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 1

2사 주자 1/2루, 3-유간 깊은 쪽으로 타구가 빠르게 흘러갑니다. 두산의 귀염둥이 유격수 손시헌, 멋진 다이빙 캐치로 공을 글러브에 넣은 후, 재빨리 2루에 송구 1루 주자를 잡아내며 이닝을 마무리 짓습니다. 팬들의 환호성이 이어지고, 구장 여기저기서 손시헌, 손시헌을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만약 이게 9회초 1점차로 리드하고 있던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그야 말로 경기 하나를 건져낸 멋진 수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이런 광경은 우리가 야구 경기를 보다 보면, 제법 자주 볼 수 있는 일입니다. 거꾸로 어처구니 없는 수비 실책으로 인해 주지 않아도 될 점수를 주는 것도 마찬가지. 수비에 웃고, 수비에 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인플레이된 타구가 안타로 연결되는 건 투수가 컨트롤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순간 이런 주장을 하는 DIPS 이론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합니다. 논란거리가 다분한 이 주장이 이럴 땐 정말 그럴 듯해 보이는 건 제게만 그런 일일까요?

저는 현대 팬으로서, 이번 시즌 내야진의 어이없는 수비에 너무도 자주 시달렸습니다. 우선 인정하고 싶은 건, 불과 한 두 해 전만 해도 국내 최강의 그물 내야진과 함께 했기에 수비수를 보는 눈이 높아졌다는 사실입니다. 상대팀의 번트를 처리할 때, 수비진의 현란한 로테이션을 보고 있노라면, 입이 쩍 벌어졌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시즌 중반에 이르러서도 동계 훈련을 막 마쳤을 때처럼 유기적인 그 움직임.


# 2

쪽지로 몇몇 분들께서 질문을 주셨지만 사실 우리는 현재 수비의 가장 기본적인 지표, 즉 Assist나 Put Out의 숫자도 알지 못합니다. 그로 인해 정말 기본 중의 기본, 필딩율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단순히 실책수로 야 내가 보기엔 수비가 좋았는데, 왜 이리 실책을 많이했지? 하고 자문하는 수준에 그치고야 맙니다. RF조차 구하지 못하니 UZR, PMR, DFT 등 미국의 세이버메트리션들이 골머리 썩어가며 만들었을 지표들조차 모두 현재로선 무용지물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구할 수 있는 자료가 있기는 합니다. DER이라는 지표인데, 이는 Defense Efficiency Ratio의 약자로서 수비진이 처리해야 했을 타구가 몇 %나 아웃으로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DIPS나 FIP 등이 수비진과 투수진을 분리시켜 투수진만의 능력치를 알아보는 지표라면 DER은 거꾸로 수비진의 능력을 알아보는 지표라고 하겠습니다. (가끔 오해를 하는 분이 계셔서 밝히자면, 당연히 이 지표 역시 투수진의 능력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줄기차게 라인 드라이브 타구를 맞는 투수가 마운드에 있다면 수비진의 부담이 그만큼 더 클테니까요.)

사실 야구는 얼핏 다른 팀원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큰 의미를 갖지 않는 종목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사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수비는 확실히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를 테면, NYY의 데릭 지터는 3-유간 수비에 약한 모습을 보이면서 골드 글러브와 인연이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3루수로 에이로드가 자리잡은 이후에는 오른쪽 수비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면서 2년 연속 골드 글러브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됐습니다. 따라서 한 선수의 플레이보다 팀 전체의 유기적인 수비력을 알아본다는 측면에 있어 DER은 유의미한 자료라는 생각입니다.


# 3

그럼 먼저 2005 시즌 국내 8개 구단의 DER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SK-------0.717
삼성------0.710
두산------0.703
롯데------0.690
한화------0.683
현대------0.683
기아------0.682
LG-------0.671

그런데 유의해야 할 점은 DER은 구장의 영향이 많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자료라는 점입니다. 넓은 구장과 좁은 구장, 기타 파울 영역의 크기 등이 수비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장 효과를 적용해서 데이터를 새로 구하는 편이 옳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몇 번 관련 글을 올려본 결과,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국내 환경에서 구장 효과를 적용하는 데 상당한 거부감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따라서 같은 구장을 쓰는 두 팀, 즉 두산과 LG만 한번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위에서 보시다시피 두산의 DER은 .703으로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반면 LG의 기록은 .671로 리그 최하위. 그럼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만약 평균적인 투수들이 던진 공을 수비한다면 이 두 팀은 얼마 정도의 실점 차이를 보일까 하는 점입니다. 거꾸로 말씀드리자면, 수비진이 과연 경기당 막아주는 점수가 어느 정도나 될까 하는 점 말입니다.

이를 위해 평균적인 투수진을 한번 가정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이번 시즌 전체 기록을 토대로 몇몇 이벤트가 발생할 비율을 나타낸 자료입니다.

HBP/PA------0.0210
K/PA---------0.1886
BB/PA-------0.1022
HR/PA-------0.0259
SH/PA-------0.0208
SF/PA-------0.0076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수비진이 아웃 카운트를 늘리지 못하면 못할수록 타석수는 늘어나게 돼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볼이 인 플레이된 상황을 따로 떼어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위 Three True Outcomes라 불리는 삼진, 볼넷, 홈런 여기에 몸에 맞는 볼을 제외하면 나머지 타석은 공이 인 인플레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비율을 구해보면, 33.73%가 나옵니다. 따라서 66.27%의 타석에서 볼이 인 플레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이를 LG와 두산 양 팀을 기준으로 다시 표로 정리 하면 ;

---------------두산 -----------LG
HBP/PA------0.0210-------0.0210
K/PA---------0.1886-------0.1886
BB/PA-------0.1022-------0.1022
HR/PA-------0.0259-------0.0259
TO/PA-------0.3377-------0.3377
SH/PA-------0.0208-------0.0208
SF/PA-------0.0076-------0.0076
H/BIP-------0.2974-------0.3286
H/PA--------0.2229-------0.2435
ROE/PA-----0.0094-------0.0128
ROB/PA-----0.2323-------0.2564
OUTs--------0.6446-------0.6205

위의 표를 보시기 위해서는 약간의 수학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H/BIP는 인플레이된 상황에서 안타로 연결된 확률을 계산한 것입니다. (1-DER), 그리고 H/PA는 홈런이 계산에서 제외된 부분을 전체 타석과 연관해 새로 구한 비율. ROE는 '적실'로 출루에 성공할 확률을 계산한 것이고, ROB는 이 모두를 더한 비율입니다. OUTS는 DER뿐 아니라 실제로 아웃으로 처리될 확률, 즉 (1- ( ROB/PA + BB/PA + HBP/PA ))를 나타낸 수치입니다.

그럼, 이제 이런 비율을 구체적인 예상 수치로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평균적인 투수진은 1시즌에 약 3355개의 아웃 카운트를 잡아냅니다. 이를 토대로 예상 수치를 구해 보면 ;

------------두산----------LG
PA--------6212--------6454
ROB------1209--------1386
BB---------532----------552
K-----------982--------1020
HR---------135----------140
OUTs-----3355---------3355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건, LG의 '예상' 투수진이 두산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삼진을 더 많이 잡아내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똑같은 수의 아웃 카운트를 채운다고 가정했기 때문에, 수비진이 해결해주지 못한 아웃 카운트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뿐입니다. 실제로 양팀의 삼진/전체타자 비율을 구해 보면 똑같은 수치가 나옵니다.


# 3

이제 Base Runs를 사용해 각 팀의 예상 실점을 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시즌 홈런을 제외한 안타의 평균 루타수는 1.21로 나타났습니다. 이를 계산해 사용했음을 일러두는 바입니다.

------------두산----------LG
PA--------6212--------6454
ROB------1209--------1386
BB---------532----------552
K-----------982--------1020
HR---------135----------140
OUTs-----3355---------3355
BaseRun---691---------811
R/G--------5.49---------6.43

두산의 R/G는 5.49, LG는 6.43이 나옵니다. 이건 무슨 뜻일까요? 평균적인 투수가 던진 공을 각 팀 수비진이 처리해야 했다면 두산은 경기당 5.49점을 실점했고, LG는 6.43점을 실점했다는 얘기입니다. 경기당 거의 1점 정도를 더 실점하는 셈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DER에는 이미 각팀 투수진의 역량 차이가 반영돼 있습니다. 따라서 이 결과를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곤란합니다. 하지만 양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연관 관계를 맺고 있는지 확인하기는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회적으로 양 팀의 FIP, 즉 순수한 투수진의 능력은 어느 정도 차이를 보였는지 알아보는 과정을 통해 간접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두산 투수진의 FIP는 4.16, LG는 4.59입니다. 불펜진만 따로 구해보면 두산은 3.50, LG는 4.00. 그 어느 수치도 1점 가량의 차이를 보이지는 않습니다. 근소한 차이입니다. LG에서는 투수진이 불안정하다는 사실 때문에 용병 2명을 모두 투수로 꾸려가려고 하는 모양인데, 이 자료에 의하면 이는 그리 현명한 선택이 아닙니다.

공격력은 어떨까요? LG가 두산에 비해 5점을 더 올렸습니다. (596 vs 601) 따라서 공격력에 의해 양 팀의 승차가 발생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문제는 수비입니다. 투수진의 문제도 아니고 수비력이 문제입니다. 수비력의 차이가 양팀의 순위를 갈라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5점의 방어율 차이는 투수진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수비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물입니다.

그런데도 LG 프런트는 검증된 투수와 솔리드한 수비수를 내주고, 하향세에 접어든 것처럼 보이는 우타 거포를 영입했습니다. 그리고 용병 2명을 모두 투수로 뽑겠다고 천명한 상태입니다. 이게 과연 옳은 선택일까요?

물론, 데이터는 많은 것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그리고 위에서도 몇 차례 언급했듯, 투수진이 처리하기 손쉬운 타구를 많이 허용할수록 팀의 수비력도 향상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 정도 수준의 투수를 두 명이나 구하는 게 쉬운 일일까요? 넓디 넓은 잠실 구장에서 홈런 타자의 존재가 얼마나 위협적일까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이번 LG의 선택, 개인적으로 의문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온갖 추측과 억측이 난무하는 글, 열심히 읽어주셔서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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