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안녕, 철인 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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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프로필 175cm, 75㎏. 일반인이면 몰라도 야구선수라고 하기엔 보잘 것 없는 체격. 어릴 땐 더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그를 본 감독은 "너무 작고 말랐다. 먹고 살이나 찌라"며 3년간 한 번도 주전으로 기용하지 않았다.

고등학교도 남들보다 1년 더 다녔다. 2학년 겨울방학 때 허리를 다친 게 화근이었다. 1년을 더 다녀도 나아진 건 없었다. 고교 4학년 때도 그는 실책을 연발하는 3루수였을 뿐. 감독은 포기하듯 말했다. "마운드에나 한 번 올라가봐." 그로부터 5일 뒤 그는 청룡기 첫 경기 선발로 나서 2안타 완봉승을 거뒀다. 준결승에서도 7이닝 2실점으로 승리투수.

하지만 야구 인생 첫 번째 전성기는 딱 거기까지였다. 오라는 대학도 프로 팀도 없었다. 삼성과 현대를 찾아가 입단 테스트를 치렀지만 결과는 거절. 해태에 연습생으로 입단해 배팅 볼을 한 달 던진 걸로 그의 야구 인생은 끝나는가 싶었다. 그는 5년째 고교 운동장에서 공을 던졌다.

그때 제주도에서 오라는 연락이 왔다. 창단 2년째인 전문대 팀에서 그를 부른 것. 감독은 "야구 재수생이라는 걸 잊지 말라"며 그를 다독였다. 40명이던 동기가 7명으로 줄어들 때까지도 그는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2년 후 다시 바다를 건넜을 때 그는 전혀 다른 선수가 돼 있었다. 전국체전에 참가해 시속 145㎞를 넘나드는 속구를 뿌리며 스카우트들 눈길을 끌었다. 2년 전 문전박대를 했던 현대가 2차 10라운드(전체 77위)에 그를 지명했다. 문전박대보다는 확실히 환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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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5월 19일, 그는 프로 데뷔 무대에 나섰다. 16-2로 현대가 크게 이기고 있는 상황. 그래도 그는 3이닝을 던지며 삼진을 7개나 솎아 냈다. 생애 첫 등판에서 세이브를 올렸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뒤 그는 "포수 미트만 보고 던졌다"고 했다. 커리어 내내 가장 많이 한 인터뷰 멘트였다. "죽기 살기로 던진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프로 첫해 기록은 6승 4패, 평균자책점 4.28. 그 해 현대는 18승 투수를 셋이나 배출한 팀이었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그는 그렇게 위태로운 자기 자리를 만들었다.

이듬해 주전 마무리 위재영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그의 자리는 더욱 확고해졌다. 6승 6패 13세이브, 평균자책점 2.80. 그는 팀 내 연봉 고과 1위 투수가 됐다. 어느덧 사람들은 신철인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기롭게 출발한 2002년 그의 자리는 없었다. 신철인은 등판 때마다 무너졌고 현대의 뒷문단속은 신인 조용준 차지였다. 2003년에는 개막 엔트리에서도 제외됐다. 그대로 끝나는 듯 싶었다. 그를 트레이드해야 한다는 팬들도 있었다. 다시 1군 무대를 밟았지만 신철인은 이기는 경기보다 지는 경기에 나서는 투수가 돼 있었다.

사람들은 그때 몰랐다. 그가 마운드에서 무실점으로 버텼기에 팀이 경기 막판 역전승을 거둘 수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해 신철인은 리그 세이브 1, 2위 조웅천, 조용준보다 안타를 덜 맞는 투수였다.

그러니까 2003, 2004년 현대가 한국시리즈 2연패를 차지할 때 신철인이 든든한 버티목이 된 건 우연이 아니다. 2006년 플레이오프까지 포함해 신철인의 통산 포스트시즌 평균자책점은 0.84. 포스트시즌에서 30이닝 이상 던진 투수 중 신철인보다 평균자책이 낮은 투수는 없다. 18과 3분의 1이닝을 던진 '조라이더'도 0.98이다.


결국 그의 마지막 전성기는 2006년 플레이오프가 됐다. 2005년부터 줄곧 따라다닌 팔꿈치 통증이 결국 발목을 잡았다. 그는 2007년을 통째로 쉬었다. 현대 유니콘스도 그렇게 막을 내렸다. 2008년에는 1군에서 10이닝을 던진 게 전부였고 지난해 시즌 초반 히어로즈 불펜의 '히어로'는 신철인이었지만 딱 4월 한 달이었다. 넥센은 결국 8일 그를 방출했다.

신철인은 그런 투수였다. 대부분 주자를 자기 등 뒤에 두고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 잘하는 거라곤 바깥쪽에 꽉 찬 속구를 뿌리는 것밖에 없던 투수. 그 코스 하나로 무사만루도 무실점으로 넘기던 투수. 어쩐지 그게 너무도 당연하게 보이던 투수. 그래서 사람들 기억 속에 잘 남지 않는 투수. 야구 인생 내내 쉼표와 마침표 사이를 오가면서도 기어이 사람들 머릿속에 느낌표로 남던 투수.

신철인 선수. 지난해에도 방출 명단에 포함돼 있었는데 정민태 코치가 말리셨다죠? 꼭 돌아올 거라고 믿었어요. 당신은 누구보다 오뚝이라는 낱말을 더 잘 증명하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믿을게요. 어떤 식으로든 꼭 느낌표가 되어 돌아올 거라고. 당신을 움직이는 '비전 컨트롤러'에 마침표는 없다고 말이에요. 그 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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