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신이 노리지 않는 공이라면 스트라이크라고 해도 건드리지 않는 타자였다. 그런 공은 단지 '커트'해내며 다음 공을 다시 기다릴 뿐이었다. 그것은 훗날 '투스트라이크 이후에 장효조가 건드리지 않는 공은 볼'이라는 말을 만들어냈고…
-김은식 '억세게도 상복 없는 '타격의 달인', 오마이뉴스
김은식 씨가 장효조를 찬양한 저 문구를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타자들이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건드리지 않는 공은 십중팔구 '볼'이다.
이번 시즌 타자들은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볼을 1만5885 개 흘려 보냈고 이 가운데 89.1%(1만4151 개)가 볼이었다.
장효조는 물론 선구안이라면 둘째 가기 서러운 타자지만, 저 표현만으로 설명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두산 유재웅이 대표적인 케이스.
유재웅이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기다린 공 가운데 97.4%가 볼이었다. 하지만 유재웅은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47번이나 헛스윙으로 물러났다.
유재웅은 '선구안'이 뛰어난 타자일지는 몰라도 '참을성'이라는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는 뜻이다.
같은 팀 이성렬은 반대다.
이성렬은 투 스크라이크로 몰린 이후에도 타석당 평균 1.1개를 그냥 흘려보냈다.
덕분에 스탠딩 삼진을 23개나 당했다.
야구팬들은 곧잘 '참을성'과 '선구안'을 동의어로 처리하지만 실상은 다른 것이다.
한 프로팀 타격코치는 "선구안이 볼, 스트라이크를 구분하는 능력이라면 참을성은 상황에 맞는 공을 골라내는 능력"이라며 "상황에 따라 볼을 칠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 참을성"이라고 말했다.
주자가 필요하면 볼을 골라 걸어 나가고, 주자를 불러들어야 할 때는 입맛에 맞는 공을 골라 치는 것이 참을성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본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이성열은 그저 굼뜬 타자일 뿐이다.
그렇다면 가장 참을성이 뛰어난 타자는 누구일까?
많은 분들이 예상하는 것처럼 두산 김현수다.
김현수는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도 많은 공(1.06개)을 기다리고 그 중 볼 비율(94%)이 높으며, 투 스트라이크 이후 타격 성적도 좋다.
김현수는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도 출루율이 4할2푼9리나 된다.
전체 타격 라인은 .282/.429/.372로 GPA(.286)를 기준으로 할 때 박재홍(.291)에 이어 2위다.
김현수가 타격 1위에 오른 비결은 바로 치기 좋은 공을 끝까지 기다리는 참을성과 뛰어난 선구안이었던 것이다.
미키 코크레인(Mickey Cochrane)은 1993년에 쓴 'Fan's Game'에 다음과 같이 썼다.
"투수에게는 누구나 승부구가 있다. 그걸 던지게 놔둬라. 그게 세 번째 스트라이크가 아니라면 흘려보내라. 두 번째 스트라이크도 그냥 지켜봐라. 그래야 치고 싶은 공이 온다. (중략) 평범한 선수는 그럴 듯한 공이 오면 방망이를 휘두르기 바쁘다. 하지만 치고 싶은 공을 기다리는 참을성과 자신감 없이는 대단한 타자가 될 수 없다."
김현수는 대단한 타자가 될 자질을 갖춘 우리 시대의 장효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