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오늘 재키 로빈슨이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로빈슨은 박문각 '일반상식' 좀 읽어 보셨거나 스포츠에 관심이 있다면 "최초 흑인 메이저리그 선수"로 알고 계실 인물이다. 위키피디아 한국판은 물론 동아일보 칼럼과 기사도 그렇게 소개한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역사 연구가들은 1884~1887년 사이에 흑인 선수 15~20명 정도가 메이저리그에서 뛴 것으로 보고 있다. 19세기 최고 투수로 추앙받는 조지 스토비(George Stovey)도 흑인이었다.
야구 역사학자 사이에서는 윌리엄 에드워드 화이트(William Edward White)를 최초 흑인 선수로 추정하고 있다. 백인 아버지와 흑인 노예 사이에서 태어난 화이트는 1879년 프로비던스 그레이즈 소속으로 한 경기를 뛰었다. 노예 출신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뛴 선수도 화이트가 유일하다. 버드 파울러(1858~1913)를 첫 번째 흑인 선수로 꼽는 이들도 있다.
학자에 따라서는 1884년 톨레도 머드헨스에서 뛰었던 모제스 플릿우드 워커(Moses Fleetwood Walker)를 최초로 꼽기도 한다. 워커가 메이저리그에 첫 등장한 흑인 선수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최초로 쫓겨난 흑인 선수인 것은 틀림없다.
1883년 8월 10일 워커는 세미프로 팀 메드헨스 소속으로 시카고 화이트스타킹스(현 시카고 컵스)와 시범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상대팀 감독 캡 앤슨(1852~1922)은 "흑인이 구장에 나온다면 경기를 보이콧 하겠다"며 경기를 지연시켰다. 감독 겸 주전 1루수로 팀 최고 스타였던 앤슨은 얼굴을 붉히며 자기 주장을 펼쳤지만 간곡한 설득에 결국 경기를 진행했다.
이듬해 머드헨스는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American Association·AA)으로 승격했다. 당시 메이저리그는 AA와 현재 내셔널리그(NL), 두 리그였다. 화이트스타킹스도 AA 소속이었다.
이번에 먼저 물러선 것은 머드헨드 코치진. 이들은 화이트스타킹스를 상대할 때 워커를 쓰지 않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워커를 방출했고, 워커는 인터내셔널리그 소속 마이너리그 팀 뉴아크 리틀 자이언츠와 계약했다. 스토비가 뛰고 있던 팀이었다.
운명의 날은 1887년 7월 14일. 리틀 자이언츠는 '공교롭게도' 화이트스타킹스와 연습경기를 잡았고 앤슨은 또 흑인 선수를 거부했다. 워커는 부상으로 경기에 나설 수 없었지만 스토비는 이날 선발 투수로 등판하기로 돼 있었다. 리틀 자이언츠는 선발 투수를 교체하고 경기를 치르기로 했다.
경기 상황을 보고 받은 인터내셔널리그 운영 위원회는 "앞으로 리그 소속 팀에 흑인 선수를 고용하지 않는다"는 의제를 표결에 붙였다. 이 의제는 찬성 6, 반대 4로 가결됐다. AA와 NL도 곧 같은 규칙을 채택했고 1897년 흑인은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모두에서 추방당했다.
1947년 4월 15일 로빈슨이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면서 이 인종 차별 정책은 끝이 났다. 100여 년 전 인종차별이 당연했던 것처럼 이제는 '나와 조금 다르다고 차별하지 않는 것'이 정상적인 메이저리그가 됐다.
한 스포츠칼럼리스트는 "재키 로빈슨은 미국을 좀 더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었다"고 평했다. 재키 로빈슨이 달았던 등번호 42번은 현재 메이저리그 30개 팀 모두에서 영구결번이다.
참고로 로빈슨을 첫 번째라고 할 때 두 번째에 해당하는 선수는 래리 도비(1923~2003)다. 로비는 1947년 7월 5일 클리블랜드 선수로 메이저리그에 데뷔전을 치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