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얼음 위 발레 피겨 스케이팅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종목 이름 맨 앞에 붙는 영어 낱말 'figure'는 무슨 뜻일까요?

 

한국에서는 같은 낱말을 /피규어/로 읽은 뒤 '다양한 동작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사람, 동물 등의 모형'을 뜻하기도 합니다.

 

피겨 스케이팅과 이 피규어 그러니까 피겨린(figurin)과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요?

 

그보다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OED) 뜻풀이 가운데 하나인 'An arrangement of lines, shapes, markings, etc'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피겨 스케이팅에서 피겨는 '도형', '그림' 등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김연아 피규어 인형. 콘텐츠 스퀘어 제공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피겨 (스케이팅)'를 이렇게 풀이합니다.

 

스케이트를 타고 얼음판에서 여러 가지 동작을 하여 기술의 정확성과 예술성을 겨루는 스케이트 종목.

 

싱글, 페어, 아이스 댄싱의 세 종목이 있고 연기는 정하여진 도형을 그리는 규정 종목, 일곱 가지의 요소를 포함한 연기를 하는 쇼트, 자유로이 활주하는 자유 종목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일단 뒤에 나온 '쇼트'는 쇼트 프로그램, '자유 종목'은 프리 스케이팅을 뜻합니다.

 

현재 피겨 남녀 싱글, 페어 스케이팅 선수는 이 두 가지 프로그램을 통해 순위를 가립니다.

 

그렇다면 '정하여진 도형을 그리는 규정 종목'은 뭘까요?

 

1956 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금메달리스트 텐리 올브라이트(86·미국). 베트만 아카이브

규정 종목은 '컴펄서리 피겨(compulsory figures)'를 번역한 말입니다.

 

여기서 compulsory는 '강제적인', '의무적인', '필수적인' 등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free'와 반대 개념을 담고 있는 낱말이 compulsory입니다.

 

피겨에는 어떤 선을 의무적으로 따라서 스케이트를 움직여야 하는 컴펄서리와 빙판 위를 자유롭게 누빌 수 있는 프리가 있었던 겁니다.

 

피겨 초창기에 컴펄서리 60%, 프리 40% 비율로 최종 순위를 정했습니다.

 

1968 그르노블 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금메달리스트 페기 플레밍(73·미국). 베트만 아카이브

문제는 컴펄서리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는 점입니다.

 

당시 피겨 선수들은 왼발과 오른발로 각 6개 = 총 12개 도형을 그려야 했습니다.

 

그러다 1948 생모리츠 올림픽 때부터 도형 숫자가 6개로 줄어듭니다.

 

이로부터 20년이 지난 1968 그르노블 올림픽 때는 컴펄서리와 프리를 각 50% 반영해 순위를 정했습니다.

 

그르노블 대회 '쇼트 프로그램'이라는 표현을 처음 쓴 올림픽이었는데 당시에는 쇼트가 컴펄서리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쇼트는 1976 인스브루크 올림픽 때는 처음 등장했습니다.

 

컴펄서리 때 그려야 하는 도형은 세 개로 줄었고 순위 선정 기준은 △프리 50% △컴펄서리 30% △쇼트 20%였습니다.

 

1980 레이크플래시드 대회 때는 도형 숫자가 다시 두 개로 줄었습니다.

 

이후 1988 캘거리 대회를 마지막으로 컴펄서리는 올림픽 무대에서 빠지게 됩니다.

 

올림픽 기준으로는 80년 만에 종목 이름을 만든 프로그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겁니다. 

 

1992 알베르빌 대회 때부터 2002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때까지는 쇼트 1 대 프리 2 비율로 순위를 정했습니다.

 

어떤 비율로 순위를 정한다는 건 이런 뜻입니다.

 

만약 선수 A가 쇼트에서 3위, 프리에서 1위를 했다면 이 선수 '석차' 순위는 (3 × 1 + 1 × 2) ÷ 2 = 2.5가 됩니다.

 

거꾸로 쇼트에서 1위, 프리에서 3위를 한 선수 B는 (1 × 1 + 3 × 2) ÷ 2 = 3.5입니다.

 

이러면 이 점수가 더 낮은 A가 더 높은 순위에 오르게 되는 겁니다.

 

우여곡절 끝에 러시아(왼쪽)와 캐나다 팀이 페어 금메달을 공동 수상 2002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솔트레이크시티=로이터 뉴스1

그러다 2002 솔트레이크 대회 때 여자 싱글과 페어 스케이팅에서 판정 논란이 이어지면서 '신(新)채점제'를 도입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각 심사위원이 연기 수준에 따라 0~6점을 주면 이를 합산해 석차 순위를 정했습니다.

 

그래서 심사위원 9명 전원에게 6.0점을 받으면 만점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신채점제는 기술점수(TES) + 구성점수(PCS) + 감점 결과 나온 점수로 순위를 정합니다.

 

따라서 신채점제에는 만점은 없는 대신 최고점이 존재합니다.

 



댓글,

더 보기