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How Sweep It Is!!!


비록 게임 차이가 좀 많이 나기는 했지만, 1~2위 간의 맞대결에서 '싹쓸이' 승리를 거두는 건 확실히 유쾌함 그 자체다. 특히 3위 한화와의 원정 시리즈에서 2승 1패를 기록하고도 상대 전적에서 절대적 우위를 보였던 KIA와 1승 1패밖에 거두고 돌아오지 못한 이후라면 더더욱 그렇다. 여전히 1.5 경기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2위 수성이라는 목표에 확실히 한걸음 더 다가선 시리즈가 됐기 때문이다.


■ 화요일 - 삼성 5 vs 현대 6



1차전은 '소금 같은 남자' 강병식의 독무대였다. 현대 선발 김수경은 1회부터 상대 타선에 집중타를 얻어맞으며 2점이나 실점했다. 곧바로 송지만의 선두 타자 홈런이 터졌지만, 삼성 타선 역시 곧바로 한점 더 달아났다. 2회에도 2사 이후 홍원기의 홈런이 터지며 3 : 2까지 따라갔지만, 3회초 송지만의 실책이 빌미가 되어 2점을 더 헌납했고, 점수는 3점 차이로 벌어져 있었다. 여기에는 빈 베이스에 공을 던져 헌납한, 주지 않아도 될 한 점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김재박 감독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무사 1/2루 찬스에서 이택근에게 희생번트를 지시한 것이다. 비록 3점 뒤진 상황이었지만, 그 뒤까지 계산에 넣은 것이다. 그리고 이 작전은 보기 좋게 맞아 떨어졌다. 서튼과 정성훈이 각각 희생 플라이와 중전 안타를 터뜨리며 2명의 주자를 모두 홈으로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만약 송지만의 실책이 없었다면 동점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3회초 수비가 더더욱 아쉬웠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은 영웅의 등장을 알리는 서막에 지나지 않았다. 6회말 공격 이숭용이 무사에 안타를 치고 나가자, 김재박 감독은 홍원기에게 희생번트를 지시했다. 파울 라인을 타고 흐르던 타구는 끝끝내 페어 지역에 멈춰 섰고 순식간에 주자 1/2루의 기회가 찾아왔다. 김동수에게는 다시 희생번트 사인, 그리고 대타 강병식의 등장이었다. 결국 강병식은 박한이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때려내며 3루 주자 이숭용을 홈으로 불러들여 경기를 동점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홍원기는 홈에서 아웃되며 아웃 카운트는 2개로 늘어났고, 현대는 더 이상의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다시 그 한점이 아쉬웠다.

보통 김재박 감독은 이 상황에서 강병식을 대주자로 교체하는 수순을 밟고는 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강병식 대신 정수성을 빼고 유격수를 차화준으로 교체했다. 다시 한번 돌아올 타석에서 뭔가 한방을 보여달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이후 경기는 소강상태가 계속됐다. 현대에서는 황두성-송신영이 상대 타선을 효율적으로 틀어막은 데 이어 박준수가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고, 삼성 역시 권혁-권오준으로 이어지는 쌍권총을 가동하며 승기를 잡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경기는 드디어 마지막 9회말로 접어들게 됐다.

기회는 영웅을 낳는다. 이 경기의 영웅, 강병식은 모든 걸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했다. 2-2 상황에서 몸쪽으로 떨어지는 싱커를 받아쳐 그대로 담장 밖으로 날려 버린 것이다. 끝내기 홈런이었다. 날아가는 순간 파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멋지게 날아가며 승부는 그대로 끝이었다. 자신을 믿고 한 타석 더 기회를 준 김재박 감독에게 멋지게 보답하는 장면이었다. 경기 주도권을 되찾아 오기 위한 김 감독의 용병술이 빛을 발하는 가운데, 화룡점정을 달성하는 듯한 홈런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3연전 싹쓸이를 알리는 축포가 되기도 한 홈런이었다.


■ 수요일 - 삼성 0  vs 현대 5



결과적으로는 5.2이닝 동안 무실점을 기록하며 승리 투수가 됐지만, 장원삼의 투구 내용 자체가 썩 뛰어났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번 글에서 지적한 대로 머리가 한쪽으로 기울며 어깨가 빨리 열리는 문제점이 노출됐기 때문이다. 덕분에 몇 이닝 던지지 못하고도 공을 117개나 던져야 했다. 제구력이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삼성 타자들이 서둘렀고, 이는 8개의 삼진으로 이어졌다.

5회 조동찬의 타석이 대표적인 사례다. 풀카운트 이후 장원삼은 거의 명백한 볼을 연거푸 던졌다. 조동찬에게 조금만 침착함이 있었다면 볼넷으로 걸어나가 양준혁에게 찬스를 이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동찬은 볼을 커트해 내기에 급급했고, 결국 삼진으로 물러나고야 말았다. 그리고 곧바로 5회말 현대 공격에서 승부에 쐐기를 박는 2점이 더 나왔으니 이 지점이 삼성으로서는 아쉬운 순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장원삼이 잘 던졌다기보다 삼성 타자들이 말렸다고 봐야 좋은 경기였다.

공격에서는 다시 한번 김재박 감독의 탁월한 용병술이 빛났다. 이미 석점을 앞서 가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을 상대로 강한 면모를 보이는 정성훈에게 스퀴즈 사인을 낸 것이다. 삼성 배터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이택근은 한번에 홈으로 쇄도하지 못했다. 하지만 전병호는 1루에 볼을 던지는 데 급급했고, 결국 스퀴즈 작전은 성공으로 결론이 났다. 그만큼 상대를 흔드는 탁월한 작전을 선보인 것이다.

서튼이 2루타 2개를 때려낸 것 역시 주목할 만한 점이다. 극도의 타격 슬럼프에서 벗어나는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여전히 현대는 너무도 많은 잔루를 기록하는 팀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연 클린업 타자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서튼의 2루타가 득점으로 연결되는 발판이 됐다는 점에서 타격감을 조율한 건 확실히 바람직한 모습이었다. 이런 상승세는 바로 시리즈의 마지막 경기까지 이어졌다.


■ 목요일 - 삼성 2  vs 현대 5



송지만은 또 한번 선두 타자 홈런을 터뜨리며 자신이 1번 자리에 제격이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바로 이어서 상대의 수비 실책을 틈타 전준호가 2루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고, 이택근이 때린 타구는 진루타로 이어졌다. 1사 3루에 타석에는 어제 2루타 2개를 터뜨린 서튼이 들어섰다. 2연패를 당하고 있는 삼성에선 확실히 조급한 타이밍이다. 서튼은 이에 굴하지 않고 멋진 스윙으로 홈런을 때려내며 점수를 3점 차이로 벌렸다.

하지만 삼성은 아직까지 단 한번도 시리즈 전패를 당한 적이 없는 팀이었다. 2회 위기를 잘 막은 뒤, 3회에만 캘러웨이에게 35개의 공을 던지게 하는 가운데 2점을 뽑아내며 다시 승부를 턱밑까지 끌고 온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딱 거기까지였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찬스가 찾아왔지만, 모두가 병살로 연결되며 흐름이 끊겨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삼성 관점에선 특히 5회 공격이 아쉬울 것이다. 삼진이 되어야 할 투구가 낫아웃이 되며 선두 타자 진루에 성공한 삼성, 곧바로 박한이의 2루타가 터지며 무사 2/3루의 아주 좋은 득점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조동찬이 때린 타구가 정성훈의 글러브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3루 주자 김창희가 아웃되고야 말았다. 그러나 정성훈의 욕심이 결국 실책으로 연결되며 삼성의 찬스는 1사 1/3루로 이어졌고, 타석에는 양준혁이 들어섰다.

그러나 여기서 양준혁은 병살로 물러나는 아쉬운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사실 이 한 타석만 제외하자면 오늘 양준혁은 5타수 3안타를 터뜨린 괜찮은 컨디션이었다. 안타 가운데는 정확히 라인드라이브로 때려낸 2루타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 유격수 앞으로 굴러가는 땅볼 타구를 때려내고 말았고, 삼성 쪽으로 기울 뻔했던 승부는 완전히 다시 현대 쪽으로 기울고 말았다. 팀 내 간판타자로서 정말 아쉬운 모습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양준혁의 2루타 터진 8회초 삼성 공격은 어떤 의미에서 전날 장원삼에게 말렸던 패턴의 재탕이었다. 비록 7회 패스트볼과 이숭용의 적시타로 3점을 앞선 현대였지만, 좌완 이현승이 양준혁에게 2루타를 허용하며 물러났고 송신영은 연거푸 변화구가 손에서 빠지며 무사 만루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김재박 감독은 어쩔 수 없이 전날 공을 39개나 던진 신철인을 마운드에 올렸다.

물론 바뀐 투수의 초구를 노리라는 건 통계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진술이다. 하지만 박진만은 초구를 건드려 힘없이 내야 플라이로 물러나고야 말았다. 그리고 두 타자는 자기 스윙을 제대로 가져가지 못한 채 그대로 두 개의 삼진 아웃으로 이어졌다. 김종훈은 아예 제대로 된 스윙을 하지 못한 채 당했고, 박종호의 스윙 역시 신철인의 구위를 이겨내지 못했다. 삼성 선수들의 얼굴엔 패배의 불안감이 가득했다.


  • 이번 시리즈를 정리하자면, 한마디로 김재박 감독이 자신의 용병술로 이뤄낸 완벽한 승리였다고 부를 만하다. 1차전에서는 효율적인 번트 작전과 강병식의 기용 형태, 2차전에서는 정성훈의 스퀴즈, 그리고 3차전에서는 신철인의 투입이 바로 그 작전이었다. 비록 전혀 패착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미리 대안을 준비해 두고 있었기에 결과적으로 3 게임 모두 승리를 챙길 수 있었다고 본다.

    이제 삼성과는 5경기 차이로 줄어들었고, 상대 전적에서도 9승 6패로 앞서 나가게 됐다. 물론 겨우 23경기 남은 상황에서 이 정도 경기 차를 뒤집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확실히 상대 선동열 감독에게 골칫거리를 안겼다는 점이 이번 시리즈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수확이었다고 생각한다. 용병술의 차이가 결국 그대로 승패와 직결됐기 때문이다.

    영리한 선동열 감독은 분명 남은 3차례 맞대결을 통해 다시금 지략 싸움을 걸어올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경기의 승패에 따라 포스트 시즌 역시 재미있는 국면을 맞이할 확률이 높다. 이제 가을이 깊어가고, 야구는 더더욱 재미있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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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런을 날린 래리 서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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