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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이제 우리는 '맞혀 잡는' 투수가 탈삼진 능력을 갖춘 투수를 따라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우리는 일반적으로 선발 보다는 구원이, 구원보다는 마무리 투수의 탈삼진 능력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럼 LG의 마무리 우규민은 어떨까? 우규민은 이번 시즌 9이닝당 3.0개의 탈삼진밖에 잡지 못하고 있다. 리그 평균이 5.6개라는 점을 감안하면 확실히 우규민은 삼진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그런데도 세이브(28)는 삼성 오승환(34)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다. 그리고 사람들은 흔히 그 이유로 땅볼 유도를 손꼽는다. 그의 '맞혀 잡는' 능력이 우규민을 든든한 마무리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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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규민의 땅볼/뜬공 비율은 1.49로 리그 13위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 이 부분 1~2위는 우규민과 같은 사이드암 계열인 현대 조용훈(2.27)과 SK 정대현(1.96)의 차지다. 그러니까 변칙 투구 폼의 이점을 감안하자면, 우규민의 '땅볼 유도'는 그리 대단한 수준이 못 된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우규민이 '맞혀 잡는' 능력으로 훌륭한 투수가 되었다는 진술은 여전히 옳다. 78.7%의 범타 처리율은 리그에서 가장 높은 기록이다. 그 결과 상대 타자들은 우규민을 상대로 OPS .514밖에 때려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 또한 리그에서 가장 낮은 기록.

그런데 우규민의 범타 처리율과 LG 투수 전체의 범타 처리율을 관찰해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꾸준히 우규민은 팀 평균보다 10% 가량 높은 범타 처리율을 유지해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6월의 예외를 제외하자면, 팀 평균에 따라 우규민의 범타 처리율 역시 달라진다는 점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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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맞혀 잡는다'는 것이 물론 개인의 '능력'일 수 있지만, 그것이 팀 평균과 전혀 무관한 기록은 아니라는 뜻이다. 우규민처럼 압도적인 범타 처리율을 기록하고 있는 선수 역시 그렇다.

혹시 우규민의 기록이 팀 성적에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닐까? 그렇지만 우규민이 전체 이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우규민은 LG 전체 이닝의 겨우 6.9%를 책임졌을 뿐이다.

게다가 우규민처럼 '맞혀 잡기'에 의존하는 투수는 범타 처리율에 따라 평균 자책점 역시 큰 폭으로 변한다. 범타 처리율이 80%가 넘어갈 때 우규민은 거의 완벽한 투수지만, 70%만 되고 우규민은 불안한 모습을 드러낸다. 삼진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투수가 그렇지만, 우규민에게 수비수의 도움은 더욱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LG의 팀 평균 범타 처리율(68.6%)은 리그에서 가장 낮다. 만약 우규민이 다른 팀에서 뛰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대단한 성적을 올렸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이번 시즌 3점차 이내로 LG가 승리를 거둔 경우는 32번밖에 되지 않는다. 이 가운데 우규민이 마무리를 지은 비율은 무려 87.5%. 만약 LG에 든든한 셋업맨이 한 명만 있었다면, 우규민에게 걸린 부하가 확실히 줄어들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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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즌 우규민은 삼진 능력 없이도 수준급 마무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 원동력이 뛰어난 '범타 처리율'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확실히 이번 시즌 우규민은 '맞혀 잡는' 능력으로 팀의 승리를 지켜냈다.

그렇지만 탈삼진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장 긴박한 위기에서 우규민은 어쩐지 불안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리그에서 가장 많은 블론 세이브(9개)를 기록한 것이 그 방증. 앞으로 우규민이 성공적인 마무리 투수가 되려면 탈삼진 능력을 길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탈삼진 능력이란 어느 날 갑자기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이번 시즌 '범타 처리율'이 뛰어났다고 해서 내년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에 관해서는 이미 지난 시간에 알아본 바 있다.) 특히 우규민에게 계속 집중적인 부하가 걸리는 시스템이라면 더더욱 불안할 수밖에 없다.

결국 LG는 그 어느 팀보다 절실하게 확실한 "셋업맨"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그것도 탈삼진 능력을 갖춘 투수 말이다. 그것이 우규민도 살리고, LG도 사는 법이다. 과연 어떤 선수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물론 아직 이번 시즌이 끝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LG가 내년에 더욱 강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 숙제를 해결하는 일이 중요해 보인다. 양상문, 김용수 코치의 어깨가 무거운 겨울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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