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현역 시절 최천식 대한민국배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장(오른쪽). 동아일보DB

"현재 남자 (배구) 대표팀의 문제로 신장의 문제를 가장 크게 지적한다."

 

현역 시절 '코트의 귀공자'로 통했던 최천식(56) 대한민국배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장 이야기입니다.

 

키 197㎝인 최 위원장은 현역 시절 대한항공에서 라이트로 뛰었습니다.

 

최 위원장 이야기는 사실 별로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기는 합니다.

 

한국 남자 배구는 키가 작아서 안 된다 → 키 큰 유망주를 키우자 → 장신화에 신경 쓰다 보니 기본기가 떨어진다 → 한국 남자 배구는 키가 작아서 안 된다 … 무한반복이니까요.

 

2020 도쿄 올림픽 이란 vs 일본 경기 장면. 국제배구연맹(FIVB) 제공

그리고 아시아에서 한국 남자 배구를 가로 막고 있는 두 나라 이란과 일본이 딱 정반대 케이스입니다.

 

2020 도쿄(東京) 올림픽에 참가한 이란 대표팀 선수 가운데 리베로 두 명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 10명은 평균 키 199.9㎝로 12개 참가국 가운데 네 번째로 키가 컸습니다.

 

이란 대표팀 중간 키는 202.5㎝로 아예 12개 참가국 가운데 가장 큽니다.

 

반면 일본은 평균 키(190.6㎝)와 중간 키(191㎝) 모두 가장 작은 나라였습니니다.

 

이 올림픽 아시아 예선에 출전한 한국은 평균 키 195.5㎝, 중간 키 196cm인 선수로 대표팀을 꾸렸습니다.

 

본선 진출국과 비교하면 일본 그리고 튀지지(평균 키 194.4㎝·중간 키 195㎝) 다음으로 작은 수준입니다.

 

배구에서 키가 중요하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꼭 키가 작다고 배구를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튀니지는 5전 전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지만 일본은 3승 2패로 8강행 티켓을 따냈습니다.

 

일본이 8강행 티켓을 걸고 맞붙은 상대가 바로 이란이었습니다.

 

물론 일본이 안방 어드밴티지를 누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도 여자 대표팀과 마찬가지로 '왜 일본은 되고 우리는 안 될까'를 고민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2020 도쿄 올림픽에 참가한 일본 남자 배구 대표팀. 국제배구연맹(FIVB) 제공

키가 안 되면 일단 기본기겠죠?

 

한국 배구 관계자 사이에서 '기본기 = 서브 리시브'일 때가 많습니다.

 

조별리그 5경기에서 일본은 서브 리시브 효율 49.9%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12개 참가국 가운데 9위에 해당하는 기록입니다.

 

반면 공격 효율은 .391로 12개 참가국 가운데 3위였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씀드리는 것처럼 공격 효율이야 말로 배구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록입니다.

 

배구는 결국 세트마다 (기본적으로) 25점을 먼저 따는 팀이 이기는 경기니까요.

 

그건 물론 올림픽 같은 단기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머신 러닝 기법 가운데 하나인 '랜덤 포레스트'로 기록별 중요도를 알아 보면 역시나 공격 효율이 제일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배구는 결국 공격 효율이 높게 나오도록 팀을 꾸리면 되는 겁니다.

 

이번 이번 일본 대표팀 '날개 공격수' 가운데 가장 높은 공격 효율(.415)을 기록한 건 니시다 유지(西田有志·21·라이트)였습니다.

 

일본 V.리그 J텍트에서 뛰는 왼손잡이 공격수 니시다는 키가 186㎝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번 올림픽에 라이트(opposite)로 이름을 올린 선수 가운데 최단신이 바로 니시다입니다.

 

일본 대표팀 최다 득점(94점) 선수 이시카와 유키(石川祐希·26)도 192㎝로 레프트 51명 가운데 하위 10%에 속합니다.

 

일본 대표팀 가운데 두 선수 다음으로 득점(51점)이 많았던 다카하시 란(高橋藍·20)은 188㎝로 아예 레프트 가운데 최단신입니다.

 

2020 도쿄 올림픽에 참가한 일본 남자 배구 대표팀. 국제배구연맹(FIVB) 홈페이지

한국 '날개 공격수' 선수 가운데서는 정지석(26·대한항공)이 195㎝, 허수봉(23·현대캐피탈)이 197㎝, 임동혁(22·대한항공)이 201㎝입니다.

 

프로 데뷔를 앞둔 선수 가운데 홍동선(20·경희대·198㎝) 역시 키로는 밀리지 않습니다.

 

네, 그리고 한국도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예선 준결승에서 이란과 풀세트 접전을 펼쳤습니다.

 

결과는 2-3(25-22, 21-25, 18-25, 25-22, 13-15)였지만 말입니다.

 

프로배구 남자부 최장신(211㎝)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코트 안보다 밖에서 더 굵직한 족적을 남긴 김은섭.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그러니까 키가 작아서 문제가 아니라 키가 작아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프로배구 원년(2005시즌) 리베로와 세터를 제외한 선수는 평균 192.9㎝였습니다. 지난 시즌에는 194.5㎝로 1.6㎝로 늘었습니다.

 

과연 '장신화', '장신화'를 외친다고 이보다 더 획기적으로 키를 키울 수 있을까요?

 

'기본기'가 서브 리시브라고 믿는 생각을 바꿀 때가 된 거 아닌가요?

 

기본기가 문제라면 라이트가 두 명인 배구를 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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