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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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이치로는 기존 야구관과 세이버메트릭스 관점이 충돌하는 타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OPS라는 관점에서 보면 확실히 그렇다. 그는 안타 이외 수단으로는 거의 출루하지 못하고, 파워 역시 아주 뛰어난 편이라고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통산 OPS+는 121밖에 되지 않는다. 리그와 구장을 감안했을 때 평균적인 타자에 비해 21% 뛰어난 수준이라는 얘기. 명성에 비해서는 확실히 부족한 수치다.

이치로는 해마다 안타를 200개 이상 때려냈다. 타율도 언제나 3할이 넘었다. 빅 리그 통산 도루도 어느덧 200개가 넘고, 성공률도 78%가 넘어간다. 정확한 포구와 레이저빔 송구는 빅 리그 전체를 통틀어 최고 수준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5툴에서 파워만 다소 부족할 뿐이다. 그런데도 OPS는 왜 이렇게 이치로의 손을 뿌리치기만 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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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즌 역시 이치로는 OPS .877에 머물러 있다. 수준급이라 말하기 힘든 기록이다. 여전히 볼넷과는 거리가 먼 데다 타격 스타일 역시 완전한 '똑딱이'로 회귀한 상태기 때문에 OPS로 볼 때 좋은 점수를 받기가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구장 효과를 반영하면 좀 얘기는 달라진다. 출루율에 더 높은 가중치를 두는 GPA를 알아봐도 그렇다. 그는 현재까지 GPA .316으로 AL 9위를 달리고 있다. 한 선수가 창출해낸 득점을 보여주는 RC는 58로 공동 3위다. 세이버메트릭스라고 해서 무조건 이치로의 반대편에 서기만 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같은 포지션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에 비해 한 선수가 가진 가치를 보여주는 VORP(Value Over Replacement Player)를 봐도 31.5로 빅 리그 우익수 가운데 가장 높은 기록이고 AL 전체 선수 가운데서는 6위에 자리 잡고 있다. 단일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을 세웠던 '04 시즌에도 AL 전체 우익수 가운데 2위인 68.7이었다. 그의 앞에는 MVP 수상에 빛나는 블라디미르 게레로(77.4)가 있었을 뿐이다. 전체 선수 성적에서도 게레로가 1위, 이치로가 2위였다. OPS를 비교하자면 이치로(.869)는 게레로(.989)에게 상대가 되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포함돼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항이 분명히 시사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어떤 타자가 생산적이냐 그렇지 않느냐를 단순히 OPS나 그 변종인 GPA만으로 측정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이들 지표에는 도루가 전혀 포함돼 있지 않다. 물론 세이버메트릭스에서 도루는 득점에 큰 도움이 되는 기록으로 평가 받지는 못한다. 하지만 분명 빠른 발은 이치로의 주무기 가운데 하나다. 게다가 단타 또는 내야 안타의 효용 또한 이치로 앞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변해 버리고 만다. 그것이 바로 이치로가 빅 리그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까닭이다.

OPS나 GPA가 실제 득점을 얼마나 잘 반영하는지는 이미 수학적으로 여러 차례 증명이 된 상태다. 하지만 모든 규칙엔 예외가 있는 법. 세이버메트릭스가 통계학에 근거하고 있는 한 결국 통계학의 위대함과 동시에 통계학의 모순적인 요소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 그 불쑥 튀어나온 예외가 어쩌면 이치로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이치로는 평가하기가 꽤나 어려운 타자인 것이다.

같은 세이버메트릭스 지표임에도 OPS와 VORP는 이치로에 대해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린다. 어느 것을 믿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럴 때 해결책은 간단하다. 잠시 숫자가 가득 찬 컴퓨터 프로그램을 닫고 이치로의 플레이를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다. 아니, 이치로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괜찮다. 결국 야구를 이해하기 위해 숫자를 보는 것이지, 숫자 자체가 야구의 표상인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래서 공자 선생님도 말씀하셨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것만 못하다. 결국 야구를 즐기는 자가 진짜 야구팬이다. 이제는 야구를 즐길 시간이다. 경기장 또는 TV에서 우리가 즐긴 이치로가 어쩌면 진짜 이치로인지도 모르겠다. 그게 바로 살아 있는 야구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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