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의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프랭크 토마스의 팀이었다. 1998년의 앨버트 벨을 제외하면 1991년부터 2000년까지 프랭크 토마스는 언제나 팀 내에서 가장 높은 OPS를 기록하는 타자였다. 아니, 1990년대 AL 최고의 좌타자가 시애틀의 켄 그리피 주니어였다면 우타자는 단연 토마스의 차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이 10년 동안 그가 100타점을 넘기지 못한 건 1999년이 유일했다. 이 시즌 토마스는 부상으로 135 게임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는 '빅 허트(Big Hurt)'로 불리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때의 일이다.
2000년대가 시작되자 토마스의 후계자로 불릴 만한 선수가 팀에 등장했다. 매글리오 오도네스가 그 주인공. 1999년 30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거포 자질을 인정받은 오도네스는 토마스가 부상으로 결장한 2001년 팀 내에서 가장 많은 113타점을 기록하며 '샤이삭스(Chisox)'의 차세대 리더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그의 성장은 멈추지 않았다. 2002년에는 135명의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이며, 알렉스 로드리게스(142 타점)에 이어 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은 타점을 기록한 것이다. 바야흐로 시카고에 오도네스의 시대가 개막되는 순간이었다. 누가 뭐래도 이제 시카고 남부 최고의 스타는 오도네스였다.
그러나 오도네스 역시 부상의 악령을 피하지 못했다. 2003년 99타점에 그치며 아쉽게 5년 연속 100타점 달성에 실패해서였을까? 2004년 5월 19일, 클리블랜드 원정 경기에서 수비 도중 팀 동료 윌리 해리스와 충돌했고 결국 두 번이나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소위 'FA 대박'을 노릴 수 있던 시즌에 너무도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것이다.
때마침 화이트삭스에 새로 부임한 아지 스미스 감독마저 분위기 쇄신을 노리고 있었다. 이 와중에 오도네스는 고비용 저비율의 선수로 분류돼 버렸다. 결국 오도네스는 시카고와의 재계약에 실패했고, FA 시장에 나왔지만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역시나 부상 전력 때문이었다.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2005년 2월초가 되어서야 오도네스는 비로소 디트로이트에 새둥지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주변의 차가운 시선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모두들 타이거즈의 선택을 비웃는 듯한 분위기였다. 언제 또 부상자 명단에 오를지 모르는 선수에게 5년간 7500만 달러나 안겨줬으니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디트로이트 구단 역시 안전 조치를 마련한 후였다. 만약 또 한번 같은 부상이 재발해 25일 이상 부상자 명단에 오르게 되면 300만 달러에 계약을 바이 아웃 할 수 있다는 조항을 계약에 포함했던 것이다. 그렇게 타이거즈와 오도네스의 불안정한 동거가 시작됐다.
화이트삭스가 오도네스와의 계약을 거부한 건 프랭크 토마스 때문이었다. 2001년 부상으로 20 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한 토마스였지만 시카고 구단은 그와의 계약 연장에 동의했다. 성적 부진에 따른 마이너스 옵션이 포함된 계약이었지만 토마스는 '02~'03 두 시즌 동안 70개의 홈런에 197 타점을 때려내며 자신의 건재를 입증했다.
그러나 다시 부상이 재발했고, 나머지 두 시즌 동안 435 타석에 들어서는 데 만족해야 했다. 따라서 화이트 삭스 구단은 굳이 또 한번 모험을 감행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오도네스와 재계약하지 않은 것은 물론, 팀은 지난해 월드시리즈 우승 직후 350만 달러의 바이 아웃을 사용하며 토마스와 결별 수순을 밟았다.
그리고 올해 두 선수는 각각 다른 팀에서 소속팀을 대표하는 강타자로 자기 몫을 톡톡히 해냈다. 비록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프랭크 토마스는 가장 강력한 '올해의 재기상(Comeback Player of the Year)' 후보 가운데 한명으로 언급됐다. 소속팀 오클랜드 역시 AL 서부 지구 1위를 차지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매글리오 오도네스 역시 비록 홈런은 24개에 그쳤지만, 4년 만에 100타점 이상을 기록하며 자신의 재기를 세상에 알렸다. 디트로이트가 올해 AL에서 가장 어메이징한 팀이었다는 건 두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반면 이 둘을 팽(烹)한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미네소타에 밀려 와일드 카드 획득에 실패하고 말았다.
올해 플레이오프에서 먼저 자신의 분노를 터트린 측은 프랭크 토마스였다.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서 요한 산타나를 무너뜨리는 선제 홈런을 날린 것은 물론 시리즈 동안 타율 .500을 기록하며 미네소타를 완승으로 꺾는 데 지대한 공헌을 세웠다. 하지만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13타수 무안타에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반면 오도네스는 디비전 시리즈에서 타율 .267의 평범한 성적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프랭크 토마스가 지켜보고 있던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6타점을 쓸어 담으며 왜 자신이 '빅 허트'의 후계자였는지를 몸소 입증해 보였다. 이 가운데 3점은 팀을 월드시리즈로 진출시키는 끝내기 홈런에서 비롯된 것이라 더더욱 의미가 컸다.
현재 프랭크 토마스는 오클랜드로부터 연장계약을 제의받은 상태다. 또한 누가 월드시리즈 파트너가 됐든 오도네스의 한방을 잠재우기 위해 상대팀 감독은 분명 골머리를 썩어야 할 것이다. 한때 화이트삭스의 가장 강력한 엔진이던 두 선수. 비록 이제 둘 모두 시카고를 떠나 또 다른 야구 인생을 꾸려 가고 있지만 이들이 강력한 엔진이라는 사실만큼은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