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지금까지 두 시간에 걸쳐 '맞혀 잡는' 투수는 어떤 유형이며, 투구 스타일이 투수들과 어떻게 다른지 알아봤다. 두번째 글에서는 '맞혀 잡는다'는 게 능력이 아닐 확률이 높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우리는 야구를 보기 시작한 이래 계속해서 맞혀 잡는 투수를 지켜봤다. 장호연의 1988 시즌 개막전 노히트 노런은 맞혀 잡는 투구의 백미로 손꼽힌다. 장호연은 커리어 내내 능글 맞은 투구로 타자들 타이밍을 절묘하게 빼앗곤 했다. 혹시 통계의 맹점 때문에 이런 개개인의 능력이 가려진 건 아닐까?

장호연은 1983시즌에 데뷔 1995시즌에 은퇴했다. 이 13시즌 가운데 10시즌이 D그룹이다. 조사 표본에 가운데 가장 D그룹에 많이 속한 선수가 장호연이고, 총 시즌 대비 D그룹  비율(76.9%)이 가장 높은 선수 역시 장호연이다. 장호연은 확실히 맞혀 잡는 투수라는 타이틀을 얻을 만한 자격이 있다.

장호연은 삼진을 못 잡아도 너무 못 잡는 투수였다. 장호연은 9이닝당 삼진 3.1개로 커리어를 마감했다. 이는 100승 이상을 거둔 투수 가운데 가장 낮은 기록이다. 탈삼진 능력이 부족해도 프로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장호연보다 잘 보여준 선수는 없다. 역시나 맞혀 잡는 '능력' 때문이었을까?

장호연이 활약한 13년 동안 리그 평균 범타 처리율(DER)은 .723이었다. 장호연의 기록은 .731이다. 그렇다. 장호연과 리그 평균은 8리 차이밖에 안 된다. 통념과는 달리 장호연은 범타 처리율에서 리그 평균보다 1% 뛰어난 활약을 보였을 뿐이다. 혹시 8리 혹은 1% 차이가 꽤 큰 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 보자. 타자들은 조사 표본에 포함된 투수 1079명을 상대해 평균 394개 타구를 페어 지역으로 날렸다(BIP). 이 가운데 72.3%가 아웃으로 처리됐으니 아웃카운트 약 284개를 빼앗은 셈이다.

장호연은 리그 평균에 비해 탈삼진 능력이 한참 못 미치는 투수였다. 그래서 그는 어떤 투수보다 많은 BIP를 허용했다. 실제로 한 시즌을 기준으로 장호연은 다른 선수들보다 탈삼진이 60개 정도 적었고 이는 고스란히 BIP로 연결됐다. 장호연의 연평균 BIP는 약 454개였다.

이 454개 가운데 73.1%를 아웃으로 처리했다면 장호연은 대략 332개를 범타로 처리한 게 된다. 장호연은 리그 평균보다 맞혀 잡는 투구로 아웃카운트 약 48개를 더 빼앗은 셈이다. 1%의 차이는 확실히 생각보다 컸다.

여기서 장호연이 탈삼진 능력이 떨어져 아웃카운트 60개를 손해 봤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범타 처리로 아웃카운트 48개를 얻어냈다고 해도 여전히 리그 평균보다 아웃카운트 12개가 모자란다. 혹시 이 12개 차이가 장호연을 어느 정도 '준수한' 투수로는 기억해도 '특급 투수'로는 기억하지 않는 이유는 아닐까?

기본적으로 투수들 사이의 범타 처리율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시즌 차이를 고려할 때 가장 뛰어난 범타 처리율을 기록한 투수는 1991 조규제였다. 이 시즌 조규제는 범타처리율 .806을 기록했다. 1991 시즌 리그 범타 처리율은 .713. 조규제가 리그 평균보다 13% 정도 높은 셈이다.

거꾸로 가장 낮은 범타 처리율을 기록한 선수는 1998 박지철(.609)이었다. 하지만 60%대를 겨우 넘긴 이 범타 처리율조차 리그 평균(.699)보다 13%낮았을 뿐이다. 그러니까 제 아무리 뛰어난 투수도 13% 이상 높은 기록을 올리기가 어렵고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삼진은 선수들 사이에 격차가 크다. 1988 선동열은 다른 투수들보다 3배 정도 뛰어난 탈삼진 비율을 기록했다. 거꾸로 1982 감사용은 리그 평균 3분의 1 수준이었다. 과연 어느 쪽을 투수의 '능력'이라 부르는 게 옳을까? 변별력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확실히 탈삼진 쪽이 나아 보인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어떤 투수들은 분명히 맞혀 잡는 투구로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그 기록을 다음 시즌에도 계속 유지할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성적이 좋아지고 나빠지는 것의 차이는 생각하는 것만큼 크지 않다. 설사 '맞혀 잡는' 것이 능력이라 하더라도 실제 승부에 미치는 영향력이 높지 않다는 뜻이다.

확실히 탈삼진 능력을 보유한 선수를 맞혀 잡는 투수가 따라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투수가 '닥터 K'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시라. 2005시즌 손민한은 전형적인 맞혀 잡는 피칭으로 리그 최고 선수 자리에 우뚝 섰으니 말이다.

다만 "야, 맞혀 잡아!"하는 소리를 외치기에 앞서, 과연 그것이 '삼진! 삼진!'을 외치는 것보다 비효율적이라는 사실 정도는 한번쯤 생각해 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댓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