괴감에 빠지지는 않을 정도까지만 속임수를 쓴다는 겁니다.

 

물론 이 기준점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애리얼리 교수는 이를 '개인별 양심 한계점(personal fudge factor)'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애리얼리 교수에 따르면 이 한계점에 영향을 주는 것 중 하나가 '내집단(in-group)' 효과입니다.

 

나랑 비슷한 사람이 속임수를 써도 괜찮으면 나도 괜찮다고 느끼는 심리가 내집단 효과입니다.

 

약물을 써서 내셔널리그 최우수선수(MVP)로 뽑혔지만 교묘하게 처벌을 피한 밀워키 외야수 라이언 브론(30)이 이런 효과를 불러일으킨 걸까요?

게다가 '팔꿈치 인대 접합(토미 존) 수술은 되고 HGH는 왜 안 돼?'하는 생각이 깔려 있다면 더더욱 그럴 겁니다.

 

베스트셀러 작가 맬컴 글래드웰 미국 시사문예지 '뉴요커'를 통해 "(스포츠에서) 부정행위인 것과 아닌 것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토미 존 수술도 과학의 힘을 빌려 선수 기량을 끌어올리는데 왜 이 수술은 나쁘게 보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타고난 신체에 변형을 가해 자연을 거스르는 건 이 수술도 마찬가지라는 의견입니다.

 

타고난 신체도 문제가 됩니다.

 

사이클계에서 영구 추방당한 랜스 암스트롱(42·미국·사진)은 에리스로포에틴(EPO)이라는 호르몬을 주입했습니다.

 

이 호르몬은 원래 우리 몸에서 적혈구를 만드는 구실을 합니다.

 

몸에 적혈구가 늘어나면 산소 흡수량이 늘어 지구력이 좋아집니다.

그런데 겨울 올림픽 크로스 컨트리 스키에서 금메달 3개를 포함해 메달 7개를 따낸 에로 맨트란타(66·핀란드)는 원래 남들보다 적혈구가 많게 태어났습니다.

 

그의 핏줄 속에는 보통 성인 남자보다 적혈구가 65% 많습니다. 암스트롱이 EPO로 끌어 올린 숫자는 63%였습니다.

 

그저 타고난 대로 승부를 벌이는 게 가장 공정한 경쟁법일까요?

 

달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케냐 또는 에티오피아 선수들이 장거리에 강한 건 고지대에 살다 보니 산소가 희박한 환경에도 잘 적응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들은 유전적으로 종아리와 발목이 유독 가느다랗습니다. 또 키는 작은데 다리는 깁니다.

 

요컨대 장거리 달리기에 가장 좋은 몸으로 태어나는 데다 자연 환경까지 좋은 겁니다.

 

이들과 경쟁하려고 더 가벼운 신발을 만드는 것도 부정행위에 해당할까요?

이 모든 기준이 모호하다는 게 글래드웰 주장입니다.

 

글래드웰은 "경기력 향상 문제에 있어 생물학적 지식은 괜찮고 약학은 안 된다는 태도는 우스꽝스럽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스포츠 역사에서 과학이 이룩한 성과를 유전적 돌연변이가 딴 금메달보다 더 가치있게 여기는 선수들도 있는 법"이라는 말로 글을 마무리 짓습니다.

 

사실 저는 운동 선수라면 누구나 다 그 시대의 '스테로이드'를 썼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스포츠든 반칙과 영리한 플레이는 늘 종이 한 장 차이일 테니까요.

 

역시나 그 한계가 어디인지는 여러분하고 저, 그리고 글래드웰과 많은 스포츠 팬들 사이에도 차이가 있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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