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현대는 6일 현재 304득점으로 리그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팀 전체 타격이 타율.269/출루율.348/장타율.385을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타격의 모든 영역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는 모양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늘 현재까지 기록된 497개의 잔루 역시 리그에서 가장 많은 기록이다. 득점에서 2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삼성의 잔루가 435개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현대가 득점을 올리는 과정에서 뭔가 모자라는 점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꼭 이 하나가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지난 해 MVP급 활약을 보여준 서튼의 부진 역시 책임을 면치 못하리라는 점은 거의 확실하다.


비록 시즌 막판의 하향세로 타율 .300에는 실패했지만 지난 해 서튼은 리그에서 뛴 타자 가운데 최고라도 해도 과언이 아닌 성적을 올렸다. GPA .333은 리그에서 가장 높은 기록이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세이버메트릭스 기록에서 서튼이 1위가 아닌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통적인 기록을 알아봐도 35개의 홈런과 102타점 모두 리그에서 가장 높은 수치였다. 그래서 이번 시즌에 거는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서튼은 겨우내 세인트루이스의 거포 앨버트 푸홀스와 함께 이번 시즌을 준비했다. 그리고 개막 두번째 경기에서부터 홈런을 터뜨리며 홈런왕 2연패를 위한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이후 몇 게임 동안 잘 맞은 타구가 야수 정면을 향하는 불운이 이어졌다. 그리고는 부진에 빠졌고, 급기야 부상까지 겹쳤다. 한 차례 2군행 이후 다시 제 컨디션을 찾는 듯 했지만 감기 몸살 이후 다시 컨디션 난조가 찾아왔다. 그렇게 이번 시즌 현재까지 서튼은 겨우 168 타석에만 들어섰을 뿐이다. 그리고 성적 역시 너무도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지난 시즌 서튼은 장타와 볼넷 그리고 삼진까지 많은 유형의 타자였다. 그러면서도 지난해 BABIP .309의 컨택을 보여줬다. 언제든 힘으로 윽박지르기만 하는 유형의 타자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번 시즌 현재까지 BABIP는 .255밖에 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컨택이 되지 않으니 다른 비율 스탯 역시 좋아질 수가 없다는 뜻이다. 사실 이번 시즌의 IsoD는 .125로 지난 시즌에 비해 6포인트 정도 향상됐다. 하지만 IsoP에 있어서는 25.7%나 감소했다. 선구안은 여전하지만 스윙 매커니즘 자체에 구멍이 생겼다는 뜻이다.


사실 서튼은 빅 리그에서도 유명한 대타 요원 가운데 하나였다. 게다가 AAA에서 타격왕을 차지할 정도로 정교한 타격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게다가 국내 리그에서도 실력을 검증 받았다. 하지만 성실한 서튼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스윙 폼에 손을 댔다. 그림에서 보듯이 뒤쪽 팔꿈치를 위로 들어올린 것이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V자 모양이던 앞쪽 팔꿈치 역시 완만하게 펴지게 됐다. 지난 해 바깥쪽 낮은 코스에서 드러나던 약점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실패로 끝이 났다.

어린 타자들에게 뒤쪽 팔꿈치를 올리라는 주문을 하는 건 사실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의 타격 전문가들조차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보통 수준의 타자들에게 이를 주문하는 건 오히려 타자에게 부적절한 충고를 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해 정확도에서는 손해를 보더라도 파워를 늘리는 수단이라는 의견 역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따라서 이미 컨택 능력이 완성된 타자가 파워를 늘리기 위해서는 뒤쪽 팔꿈치를 올리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는 의미도 된다.

뒤쪽 팔꿈치를 올릴 경우엔 하체의 움직임이 시작된 이후에도 방망이를 쥔 손이 어깨 뒤에 한 동안 고정돼야 한다. 타자의 상체 회전이 시작되기 전에 방망이 머리 부분에 먼저 가속력이 전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통해 응축됐던 에너지가 최소한의 손실로 타구에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투창 선수가 창을 던지기 전에 힘을 모으는 것과 마찬가지 과정을 거친다는 뜻이다.

푸홀스처럼 젊고 근력이 있는 타자에게 이런 과정은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튼은 '70년생 노장이다. 푸홀스보다 10살이나 많은 나이다. 따라서 이런 과정은 오히려 그의 배트 스피드를 느리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그 결과 만들어 내는 타구의 질 자체가 변화를 겪게 됐다. 지난해에는 전체 타구의 36% 가량만이 땅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43%가 땅볼이다. 장타가 줄어든 것 역시 당연한 이치다.

두 번의 엔트리 제외 이후 1군 무대에 복귀한 6월 27일부터 오늘 현재까지의 타격 기록 역시 .125/.192/.417로 안정적이라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안타 세 개가 2루타 하나와 홈런이라는 것은 고무적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땅볼보다 플라이 타구가, 플라이타구보다는 라인드라이브성 타구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 역시 희망적이라 할 수 있다. 김용달 타격 코치와 함께 새로 익힌 타격 폼의 문제점을 개선한 효과라고 하겠다.

지난 5월 현대가 한창 잘 나갈 때에도 서튼은 1군 엔트리에 등록돼 있지 않았다. 서튼은 당시에 주변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표현했었다. 자신의 존재가 팀에 별 필요 없어 혹시나 퇴출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아무리 지난 시즌 홈런왕이라 해도 외국인 선수는 외국인 선수기 때문이다. 게다가 브룸바 역시 일본 리그에서의 부진으로 국내 복귀의 가능성이 열려 있어 더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이 더 서튼에게는 중요한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치열한 중위권 싸움이 한창인 이때 지금처럼 계속 많은 잔루가 기록된다면 현대는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지금 해결사가 절실하다. 서튼이 '친절한' 해결사로 거듭날 수 있을것인가? 그 결과에 따라 팀과 그의 운명도 함께 결정나게 될 것이다.


댓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