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오라클 오픈월드 2012'에서 연설 중인 제리 웨스트. 샌프란시스코=블룸버그

'미국프로농구(NBA) 로고 모델은 누구일까.'

 

정답이 아니라면 정답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 '더 로고' 제리 웨스트입니다.

 

한국 골프 팬들에게는 미셸 위(35) 시아버지로도 유명한 웨스트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86세.

 

LA 클리퍼스 구단은 웨스트가 아내 곁에서 평온하게 숨을 거뒀다고 12일(이하 현지시간) 전했습니다.

 

 

옛날식 표현으로 민완(敏腕) 가드였던 웨스트는 1960~1961시즌 신인 드래프트 때 미니애폴리스(현 LA) 레이커스에서 전체 2순위 지명을 받아 NBA 선수가 됐습니다.

 

그리고 1973~1974시즌을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벗을 때까지 레이커스에서만 뛰었습니다.

 

은퇴 후에는 1976~1979년 레이커스 감독을 맡았고 이후 같은 팀 프런트 오피스에서 일하며 부사장까지 지냈습니다.

 

그런데 지역 라이벌 팀 클러퍼스에서 부고를 전한 건 웨스트가 구단 고문을 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프로농구(NBA) 데뷔 시즌 세인트루이스(현 애틀랜타)를 상대로 경기 중인 제리 웨스트(오른쪽).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홈페이지

웨스트는 NBA에서 열네 시즌을 뛰는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올스타전에 출전했고 파이널 무대는 아홉 번 밟았습니다.

 

단,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 건 1971~1972시즌 한 번밖에 없습니다.

 

빌 러셀(1934~2022)이 버틴 보스턴을 넘어서지 못한 게 제일 큰 이유였습니다.

 

웨스트는 1961~1962시즌부터 파이널에서 보스턴에만 내리 여섯 번을 패했습니다.

 

 

웨스트는 러셀이 '라스트 댄스'를 마친 1969~1970시즌 뉴욕을 상대로 개인 첫 챔피언 반지 획득을 노렸지만 결과는 이번에도 준우승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웨스트가 이 시즌부터 시상하기 시작한 파이널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다는 것.

 

웨스트는 당시 파이널 7경기에서 평균 31.1점, 7.7도움, 3.4리바운드를 기록했습니다.

 

준우승 팀에서 파이널 MVP가 나온 건 웨스트가 당연히 처음이었고 그 뒤로도 이런 기록을 남긴 선수는 없습니다.

 

속공을 이끌고 있는 제리 웨스트.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 홈페이지

웨스트는 플레이오프 통산 153경기에서 당시 NBA 역대 1위(현재 5위)에 해당하는 평균 29.1점을 남긴 뒤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웨스트보다 플레이오프 평균 득점이 많은 선수는 모두 3점슛 도입(1979~1980시즌) 이후 NBA에 데뷔했습니다.

 

웨스트는 또 정규시즌(27.0점)보다 포스트시즌에 득점력이 올라가는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NBA 팬들이 웨스트에게 '미스터 클러치'라는 별명을 붙여준 이유입니다.

 

LA 레이커스 감독 시절 제리 웨스트와 나중에 팀 감독이 되는 팻 라일리 당시 코치.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 홈페이지

웨스트 이야기에 빠질 수 없는 또 한 가지 별명은 '쇼 타임 레이커스 설계자'입니다.

 

1976년 레이커스 사령탑에 그는 카림 압둘자바(77)를 중심으로 팀을 재편하는 데 공을 들입니다.

 

이후 스카우트와 단장으로 변신해 어빙 '매직' 존슨(65), 마이클 쿠퍼(68), 제임스 워디(63), 바이런 스콧(63), A C 그린(61) 등으로 팀을 꾸렸습니다.

 

고전 명작 게임 '레이커스 대 셀틱스' 게임에 등장하는 바로 그 팀입니다.

 

LA 레이커스 부사장으로 고졸 신인 코비 브라이언트(왼쪽)를 발굴하고 자유계약선수(FA) 샤킬 오닐을 영입한 제리 웨스트. 미국프로농구(NBA) 홈페이지

코비 브라이언트(1978~2020)를 발굴하고 샤킬 오닐(52)을 영입한 것도 웨스트였습니다.

 

1996~1997시즌을 앞두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오닐과 계약하면서 "너와 그 꼬마(브라이언트)가 같이 챔피언 반지를 끼우게 될 거야"라고 말했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

 

이때 브라이언트는 아직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도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웨스트가 큰소리쳤던 것처럼 두 선수는 1999~2000시즌부터 세 시즌 연속으로 NBA 정상을 밟았습니다.

 

2015~2016 파이널을 앞두고 스테픈 커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제리 웨스트. 미국프로농구(NBA) 홈페이지

1999~2000시즌을 마지막으로 웨스트는 레이커스를 떠나 밴쿠버에서 멤피스로 연고지를 옮긴 그리즐리스 단장 자리에 앉습니다.

 

멤피스에서 그가 키운 대표적인 선수로는 '스페인의 샛별' 파우 가솔(44)을 꼽을 수 있습니다.

 

2007년 멤피스 단장 자리를 내놓은 웨스트는 2011년 골든스테이트 이사회에 합류합니다.

 

그가 합류한 뒤 골든스테이트는 스테픈 커리(36)와 함께 '왕조'를 열었습니다.

 

제리 웨스트 별세 소식을 전한 미국 농구 명예의 전당 소셜미디어 포스트

요컨대 선수뿐 아니라 프런트 오피스로서도 문자 그대로 화려한 업적을 남겼던 것.

 

웨스트는 1980년에는 개인, 2010년에는 1960 로마 올림픽 금메달 멤버 자격으로 미국 농구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그리고 올해도 공로자(contributor)로 명예의 전당에 한 번 더 헌액될 예정이었습니다.

 

미국 농구 명예의 전당에 세 번 이름을 올린 것도 웨스트가 처음입니다.

 

드리블 중인 제리 웨스트(오른쪽)와 미국프로농구(NBA) 로고.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 홈페이지

아, 1969년 로고 도입 이후 NBA 사무국에서 웨스트가 모델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다만 이 로고를 디자인한 앨런 시겔(86)은 2010년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 인터뷰를 통해 '웨스트가 맞다'고 인정했습니다.

 

애덤 실버 NBA 커미셔너도 "개인적으로는 (웨스트가 모델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가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하지만 웨스트는 생전에 '더 로고'라고 불리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웨스트는 로고에 한 개인을 뛰어넘은 의미가 담기기를 바랐다"고 덧붙였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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