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명사][하다형 자동사] 달음질하는 일. 경주(競走).파울볼러가 아닌 분은 달리기의 정의를 위와 같이 알고들 계십니다. 하지만 파울볼에 상주(常駐)하시는 분들이라면, 달리기가 저 뜻만이 아님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렇게 달리기가 이뤄지는 소위 달림방, 음악방송을 빙자(憑藉) 사실은 야식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서로의 주접스러움을 과시하는 자리. 매너 유저와 JJ 유저가 극명하게 갈리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모(某) 유저는 자신의 주접스러움을 과시한 뒤 코멘트를 지움으로써 되지도 않는 시도로 매너 유저 이미지를 관리하고자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합니다. -_- 그 결과 그 코멘트에 댓글을 단 유저들의 어안이 벙벙해지기도 했었죠. 제가 오늘 그 유저에게 확인해 본 결과, 이제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주의토록 하겠다는 전언이 있었으니, 한번 믿어줘 봅시다.
그런데 저는, 어제 한 파울볼러 님으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몇몇 이름난 야구 선수들 역시 파울볼에서 달리는 재미에 빠져 실제 러닝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제보였습니다. 물론 목수님과의 몇 차례 대화를 통해 선수 및 가족 여러분들께서 파울볼에 가입돼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유저들이 얼마나 뿌리 깊게 파울볼에서 활동하고 계신지는 제가 미처 파악하고 있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정치적' 문제엔 개입하지 않는다는 게 제 파울볼링의 제 1원칙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기가 조심스러웠던 게 사실이지만, 달림방의 후유증으로 다음날 고생하는 게 비단 일반 유저뿐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코자 용기를 내어 글을 쓰게 됐습니다.
다음은 달림방에 중독된 혹은 중독됐던 선수들의 명단입니다. (선수 이름 뒤에 -/+로 표시된 건 RC/25의 변동입니다.)
1. 조원우(SK) -6.00
야구팬들은 일반적으로 SK에서 조원우 선수를 트레이드 시킨 까닭이 SK 외야에 빈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들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다음 시즌 이진영 선수의 입대가 거의 확실시 되고, 박재홍 선수가 FA로 풀린다는 점을 감안할 때 팀내 베테랑급 외야수를 너무 손쉽게 트레이드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사실 그 원인은 바로 달리기였습니다.
야간 경기에 나설 때는 비록 새벽에 달렸다 하더라도, 나름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경기에 임할 수 있기에 큰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하지만 주간 경기는 달리기의 여파가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름 팀내에서 고참급에 속했던 SK 시절, 조원우 선수는 파울볼의 마력에 빠져 남몰래 달림방을 신나게 달렸던 게 사실입니다. 그 결과 늘 수면이 부족한 상태에서 경기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결국 한화로 트레이드 되고야 말았습니다.
하지만 한화로 트레이드 된 이후 마음을 다잡고 운동에 매진한 결과, 주간 경기에서 오히려 +2.96의 성적을 보이면서,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조원우 선수의 트레이드 시점 즈음부터 달림방에서 잘 보이지 않는 닉네임, 어떤 건지 기억 안 나십니까? 저는 분명히 기억합니다. 그 아이디가 조원우 선수였다니, 좀더 친하게 지낼 걸 그랬습니다. 이제 달림방에서 볼 수 없게 되어 아쉽기는 하지만, 그라운드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셨으니 그걸로 대만족하겠습니다.
2. 심광호(한화) -4.42
사실 한화 이적 초기만 해도, 조원우 선수 완전히 달림방을 끊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따금 다음 날 주간 경기가 없는 날이면 조용히 윈앰프를 켜고 방송을 듣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님께서 한 차례 주의를 주시자 이후로는 달림방을 완전히 끊는 과감성을 바탕으로 성적 향상을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달림방의 마력에 빠져버린 또 다른 선수가 있었으니, 이는 바로 한화의 심광호 선수입니다. 아시다시피, 백업 포수의 생활이라는 게 고되기 이를 데 없는 일입니다. 선발 출장 기회가 주어진대도 위기 상황이 닥치면 언제 주전 선수와 교체가 되어야 할지 모르는 안타까운 포지션이 바로 백업 포수입니다.
올해 일취월장한 모습을 보여준 심광호 선수, 하지만 신경현이라는 벽을 넘기엔 다소 버거웠던 게 사실입니다. 다른 선수들 같으면 이 고난의 순간을 술이나 도박에 빠져, 자칫 선수 생명을 그르치고 말았을지도 모를 노릇입니다. 하지만 심 선수는 파울볼에 들러 자신을 격려해주는 팬들과 함께 하며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달림방의 유혹은 끝끝내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형 뭐 들어요? 이렇게 한마디 물은 게 실수였습니다. 그 이후로 시즌이 끝날 때까지도 심광호 선수 결국 달림방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야간 경기에 비해 훨씬 초라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치고야 말았습니다. 이래서는 곤란합니다. 내년 시즌, 조원우 선수처럼 달림방을 끊고, 더 좋은 모습으로 한화의 안방에 신경현 선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널리 각인시켜주길 바랍니다.
3. 조중근(SK) -3.97
A .182/ .243/ .182
B .254/ .335/ .449
이 두 기록을 어떻게 같은 선수의 기록이라고 보겠습니까? 하지만 A는 조중근 선수의 주간 경기 기록, B는 야간 경기 기록입니다. 경기가 저녁에 시작할 경우 적어도 평균 수준의 타자는 되지만 낮에 시작할 경우는 2군급 선수로 완전히 전락해 버리고야 맙니다.
역시나 원인은 조원우 선수였습니다. 같은 성씨라는 연유로 유독 조원우 선수를 따랐던 조중근 선수는 조원우 선수와 함께 달림방의 방송을 즐겨 듣고는 했습니다. 그리고 조원우 선수의 트레이드에 맞춰 더 이상 방송을 들을 수 없게 되자 한때 달림방을 멀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움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조원우 선배에 대한 그리움이라기보다 달림방 특히 투명한블루님의 투명한 목소리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취향이 같군요. 저도 딱지놀이 하기까지 제법 힘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목수님께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파울볼 고시를 보지 않고 가입할 수 있었다는 후문입니다. 기억하시는 분이 계시겠지만, 선수 및 가족 등 야구 관계자에 대한 무시험 전형에 대한 공지를 목수님께서 올리셨던 건 바로 이런 까닭이었습니다.
조중근 선수, 달림방의 마력에서 쉽사리 헤어나올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그라운드에서 멋지게 뛰는 모습을 보여줄 때, 블루님이 오히려 더 기뻐하실 겁니다. 저도 블루님을 포기하기까지 많은 아픔이 뒤따랐습니다. 파이팅입니다.
4. 최준석(롯데) -2.84
블루님의 목소리에 반한 건, 비단 조중근 선수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칠 때, 룸메이트인 이대호 선수가 여자친구와 닭살스런 통화를 나누고 있을 때, 최준석 선수는 볼륨을 낮추고 스잔하게 녹아드는 블루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할머니, 정말 잘할게요. 정말 멋진 모습 보여드릴게요. 그.러.나.
.140/ .259/ .220 vs .270/ .324/ .391 블루님의 마력에 빠진 라인 차이를 보세요. GPA .172 vs .244 70포인트가 넘게 차이가 납니다. 역시 블루님의 매력은 정말 어쩔 수가 없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최준석 선수 머리도 블루클럽에서만 한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그 때문에 서면의 유명 헤어샵에서 머리를 한 이대호 선수의 헤어와 미세한 차이가 난다는 게 일반적인 헤어 스타일리스트들의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최 선수. 할머님께서 정말 바라시는 건, 할머님을 그리워하고 아파하는 일이 아니라, 씩씩하게 멋진 타구를 날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블루님보다 더 좋고 멋진 여자를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길 기원하실 겁니다. 모쪼록 운동에 매진, 조금은 날렵해진 모습으로 내년 시즌 <준석아, 이모다> 하는 플래카드가 자주 걸리길 기원합니다.
5. 강민호(롯데) -2.04
다시 한번 타격 라인 확인하고 가보면 ; .170/ .204/ .234 vs .263/ .285/ .371
예상하신 대로, 최준석 선수의 유혹이었습니다. 운동부란 모름지기 서열관계가 빡세기로 소문난 곳입니다. 비록 더 이상 최준석 선수에게 포수로서의 수비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노릇이지만, 그래도 같은 고교(포철공고) 출신에 같은 프로 팀, 같은 포지션인 선배라면 당연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그런 연유로, 강민호 선수는 애초부터 블루님의 목소리에 매료되는 대신 무반주 라이브에 매료됐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선배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자는 넘보지 않는다는 운동인의 룰을 지킨 셈이라고 하겠습니다. 실제로 타석에 들어선 타자에게 무반주 라이브 신공을 그대로 구사, 타자들의 넋을 빼놓은 다음 삼진으로 돌려 세운 경우가 여러 차례 된다는 소문이 들리고 있으나, 아직 사실이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
올해는 최기문 선수가 동계 훈련이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팬들은 더 많은 성장세를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팬들과 함께, 또 선배들과 친하게 지내려는 노력 역시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선수는 결국 실력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사직 구장에도 천연 잔디가 깔리니 만큼 여름 낮 경기의 뜨거움도 조금쯤은 사그라들 걸로 보입니다. 내년엔 낮 경기에서도 꾸준한 모습을 보이길 기대하겠습니다.
아차상 ; 클리어(LG), -4.51
사실 상당한 RC/25 감소 폭을 기록했습니다. .317/ .338/ .514이던 라인이 .239/ .291/ .394로 급속하게 떨어집니다. 특히 장타율 감소가 두드러집니다. 이 역시 달림방 후유증으로 볼 수도 있으나, 데이비스 선수라면 몰라도 그가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고 확인할 만한 징후가 발견되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혹자는 이태원이나 홍대 등의 클럽에서 목격했다는 증언을 해오고 있으나, 이 역시 확인되지 않은 -카더라 통신에 불과합니다. 내년 시즌에도 한국에서 뛰게 된다면 확실히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걸로 예상됩니다.
낮 경기는 야간 경기에 비해 표본이 1/4 가량밖에 안 됩니다. 그래서 직접적인 비교는 곤란하지만, 아무래도 야간 경기에 투수들의 투구가 더 위력적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낮 경기에 타자들이 더 강한 게 사실입니다. 실제로 타격 라인을 비교해 보면, .280/ .355/ .433 vs .260/ .339/ .383으로 제법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도 이 선수들은 오히려 낮 경기에서 더 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음악 클럽이 생기는 건 개인적으로도 매우 찬성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파울볼은 야구팬들의 휴식처입니다. 우리가 여기 모인 가장 근본적인 목적인 야구를 즐기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우리의 휴식이 야구 선수들의 플레이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는 우려할 만한 일입니다.
우리들 본인의 생업은 물론이거니와, 다음날 졸린 눈을 부비며 경기에 나설 선수들을 대비해서라도, 지나친 달리기는 지양해야하지 않은가, 하고 조심스레 제안해 봅니다. 정말이지, 이제 여러분의 체력을 따라가기란 너무도 버겁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