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종목 이름 맨 앞에 붙는 영어 낱말 'figure'는 무슨 뜻일까요?
한국에서는 같은 낱말을 /피규어/로 읽은 뒤 '다양한 동작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사람, 동물 등의 모형'을 뜻하기도 합니다.
피겨 스케이팅과 이 피규어 그러니까 피겨린(figurin)과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요?
그보다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OED) 뜻풀이 가운데 하나인 'An arrangement of lines, shapes, markings, etc'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피겨 스케이팅에서 피겨는 '도형', '그림' 등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피겨 (스케이팅)'를 이렇게 풀이합니다.
스케이트를 타고 얼음판에서 여러 가지 동작을 하여 기술의 정확성과 예술성을 겨루는 스케이트 종목.
싱글, 페어, 아이스 댄싱의 세 종목이 있고 연기는 정하여진 도형을 그리는 규정 종목, 일곱 가지의 요소를 포함한 연기를 하는 쇼트, 자유로이 활주하는 자유 종목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일단 뒤에 나온 '쇼트'는 쇼트 프로그램, '자유 종목'은 프리 스케이팅을 뜻합니다.
현재 피겨 남녀 싱글, 페어 스케이팅 선수는 이 두 가지 프로그램을 통해 순위를 가립니다.
그렇다면 '정하여진 도형을 그리는 규정 종목'은 뭘까요?
규정 종목은 '컴펄서리 피겨(compulsory figures)'를 번역한 말입니다.
여기서 compulsory는 '강제적인', '의무적인', '필수적인' 등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free'와 반대 개념을 담고 있는 낱말이 compulsory입니다.
피겨에는 어떤 선을 의무적으로 따라서 스케이트를 움직여야 하는 컴펄서리와 빙판 위를 자유롭게 누빌 수 있는 프리가 있었던 겁니다.
피겨 초창기에 컴펄서리 60%, 프리 40% 비율로 최종 순위를 정했습니다.
문제는 컴펄서리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는 점입니다.
당시 피겨 선수들은 왼발과 오른발로 각 6개 = 총 12개 도형을 그려야 했습니다.
그러다 1948 생모리츠 올림픽 때부터 도형 숫자가 6개로 줄어듭니다.
이로부터 20년이 지난 1968 그르노블 올림픽 때는 컴펄서리와 프리를 각 50% 반영해 순위를 정했습니다.
그르노블 대회 '쇼트 프로그램'이라는 표현을 처음 쓴 올림픽이었는데 당시에는 쇼트가 컴펄서리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쇼트는 1976 인스브루크 올림픽 때는 처음 등장했습니다.
컴펄서리 때 그려야 하는 도형은 세 개로 줄었고 순위 선정 기준은 △프리 50% △컴펄서리 30% △쇼트 20%였습니다.
1980 레이크플래시드 대회 때는 도형 숫자가 다시 두 개로 줄었습니다.
이후 1988 캘거리 대회를 마지막으로 컴펄서리는 올림픽 무대에서 빠지게 됩니다.
올림픽 기준으로는 80년 만에 종목 이름을 만든 프로그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겁니다.
1992 알베르빌 대회 때부터 2002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때까지는 쇼트 1 대 프리 2 비율로 순위를 정했습니다.
어떤 비율로 순위를 정한다는 건 이런 뜻입니다.
만약 선수 A가 쇼트에서 3위, 프리에서 1위를 했다면 이 선수 '석차' 순위는 (3 × 1 + 1 × 2) ÷ 2 = 2.5가 됩니다.
거꾸로 쇼트에서 1위, 프리에서 3위를 한 선수 B는 (1 × 1 + 3 × 2) ÷ 2 = 3.5입니다.
이러면 이 점수가 더 낮은 A가 더 높은 순위에 오르게 되는 겁니다.
그러다 2002 솔트레이크 대회 때 여자 싱글과 페어 스케이팅에서 판정 논란이 이어지면서 '신(新)채점제'를 도입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각 심사위원이 연기 수준에 따라 0~6점을 주면 이를 합산해 석차 순위를 정했습니다.
그래서 심사위원 9명 전원에게 6.0점을 받으면 만점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신채점제는 기술점수(TES) + 구성점수(PCS) + 감점 결과 나온 점수로 순위를 정합니다.
따라서 신채점제에는 만점은 없는 대신 최고점이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