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The Rise and Fall of Nomar Garciaparra
by David Gassko
November 07, 2005

Even when he was a rookie, we all knew where he was headed. Slapping single after single into right field. Doubles off the Monster. Triples to the deep corner in center field. Every time he stepped to bat, we expected a hit. And Nomar Garciaparra was just a rookie.

그가 루키였을 때부터 우리 모두 그가 어떤 선수가 될지 알고 있었다. 우측으로 밀어 쳐 안타를 만든 다음 타석에서 또 안타. 그린 몬스터를 때리는 2루타, 중견수 뒤쪽으로 날아가 외야 삼각점(펜웨이파크 특유의 구장 구조)에 떨어지는 3루타. 그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우리는 안타를 떠올렸다. 노마 가르시아파라는 그저 신인 선수였을 뿐인데도 말이다.

Nomah did not disappoint. 44 doubles, 11 triples, 30 home runs, and a .306 average his rookie season. Hit .323 the next year, .357 the next, and finally, in 2000, .372.

그 '놈아'는 우리는 실망시키지 않았다. 루키 시즌에 2루타 44개, 3루타 11개, 홈런 30개를 때리며, 타율 .306을 기록했다. 다음 시즌 .323, 그 다음 .357, 그리고 마침내 2000 시즌 .372였다.

He was only 26 in 2000, before most baseball players peak. And that’s what infatuated us so much with Nomah; we could see him hitting .400. In fact, in 2000, he almost did. He was batting .400 as late as July 17th; .394 on August 4th. We all thought he could do it, be the first to hit .400 since the Splendid Splinter in 1941, but destiny had decided otherwise, almost one year before.

2000년에 그는 겨우 26살이었다. 이 나이는 보통 타자들이 전성기에 이르기 전이다. 그게 우리가 그 '놈아'한테 열광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가 4할을 때릴 거라 믿었다. 사실 2000 시즌 그는 거의 그럴 뻔했다. 7월 17일까지 그는 4할을 유지했다. 8월 4일에도 .394였다. 우리는 모두 그가 해낼 거라고 생각했다. 1941년 테드 윌리엄스 이후 최초로 4할 타자가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운명은 이미 다른 쪽으로 결정된 뒤였다. 그것도 벌써 거의 1년 전에 말이다.

September 25th, 1999, the Red Sox were playing Baltimore in an essentially pointless game. The Sox led Oakland by four games in the Wild Card race coming into the day, and had a magic number of five. They came into the game with 88 wins, one more than the Athletics would have at the end of the season.

1999년 9월 25일, 레드삭스는 볼티모어를 상대로 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큰 의미는 없는 게임이었다. 그 경기 전까지 레드삭스는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 오클랜드에 네 경기나 앞서 있었다. 매직 넘버는 5. 레드삭스는 이미 88승이나 올린 상태였다. 오클랜드의 시즌 최종 승수보다 1승 많은 기록이었다.

To start the bottom half of the eighth inning, the Red Sox were leading 3-1. Ramon Martinez had just spun a masterful seven innings of four-hit ball in his third start of the year. In his first two, he had pitched only 7.2 innings and allowed seven runs, all earned. This time, he was reminding fans of his younger brother, himself in the midst of maybe the greatest pitching season of all-time. Nomah was leading off the inning and Orioles manager Ray Miller decided to bring in right-hander Al Reyes after lefty Doug Johns had pitched the previous inning. Reyes promptly hit Nomah on the wrist, and was replaced.

8회말에 들어가기 전, 레드삭스는 3:1로 앞서 있었다. 라몬 마르티네스는 그의 시즌 세 번째 선발 경기에서 안타를 네 개밖에 얻어 맞지 않으며 경기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전 두 번의 선발에서 그는 도합 7.2이닝밖에 던지지 못했고, 7실점이나 한 상태였다. 7점 모두 자책점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친동생(페드로)의 팬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그 '놈아'가 선두 타자로 타석에 들어섰고, 오리올스 감독 레이 밀러는 좌완 덕 존스를 내리고 우완 알 레이예스를 마운드에 올렸다. 레이예스는 그 '놈아‘의 팔목을 맞혔다. 그 '놈아'는 곧바로 교체됐다.

Perhaps Reyes should get a plaque in the Hall of Fame right next to Carl Mays. Mays hit Ray Chapman in the head with a pitch, killing the promising young star. Reyes didn’t kill Nomar, but he did kill Nomah.

레이예스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칼 메이스 바로 옆자리에 말이다. 메이스는 레이 챔프먼의 머리를 맞췄다. 장래가 촉망했던 젊은 스타는 그 자리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레이예스는 노마 가르사아파라를 죽이진 않았다. 대신 그 '놈아'를 죽였다.

Nomah was the guy, our guy, who could do everything. The guy who hit singles, doubles, triples, home runs better than anyone at his position. That’s not easy to do, and the hits added up. We saw in him Ted Williams; perhaps what is ironic is that neither won a championship in Boston, and soon after both left us, the Red Sox were on top of the world.

그 '놈아'는 모든 걸 할 수 있는 놈이었다. 우린 그를 좋아했다. 그는 메이저리그 어느 유격수보다도 단타, 2루타, 3루타, 그리고 홈런을 잘 때려냈다. 이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안타 수는 점점 늘었다. 우리는 그에게서 테드 윌리엄스를 보았다. 둘 모두 보스턴에서 월드 챔프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아이러니 한 건 둘이 보스턴을 떠난 직후 레드삭스가 월드 챔프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테디는 돌아가셨죠.)

Nomah had that something about him, that Boston superstar something that Williams, Bird, and Orr had. He wasn’t just good—so were Carl Yastrzemski, Jim Rice, Mo Vaughn, Roger Clemens—he was Nomah. He had a special name. A place in the heart of Boston.

윌리엄스, 버드(NBA), 그리고 오어(NHL) 같은 보스턴의 프랜차이즈 스타에게서 풍겼던 묘한 느낌은 '놈아'의 것이기도 했다. 그는 단지 뛰어나기만 했던 게 아니었다. 그건 칼 야즈, 짐 라이스, 모본, 로켓맨, 이들 모두 그랬다. 하지만 그는 좀더 특별했다. 그는 보스턴의 심장이었다.  

We were sure he was the next Ted Williams. Perhaps we should have known better. Nomar was nicknamed “Glass” in high school because he was so fragile. Fragility was never a trait Teddy possessed. Williams was a fisherman, a hunter, a decorated Air Force pilot. Nomar was none of that. But, in our minds, Nomah was.

우리는 그가 테드 윌리엄스의 뒤를 이으리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보다 더 확신할 수는 없을 정도였다. 고교 시절 노마의 별명은 '안경'이었다. 그는 그만큼 부상을 달고 살았다. 부상은 테드 윌리엄스와 무관한 것이었다. 테디는 강했다. 그는 낚시꾼이었고, 사냥꾼이었으며, 훈장을 받은 공군 파일럿이었다. (한국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노마는 이 가운데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마음속에서, 그 '놈아'는 테디였다.

Nomah was clearly in some pain after getting hit by the pitch, but he played through it. Played another season, in fact. But by the end of 2000, it was clear that something was wrong. And in spring training 2001, his wrist suddenly ballooned to the size of a grape fruit. We blamed it on the curse—no not Ruth, but Sports Illustrated, which had pictured him shirtless on the cover a few weeks prior. SI’s cover players seemed to mysteriously go down, and Nomah was the next. Who knew that he would never come back?

그 '놈아'는 투구에 맞은 직후 통증을 느꼈을 게 틀림없다. 하지만 참고 뛰었다. 정확히는 한 시즌을 참았다. 하지만 2000 시즌이 끝난 뒤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게 확실히 드러났다. 2001년 스프링캠프 도중, 그의 팔목은 갑자기 포도 알갱이 크기로 불어났다. 우리는 저주를 원망했다. 이번엔 밤비노의 이름이 아니었다.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이하 SI)였다. 몇 주 전 SI 표지에는 상반신을 노출한 그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SI의 표지에 실린 선수는 갑작스레 하향세를 겪고는 한다. 정말 미스테리한 일이었다. 그 '놈아'도 피해자였다. 그가 다시 예전 같은 모습이 될 수 없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The guy that came back in late August of that year was Nomar, the mortal. Over the next two years, he hit .305. He hit 52 home runs, 93 doubles, 18 triples, even had 24 steals. But he was no longer Nomah, and it was time to move on.

8월말에 돌아온 건 노마였다. 이건 숙명이었다. 이후 2년 동안에도, 그는 .305의 타율을 올렸다. 홈런 52개, 2루타 93개, 3루타 18개, 심지어 도루도 24개나 기록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그 '놈아'가 아니었다. 그리고 뭔가 조치가 필요했다.

In the 2003 off-season, Nomah’s relationship with the Red Sox blew up. He wanted four years, $60 million. They would only offer four and $48 million. The Sox were being smart about him, but Nomar wasn’t having it. Eventually, they would come around to his price. But at that point, it was too late. Nomar hated the Red Sox, the Sox hated Nomar, and Boston fans simply hated everyone involved.

2003 오프시즌, 레드삭스와 그 '놈아' 사이의 관계가 틀어졌다. 그는 4년간 6000만 불을 요구했다. 구단이 제시한 건 4년간 4800만 불밖에 되지 않았다. 레드삭스는 영리하게 판단했다. 하지만 노마는 그러지 못했다. 결국, 중재가 이러졌다. 하지만 서로에게 상처가 너무 컸다. 노마는 레드삭스를 경멸했고, 레드삭스는 노마를 무시했다. 그리고 보스턴 팬들은 사건에 연루된 모두를 증오했다.

Mid-2004, the architect finally pulled the trigger. Shocked us all. Sent Nomar away. Pedro Martinez said that day, “for some reason, I just feel Nomar is a part of the tradition in Boston. I’m so used to seeing ‘No-mah.’ For some reason, I framed him as a Bostonian, as part of the team.”

2004시즌 중반, 건축가 선생(테오의 별명이죠.)이 마침내 사건을 터뜨렸다.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노마를 트레이드 시켜 버린 것이다. 그날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이런 인터뷰를 남겼다.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제게 노마는 보스턴 전통의 한 축이예요. 나는 그'놈아'를 보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어요. 내게 그는 보스턴의 상징이죠, 이 팀의 영원한 한 부분으로서 말이죠."

He was right. Nomah was a Bostonian, Nomah was part of the tradition. But we hadn’t seen Nomah for three years. And Nomar, well Nomar was expendable. So the Sox sent him to the Cubs and won the World Series.

페드로는 옳았다. 그 '놈아'는 보스턴의 상징이었다. 그는 전통의 일부분이었다. 하지만 3년간 우리에게 그 '놈아'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노마는, 그냥 노마는 보존 가치가 없었다. 그래서 레드삭스는 그를 컵스로 보냈고, 월드 챔프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We all know that part of the story. Nomar’s story is much sadder. Since that day, he’s been okay—putting up a .289/.339/.453 line with the Cubs—but he’s no longer Nomah, or one of the big three, or even a Hall of Famer.

이후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노마의 이야기는 더더욱 슬프다. 그날 이후 그는 컵스에서 .289/.339/.453를 때렸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그 '놈아'가 아니었다. 빅 3 가운데 한 명도 아니었고, 명예의 전당 예약자는 더더욱 아니었다.

He’s just Nomar, major league shortstop.

그는 그냥 노마였다. 보통의 메이저리그 유격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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