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 유상철 전 프로축구 인천 감독이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췌장암과 싸우고 있던 유 전 감독을 7일 오후 7시경 서울아산병원에서 끝내 숨을 거뒀습니다. 향년 50세.
유 전 감독은 인천 지휘봉을 잡고 있던 2019년 11월 19일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좋다. 그라운드 안에서 긍정의 힘을 받고자 한다"면서 시즌 끝까지 지휘봉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해 인천은 강등 위기를 넘기면서 K리그1(1부 리그) 잔류에 성공했습니다.
시즌이 끝난 뒤 지휘봉을 내려놓은 그는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언론 인터뷰에도 나설 정도로 병세가 나아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1월 앞세포가 뇌 쪽까지 퍼지면서 "잘 이겨내서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습니다.
유 전 감독은 못하는 게 없는 축구 선수였습니다.
서울 응암초 4학년 때 어머니 권유로 축구를 시작한 그는 경신중·고를 거쳐 건국대를 졸업했습니다.
건국대 선배인 황선홍(53·전 서울 감독)은 "분명 공격수로 입학했는데, 경기는 미드필더로 뛰었고, 프로에는 수비수로 가더라"고 말했습니다.
1994년 신인 드래프트 때 전체 1순위로 울산 현대 유니폼을 입은 유 전 감독은 그해 수비수로 베스트11에 뽑혔습니다.
이어 1998년에는 미드필더, 2002년에는 공격수로 다시 베스트11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1998년에는 23경기에서 15골을 넣어 K리그 득점왕도 차지했습니다.
또 일본 J리그에서도 활약하며 요코하마(橫浜) 마리노스의 2003, 2004년 리그 2연패에 힘을 보태기도 했습니다.
유 전 감독은 물론 대표팀에서도 '멀티 플레이어'로 활약했습니다.
대표팀에 공격수가 필요하면 스트라이커로 나섰고, 미드필드가 필요하면 중원을 지켰으며, 수비수가 필요할 땐 센터백이 됐습니다.
특히 2002년 한·일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때는 선수 교체 때마다 유 전 감독이 포지션을 바꿔가면서 든든하게 그라운드를 지킨 덕에 한국 대표팀이 4강 신화를 남길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시 대표팀 멤버였던 최진철(50·전 포항 감독)은 "지도자를 해보니 거스 히딩크 감독님께서 (유)상철이를 아끼신 이유를 더 잘 알겠더라. 참 보물 같은 선수였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래서 유 전 감독은 "A매치 124경기에 출전해 18골을 넣었다"는 설명만으로 존재감을 다 표현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유상철'이라는 이름 석 자를 기억하게 된 건 1994년 히로시마(廣島) 아시아경기 때였습니다.
1994년 히로시마 대회는 A 대표팀이 참가한 마지막 아시아경기였습니다.
안방 팀 일본과 8강에서 만난 한국은 전반 31분 (여전히 현역인) 미우라 가즈요시(三浦知良·54)에게 선취골을 내준 상황이었습니다.
한국이 동점에 성공한 건 후반 7분이었습니다.
고정운(55·현 김포FC 감독)이 전방으로 찔러준 공을 한정국(50·현 제주 스카우트)이 힐킥으로 연결했고 유 전 감독이 이 공을 받아 자신의 A매치 첫 득점에 성공했습니다.
유 전 감독이 축구 선수에게 꿈의 무대인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건 1998년 프랑스 대회였습니다.
조별리그 첫 경기였던 멕시코전에서 하석주(53·현 아주대 감독)가 한국 월드컵 출전 역사상 처음으로 선제 골을 넣었지만 하나 넣고 석 점을 주는 플레이를 펼친 끝에 결국 1-3으로 패했습니다.
이어 조별리그 2차전에서는 네덜란드에 0-5로 패하면서 차범근(68) 당시 감독이 대회 도중 경질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벨기에를 상대한 최종 3차전에서 유 전 감독은 이 경기에 결장한 최영일(55·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대신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섰습니다.
유 전 감독이 자신이 괜히 완장을 찬 게 아니라는 듯 후반 26분 하석주의 프리킥을 미끄러지면서 받아 벨기에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2002 월드컵 폴란드전.
부산에서 열린 이 조별리그 D조 첫 경기에서 먼저 명예회복에 성공한 건 황선홍이었습니다.
대표팀 맏형이던 황선홍은 후반 26분 이을용(46)의 크로스를 받아 왼발 발리슛으로 선제골을 터뜨렸습니다.
사실 당시만 해도 유 전 감독은 황 전 감독과 함께 '홈런왕 듀오'라고 불리고 있던 상황.
후반 8분 폴란드 수비진으로부터 공을 빼앗은 유 전 감독은 아크 에어리어 정면에서 오른발 인사이드 슈팅을 날렸습니다.
폴란드 골키퍼 예지 두데크(48)가 펀칭을 시도했지만 공은 결국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감독님, 이번에도 2002년처럼 기적이 찾아올 줄 알았는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감독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한국 축구는 지금과 퍽 다른 모양새였을 겁니다.
덕분에 참 많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늘에서도 마음껏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비시기를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