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이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중국전에서 박경완이 3볼에서 걸어나갔다는 보도가 나와 야구팬들을 '낚고' 있다.

기사만 훑어보면 '정말 그럴 듯'해 보이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오보일 확률이 높다.

자, 잠시 박경완이 볼넷을 얻어낸 타석을 보자.



1분 5초경 박경완은 심판에게 (입모양으로 판단하건대) "3볼?"이라면서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인다.

이후 바운드 볼에 박경완이 걸어 나간다. 중계화면에 잡힌 볼 카운트는 분명 3볼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쿠키뉴스는 '게임데이' 화면을 보여주며 "존재하지 않는 4번째 공을 오른쪽으로 살짝 빠진 볼이라고 표기했다"면서 "4구에 대한 기록은 명백한 오기다. 발생하지 않은 볼 카운트를 대회 주최 측에서 허위로 기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기를 중계한 MBC와 엑스포츠 관계자 전언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두 번째 한일전 때도 MBC 해설진은 8회초 "고영민이 대타로 타석에 들어섰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고영민은 6회말에 대수비로 경기에 나섰다.

현장 중계가 아니기 때문에 일일이 확인이 어려운 것이다. 중계진이 초구를 놓쳤을지 모른다는 얘기다.

멀리 보이는 전광판에도 볼에만 불이 하나 들어와 있지만 전광판도 얼마든 착오를 일으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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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규칙 9.04 (a)조 ②항에 따르면 "(주심은) 볼과 스트라이크를 선언하며 또한 카운트를 한다."

주심들은 이따금씩 손톱을 가다듬는 듯한 동작을 보인다. 사실 이때 주심들은 볼카운트 지시계를 조정하고 있는 것이다.

전광판이 잘못됐다고 판단해 박경완이 카운트를 확인했을지 모를 일.

또 한 가지 가능성은 '촉진룰'이다.

3구를 던지기 전 주다웨이는 동영상으로 47초에 공을 받았지만 57초에 발을 풀었다.

투수가 고의적으로 경기를 지연시켰다고 판단하면 주심은 투수가 공을 던지지 않아도 '볼'을 선언할 수 있다. 이번 대회 주심을 맡고 있는 메이저리그 심판들은 유독 촉친룰에 엄격하다.

1999년 5월 4일 박찬호 선수도 풀카운트에서 15초 동안 공을 던지지 않아 자동 볼넷이 선언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박경완이 주심에 볼 카운트를 확인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볼 카운트를 확인하기 전에도 주심을 한 번 쳐다보는 장면이 나온다.

게임데이 화면에 네 번째 투구가 기록됐다는 것은 벌투 쪽일 확률이 높다.

정말 3볼에서 걸어 나간 것이라면 유독 한 언론사만 [단독]을 내세워 보도했을 리가 없다. 선수단에 전화 한 통만 넣으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기 때문.

물론 카운트를 착각하는 일은 야구장에서 일상다반사지만 이번에 박경완이 전세계를 낚지는 않은 것 같다.

아래는 국내 야구에서 카운트 착각 때문에 빚어진 해프닝 두 건.

1992년 3월 17일 대구구장.

홈팀 삼성은 OB를 상대로 시범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0대 4로 뒤진 2회말 1사 1루, 지난해 1차 지명자 포수 이영재가 타석에 들어섰다.

초구는 스트라이크, 2구는 파울볼이었다.

볼카운트 2스트라이크 노볼에서 OB 권영일이 던진 공은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박찬황 주심은 "스트라이크 투"하고 크게 외쳤다.

시범경기였기 때문일까. 박 주심의 콜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권영일은 볼카운트 3스트라이크에서 볼 세 개를 연거푸 던졌고, 이영재가 8구를 받아쳐 우중간에 떨어지는 안타를 만들어 내며 주자 1, 3루.

이날 경기 기록을 맡은 정만오 씨는 훗날 "이의를 제기하려 했지만 (권)영일이가 이미 투구 동작에 들어간 뒤로 손 쓸 수가 없었다. 시범경기였기 때문에 그 뒤에도 이 일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영재는 현재까지도 프로야구 공식경기에서 삼진을 당하고도 안타를 기록한 유일한 선수다.

세월은 13년이 흘러 2005년 4월 22일 군산구장.

KIA가 9대 1로 앞선 상황에서 마무리 신용운이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다.

두산 타자는 김동주 대수비로 7회부터 경기에 나선 김재호.

볼카운트 풀카운트에서 신용운이 던진 공은 바깥쪽으로 빠졌다.

이번에도 운병웅 기록원이 주심을 불렀지만 신용운은 역시나 투구를 시작한 상태였다.

김재호는 이 공을 오른쪽으로 밀어쳐 안타를 만들었다.

경기가 끝난 뒤 KBO는 구심에 '볼 카운트 착각'을 물어 벌금 20만 원을 부과했다.

이날 주심은 13년 전의 행운아 이영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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